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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핵심은 읽기…AI가 인간처럼 읽을 수 있을까"



문화 일반

    "번역 핵심은 읽기…AI가 인간처럼 읽을 수 있을까"

    • 2018-05-24 07:06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출간 번역가 정영목씨

    번역가 정영목 교수 (사진=문학동네 제공)

     


    "번역 핵심은 쓰기보다는 읽기에 있습니다. 어떤 텍스트를 놓고 인간적인 읽기를 해서 맥락을 파악하고 재구성하는 것이죠. 그런데 맥락이라는 것이 큰 범위이고, 어떻게 보면 책 한 권 전체, 저자의 세계, 시대 전체가 될 수 있어요. 인간의 읽기는 그걸 다 동원하는 거죠. 기계는 그게 잘 안 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일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영미문학 번역의 대가로 꼽히는 정영목(58)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는 첨단기술과 기계가 많은 영역에서 인간을 대체하기 시작한 이 시대에 번역가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이자, 인문학의 존재 의의와 '인간적인 것'의 의미에 관한 답이기도 하다.

    그는 "번역의 결과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필연"이라며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사이에 인간의 상상을 집어넣지 않고는 번역을 할 수 없다. 어떤 텍스트의 독자가 되는 순간, 빈 부분을 채워나가야 하는 영역이 생기는 것이고, 그래서 번역이 인간적인 것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번역을 둘러싼 여러 논의와 자신의 철학을 담은 책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문학동네)와 그동안 번역한 주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정리한 책 '소설이 국경을 건너는 방법'을 최근 함께 펴냈다.

    최루탄 연기가 학내에 자욱하던 1980년대 초중반 대학(서울대 영문학과)을 다니며 공부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던 그는 '자본론'을 영문판으로 구해 읽던 실력으로 밥벌이를 위해 번역 일을 시작했다. 1991년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을 비롯해 27년간 200여 권에 번역가로 이름을 올렸다. 필립 로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알랭 드 보통, 오스카 와일드, 코맥 맥카시, 윌리엄 트레버, 커트 보니것,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등 영미권 현대문학 거장들의 주요 작품이 그의 해석을 거쳐 한국어판으로 나왔다.

    문학을 즐겨 읽는 독자들은 새로 나온 책에서 그의 이름을 보면 반가움과 든든함을 느낀다.

    오랜 세월 번역을 업으로 했음에도 그는 여전히 "좋은 번역이란 어떤 것이냐"는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한다. 다만, 발터 벤야민 이론을 토대로 "번역가의 과제는 완전한 '번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언어'에 이르는 것"이라고 쓴 내용을 이렇게 부연했다.

    "보통 A라는 언어, 고정된 실체를 B라는 언어로 옮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직역이냐, 의역이냐', '원작에 충실할 것이냐, 독자의 이해를 높이는 데 충실할 것이냐' 논란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얘기는 A라는 언어가 있을 때 이것을 완결된 실체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언어가 지시하는 의미는 고정된 상태로 텍스트 안에 담겨있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인지·인식과 상호작용하면서 해석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는 거니까요. 결국 번역은 고정된 덩어리를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두 언어 안에서 미완된 부분, 제3의 어떤 부분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그는 책에서 "우리의 번역 작업은 불완전한 양쪽 언어에서 어떤 완전한 언어를 상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현재 우리의 언어는 성기고, 번역의 반은 상상인 것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 "기본이 안 되는 번역을 가려낼 필요는 있지만, 오역 없는 번역이 좋은 것이라는 식의 논의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번역한 작가 중 누가 가장 어려웠냐는 질문에는 "늘 지금 하는 작가가 제일 어렵다"면서 "가장 사연이 많은 작가라면 필립 로스다. 처음엔 글 쓰는 방식이 독특해서 어려웠는데, 점점 알아가면서 재미있기도 했다. 늘 올라도 오르는 재미가 있는 큰 산 같다"고 답했다.

    번역하는 작품 내용에 관해 작가와 직접 의견을 나눈 적은 없을까.

    "어떤 분에게 이메일을 보낸 적이 한 번 있는데, '네가 알아서 해라'라는 답이 왔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맞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다음부턴 그냥 제가 다 알아서 하게 됐습니다.(웃음)"

    그는 번역가라는 직업의 장점으로 "보통 직장이 사람을 소진하기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번역은 '읽기'라는 과정에서 자신을 재충전할 수 있어서 좋다"며 "순간순간 고된 일이긴 하지만, 길게 보면 활력을 유지하면서 갈 수 있는 굉장히 의미 있는 직업이"이라고 했다.

    미래 번역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는 "책을 깊이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바닥까지 다 긁어내서 소화하겠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근래 젊은 번역가들을 보면 생각이 깊어지고 눈이 밝아지고 그래서 번역 질이 굉장히 좋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번역이 중시되고 젊은 친구들이 정말 진지하게 하는 것 같다"며 "앞으로 번역의 장에서 흥미로운 논의들이 많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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