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밤 치러진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해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인면조'(人面鳥). 사람 얼굴에 새 몸을 지닌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커다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죠. 무엇보다 인면조에 얽힌 이야기는 그 특별한 외형만큼이나 흥미롭습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인면조' 쇼크…"잊혔던 동아시아인의 오랜 꿈"② '인면조', 국뽕 신화 깨고 너른 세상 '날갯짓'<끝>
지난 9일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중 인면조를 앞세운 퍼포먼스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CBS평창특별취재팀)
수소문 끝에 '인면조 전문가'와 연락이 닿았다. 미술사학자 주경미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이 그 주인공이다. 주경미 위원은 지난 2006년 무령왕릉 동탁은잔 받침에 새겨진 인면조를 처음 발견해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일각에서는 인면조를 두고 불교의 극락 세계에 사는 상상의 새 '가릉빈가'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가릉빈가는 인도의 불교 세계관에서 시작된 것인데 반해, 인면조는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파되기 이전부터 등장했다"고 선을 그었다.
주 위원에 따르면, 인면조는 중국 한나라 이후 동아시아 고분 벽화에 상서로운 동물로 종종 나온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덕흥리·삼실총·무용총 등 여러 고분에 등장하며, 백제 금동대향로·무령왕릉 동탁은잔과 신라 경주 식리총 식리(장식신발) 발바닥 부분에서도 확인됐다.
주 위원은 "평안도 덕흥리고분(408년)에는 '천추' '만세'이라는 명문과 함께 인면조가 그려져 있다"며 "당대 사람들은 인면조를 모두 벽면의 서쪽에 그렸는데, '서쪽에 있는 오래 사는 새'라고 여겼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박자'(370년경 만들어진 도가의 고전)에서 '천추' '만세'는 사람 얼굴에 새 몸을 가진 동물로 그 수명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고 나온다. 덕흥리고분 벽화에 그려진 인면조 역시 '저 세상에 가서도 천년 만년 잘 살라'는 의미인 셈이다."
그는 "인면조는 복이 올 것을 미리 알려 주는 새인 '길조'(吉鳥)와는 또 다르다"며 "역사적으로 봤을 때 신령스러운 새를 뜻하는 '영조'(靈鳥)로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 신령스럽다는 것은 그야말로 종교적인 의미"라고 바로잡았다.
평창올림픽 개회식에 등장했던 인면조 형상을 두고 주 위원은 "삼국시대 유물에 표현된 인면조를 비교적 잘 고증해서 만들었다"고 총평했다.
"다만 색상이나 얼굴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 같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인면조 '천추' '만세'는 흰색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색상이 변해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어떤 것은 적색 혹은 갈색으로 그려졌고, 곤색 비슷한 것도 있다. 흰색으로 보기는 힘들다."
◇ 고대 동아시아 세계관이 변하는 과도기와 엮인 '인면조' 이야기
미술사학자 주경미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사진=주경미 위원 제공)
주 위원이 2006년 무령왕릉 동탁은잔 받침에 새겨진 인면조를 처음 발견하고 내놨던 논문은 학계에서 적잖은 논란을 불렀다.
그는 "논문을 통해 연꽃으로 추정되는 꽃봉오리를 든 인면조가 '천추' '만세' 개념에서 (불교의) 가릉빈가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며 "6세기에 만들어진 무령왕릉이 그러한 과도기를 보여 주는 하나의 기점이지 않을까 지적했던 것인데, 학계에서는 논란이 많았다"고 전했다.
주 위원은 당시 발표한 '무령왕릉 출토 동탁은잔의 연구' 보고서에서 아래와 같이 주장했다.
