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청와대 제공/자료사진)
"솔직히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되리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제 1부부장은 11일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과의 만찬에서 건배사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김정은 북 노동당위원장이 북한고위급 대표단의 파견을 코 앞에 두고 갑작스럽게 김여정 제 1부부장을 '깜짝 특사'로 활용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김여정은 건배사에서 "솔직히 이렇게 갑자기 오게 되리라 생각 못했고 생소하고 많이 다를 거라 생각했는데 비슷하고 같은 것도 많더라. 하나되는 그날을 앞당겨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 다시 만나길 바란다"고 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김여정 특사'는 펜스 미 부통령 방한에 대응하기 위해 김정은 위원장이 돌발적으로 마련한 '깜짝 카드'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펜스 미 부통령이 워싱턴과 도쿄에서 연달아 대북강경발언을 쏟아내고 웜비어를 개막식에 초청하는 등 미국이 인권과 체제압박으로 올림픽 분위기를 이끌고 나가자 김정은이 돌발적으로 '김여정 카드'를 꺼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부 소식통도 "원래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북한을 대표해 소치 올림픽과 베이징 올림픽에 파견됐기 때문에 평창올림픽에 오는 것도 자연스럽다"며 "김정은 위원장은 처음에는 김여정의 방남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여정의 북한 예술단 본진에 대한 평양역 환송식을 그 근거로 들었다. 방남 시간은 다르지만 어차피 방남할 사람들이 서로 환송하는 것은 어색하다.
김여정이 '특사'로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면 평양역에서 예술단 본진을 환송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6일 김여정이 평양역에서 예술단 본진을 환송하는 사진을 공개했고, 하루 뒤인 7일에는 우리측에 김여정을 포함한 고위급 대표단 명단을 통보했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이 9일 오후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참석을 위해 강원도 평창 진부역 KTX역에서 내려 이동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방남 결과 제대로 전할 적임자"갑작스럽게 평양에서 외부세계에 첫 모습을 드러낸 김여정은 서울방문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김여정은 2박 3일동안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남측의 대북라인 핵심 관계자들을 모두 만났다. 특히 문 대통령과는 4번이나 자리를 함께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북한연구실장은 "김여정이 서울에 와서 현 청와대와 행정부의 핵심 대북라인과 모두 자리를 함께 했다"며 "한국 정부의 대북태도가 어떤 것인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갔다는 점이 제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고유환 교수도 "우리 고위층을 만나서 대북 분위기를 정확하게 보고 전해들은 것이 김여정의 최대 수확"이라는데 동의했다.
남측도 김여정 특사를 통해 얻은 수확이 적지 않다.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지난 6~7년간 외부세계와 문을 닫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매달려 온 김정은 체제 핵심의 일부를 보게 됐다.
전문가들은 "김여정 특사로 (우리의)최대 수확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정은에게 가감없이 보고할 사람은 북한 내에서 김여정 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입을 모았다.
측근들은 보고 들은대로 다 말할 수 없지만, 김여정은 친오빠이니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 고위층과의 접촉결과나 남에서 느낀 소감들을 제대로 전할 적임자"라는 얘기이다.
이에비해 김여정이 방남에서 적지 않은 '놀라움'이나 '충격'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천식 통일부 전 차관은 "김여정이 이번 방남에서 '(북한과는)다른 시대에 살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라며 "본인도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남북이 개방하면 (북한이)힘들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개막식은 물론 인천에서 평창까지 고속철도로 이동하면서 뒤처진 북한의 경제실상을 생각하고 경제발전에 대한 필요성도 절감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자료사진)
◇ 때로는 여유있었지만 때로는 긴장했던 김여정김여정은 '실세 특사'로 여유가 있었지만 때로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과 접견할때 약간 긴장하는 표정이 엿보였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의 '통(通)'자 그림앞에서 문 대통령과 악수를 할때는 어깨가 뒤로 약간 젖혀지며 도도한 자세도 드러났다.
대북 소식통은 "뒤로 젖혀진 자세가 할아버지 김일성의 자세와 비슷하게 느껴졌다"며 "가문의 영향인지, 아니면 당당함을 더욱 돋보이려고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