"원래도 대포통장 때문에 계좌 발급이 어려운데 요즘 가상화폐 때문에 더 깐깐해진거 아시죠? 은행 갔더니 어떤 아저씨는 계좌 안 만들어준다고 욕하고, 어떤 총각은 가상화폐 때문에 계좌 만들러 왔다고 당당히 말하다 거절당해 앉아 있더라고요.
저의 목적은 오로지 '계좌 발급 후 거래'지만, 이런 상황을 대비해 펀드 가입할테니 계좌 개설해 달라고 했어요. 바로 만들어주더라고요. 혹시 은행 계좌 트실 분, 여러가지 말 하지 마시고 펀드 얘기 하고 계좌 트세요. 어차피 펀드 만들고 없애면 돼요!"
30일 실시된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이후, 가상계좌를 가지고 있던 기존 투자자들은 가상화폐 거래소가 거래하는 은행의 계좌로 바꿔야 한다. 거래소가 거래하는 은행의 계좌가 없으면 새롭게 계좌를 발급해야하는 경우가 다수다.
하지만 은행 계좌 발급은 하늘의 별따기. 원래도 대포통장이나 보이스피싱 때문에 계좌 발급이 어려웠는데,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가 시행되며 은행들이 더 꼼꼼히 따지기 시작해서다.
각 은행과 창구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대체로 계좌 발급 거래 목적을 가상화폐 거래라고 하면 거절되기 일쑤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계좌 개설 관련 꿀팁'이 공유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선 '금융 거래 목적 확인서'에 가상화폐 거래라고 쓰면 낭패라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펀드 가입을 한다거나 급여 이체, 공과금 자동 이체라고 쓰고 관련 서류를 가져 가야 쉽게 계좌를 틀 수 있다. 또 인터넷뱅킹과 스마트폰뱅킹을 필수 선택해야 거래를 쉽게 할 수 있다는 글들이 퍼지고 있다.
이는 보통의 계좌 개설과 똑같다. 다만 거래 목적 부분에서 '거짓말'이 가미된 것.
특히 소득이 없는 주부나 학생의 경우 이같은 꼼수 계좌발급을 통해 한도 제한 없는 실명계좌를 발급 받았다는 사례도 있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은행 직원이 "가상화폐 거래 때문에 왔냐"고 물으면, "아니다"라고 딱 잡아 떼야 한다고 조언하며, 본인은 그렇게 했다는 무용담을 풀어놨다.
30대의 한 투자자는 "실명 계좌 발급을 하라고 해 놓고 거래 목적에 가상화폐 거래라고 쓰면 안 된다고 하는 건 아이러니"라면서 "투자자들 입장에선 거래를 하기 위해 거짓말로 거래 목적을 쓰는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은행 관계자들도 공공연하게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가상화폐라고 하면 아무래도 계좌를 만들어주기 어렵다"면서 "실제 모든 거래는 거래소와 고객 간의 일이니까, 거래 목적에 다른 걸 쓰고 가상화폐를 투자해도 은행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우리나라가 공산국가도 아니고 거래 목적과 거래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며 "은행은 우선 실명을 확인하면 되니까 그에 맞는 서류만 확인하고 한도를 설정해 자금 세탁 방지 의무 등을 지키면 된다"고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거래 목적을 묻는 것은 대포통장이나 보이스피싱 위험 때문에 이전부터 물어오던 것"이라며 "원래 가상화폐가 아니더라도 통장 개설 목적에 다른 것을 쓴들, 법상 벌칙이 있거나 처벌 규정이 있다거나 이런건 당초에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감독 당국은 각 은행들에 거래 목적에 대해 승인을 제한하라고 한 바는 없다"면서 "가상화폐 거래라고 쓰게 되면 자금 세탁 관련 이슈가 있으니 은행들이 자체 판단해서 안내서를 내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 이후, 금감원에는 계좌 발급 등이 불편하다는 민원 등이 급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