'동탁은잔의 인면조는 날개 앞쪽으로 연꽃을 들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특이하다. 이제까지 알려진 7세기 이전의 동아시아 인면조 중에는 연꽃을 들고 있는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불교의 전래 이후 인면조는 가릉빈가로 보기도 하지만, 현존하는 백제의 인면조가 천추, 만세의 성격을 가진 것인지, 아니면 불교의 가릉빈가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해당 보고서는 '용이나 이름 모를 새 등과 함께 등장하는 동탁은잔의 인면조는 그 형상이나 배경 등이 고구려 고분 벽화의 천추, 만세와 같이 장생(長生)을 상징하는 서수(瑞獸·상서로운 징조로 나타나는 짐승)로서의 존재와 상통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며 논조를 이어갔다.
'그렇지만 연꽃처럼 보이는 꽃을 들고 있는 형태로 묘사된 이 인면조는 전통적 내세관, 혹은 세계관이 점차 불교적으로 변화되고 있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인면조는 아직까지 불교의 가릉빈가라고 불리기는 어려워 보이며, 선교(仙敎)에서 나타나는 장생을 상징하는 서수의 성격에 더 가깝다.'
그는 이 논문에서 "(동탁은잔) 문양에서 보이는 특징은 고구려 고분벽화와의 친연성이 가장 주목된다. 특히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서수, 천상관과 내세관이 반영된 점이 특징"이라며 "연화문이 중복하여 표현된 점이나 인면조가 연꽃을 들고 있는 점 등은 불교사상의 영향과 관련된 것으로 조각한다"고 추정했다.
특히 "동탁은잔의 문양에 보이는 도상적 특징들은 고구려를 비롯한 고대 동아시아 사람들의 포괄적이며 신화적인 내세관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불교적인 면모를 꾀하고 있는 과도기의 양식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 '인면조'가 '가릉빈가'로 탈바꿈하는 여정…"현지화 단계 있었다"
무령왕릉 동탁은잔 탁잔 부분 도면(사진=주경미 위원 제공)
주 위원은 "당시 논란의 쟁점은 백제 고분에서 인면조가 발견됐다는 그 자체였고, 그 다음이 무령왕릉기 백제사에서 불교적인 요소가 '있다' '없다'는 첨예한 대립에서 기인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무령왕릉이 만들어졌을 때는 불교가 백제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깊이 뿌리내리지 않았던 시기다. 실제로 당대 공주에는 사찰이 별로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면조가 가릉빈가로 변해가는) 그 기점의 근거를 무령왕릉에서 볼 수 있겠느냐'는 논란이 일었다. 결국 (무령왕릉 동탁은잔의 인면조가) 인면조인지 가릉빈가인지를 이분법적으로 나누려는 데서 논란이 커진 것이다."
중국 불교미술로 박사 학위를 받은 주 위원은 5세기 중국에서 전통적 세계관과 불교적 세계관이 혼재됐던 상태를 뜻하는 '격의불교'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중국 사람들이 불교를 잘 이해하지 못하니까 전법승, 그러니까 지금으로 치면 선교사가 와서 불교를 전파했다. 그런데 불교 개념을 중국어로 옮기면서 중국 고유 사상의 비슷한 개념을 끌어다 쓴다. 그렇게 현지화 과정에서 중국 전통 사상과 새로 들어온 불교가 혼재된 '격의불교' 단계를 거친 것이다."
그는 "격의불교 단계를 깨뜨리기 위해 중국 승려들이 구법(求法·부처의 진리를 구함)하러 유학을 가는데, 그들이 돌아와 새롭게 경전을 번역하면서 계속 불교가 바뀐다"며 "그 시기가 중국에서는 5세기부터 시작되고, 우리나라에서는 무령왕릉기인 6세기가 된다고 본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이렇게 불교가 전래되면서 동아시아의 고유한 인면조 역시 극락 세계에 사는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로 변화한다"며 "무령왕릉 동탁은잔에 등장하는 인면조가 그러한 성격을 지닌, 당시 받아들이고 있던 불교를 이해하는 단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추정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면조' 인문학 ②] 편에서 계속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