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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낳은 그녀를 아시나요



문화 일반

    '프랑켄슈타인' 낳은 그녀를 아시나요

    2백년전 과학소설 '프랑켄슈타인' 펴낸 메리 셸리
    차별·결핍·고독 가득찼던 기구한 삶 작품에 투영
    영화로 들여다보는 시대 앞서간 여성의 강한 내면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스틸컷(사진=㈜팝엔터테인먼트 제공)

     

    괴물의 대명사처럼 불리우는 '프랑켄슈타인'. 하지만 알다시피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닌 사람 이름이다. 젊은 과학자인 그가 만들어낸 흉측한 외모를 지닌 거대한 괴물은 이름조차 얻지 못한 채 버려졌고,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는 인간들 사이에서 고독과 분노에 사무쳐 창조자와 그 주변을 향한 복수를 결심한다.

    '내게는 의지할 사람도 없었고 핏줄도 없었소. 내가 떠나온 길은 빈 칸이었고 나의 죽음을 슬퍼할 사람도 없었소. 내 생김새는 소름이 끼쳤고 체구는 거대했소. 그건 무슨 뜻일까?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일까?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지? 내 운명은 무엇일까? 이런 의문들이 꼬리를 물고 생겨났지만 풀 수 없었소.' - 소설 '프랑켄슈타인'(열린책들) 중에서

    과학소설의 고전 격인 '프랑켄슈타인'은 지금까지 소설·연극·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변주되면서 인간 본성과 사회에 관한, 여전히 유효한 수많은 함의를 전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18년에 이 이야기를 창조해낸 이는 메리 셸리(1797~1851)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이었다. 자신이 써낸 작품에도 투영된, 결핍으로 가득찼던 그녀의 기구한 삶이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에서 펼쳐진다.

    이 영화에서 메리 셸리를 연기한 배우 엘르 패닝은 "이전에 누구도 메리 셸리의 이야기를 알려준 적이 없다. 그녀 이야기가 매우 특별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촬영 당시 긴장도 하고 때로는 두렵기도 했다"며 "1800년대 이야기지만 지금보다 훨씬 앞서간 여성을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끌렸다"고 전했다.

    메리 셸리는 당대 저명한 시인 버이런 경과 인연을 맺었다. 1816년 제네바에 머물던 열여덟살의 그녀는 바이런 경 등과 괴담을 하나씩 짓기로 약속하고, 차별로부터 자유롭고자 여성이라는 신분을 숨긴 채 2년 뒤 '프랑켄슈타인'을 펴낸다.

    앞서 그녀는 1797년 영국 런던에서 급진 정치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유명 여성주의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어난지 며칠 만에 어머니를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그녀는 아버지 서재를 놀이터 삼아 지식을 쌓고, 집에 드나들던 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세상을 보는 날카로운 눈을 기른다.

    그 와중에 열다섯살 메리 셸리는 아버지 제자이자 촉망받던 젊은 시인 퍼시 비시 셸리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유부남이던 그와 8년 동안 유럽을 유랑하며 애정의 도피를 벌인다. 이 과정에서 바이런 경을 만나 '프랑켄슈타인'도 내놨다. 하지만 이후 그녀의 삶은 헤어나기 힘든 상실과 배신, 좌절로 점철된다.

    영화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집필 에피소드 등을 통해 그녀가 당대 여성에게 주어진 굴레를 벗어던지고 한 인간이자 작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이 영화 연출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이 맡았다. 차별받는 고국 여성들의 저항을 그린 데뷔작 '와즈다'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3관왕에 오른 그녀가 길어 올린 메리 셸리의 삶은 커다란 공감을 자아낸다.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메리 셸리처럼 모든 사회적 편견을 깨고 나아가는 과정이었다"며 "상실과 괴로움을 딛고 내면의 목소리를 찾았던 메리 셸리처럼 강한 여성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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