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왼쪽),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사진=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당대표 간 회동 형식을 두고 청와대와 자유한국당이 미묘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과 검경수사권 조정 등 권력기관 개편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촉발된 국회 파행으로 정부 추경안 처리까지 40일 넘도록 멈춰서면서 여야 모두 민생을 외면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어 국회정상화 논의는 일단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청와대와 제1야당인 한국당 모두 국회정상화를 통한 민생챙기기라는 '큰 그림'에 동의하면서도 향후 정국 주도권을 놓고 일진일퇴 공방을 계속하고 있어 문 대통령의 북유럽 순방 직전인 7일 당대표 회동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9일 취임 2주년 기념 방송대담에 출연해 대북 식량지원 문제를 놓고 여야 대표회동과 원내대표들이 참석하는 여야정상설국정협의체 가동을 공식 제안했다.
이후 참석 범위와 의제에 대한 이견(異見)으로 신경전을 펼쳐졌고, 결국 청와대는 지난달 31일 한국당에 '문 대통령-5당 대표 회동 직후 문 대통령-황교안 대표 일대일 회동'을 하자는 절충안을 냈지만 한국당은 이를 거부했다.
대신 한국당은 지난 2일 '문 대통령-교섭단체 3당 당대표 회동 직후 일대일 회동' 이라는 역제안을 내놨지만, 이번에는 청와대가 이를 거부했다.
청와대 강기정 정무수석은 4일 기자들과 만나 "문 대통령이 유럽 순방을 떠나기 전에 국회를 정상화하고 막혔던 대화의 문을 열어야한다는 차원에서 어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를 만났고, 또 황교안 대표가 요구하는 의제 확장과 일대일 회동 형식도 수용했다"며 "그런만큼 5당 당대표 회동과 (황교안 대표와의) 일대일 회담을 포함한 실무협의를 시작할 때"라고 한국당을 압박했다.
문 대통령도 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6월이 시작되었는데 아직 국회가 정상화되지 않아 국민들 걱정이 크다"며 "이미 여러차례 국회정상화와 추경의 신속한 처리를 위해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개최와 정당 대표들과의 회동을 제안한 바 있다. 북유럽 3개국 순방 전에 대화와 협력의 정치가 복원되길 기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원내교섭단체에 해당하는 여야 당대표만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눠야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황교안 대표는 강기정 수석 발언 직후 기자들을 만나 "문 대통령이 5당 대표와 함께 만나겠다고 하셨는데 그 자체가 의미있는 회담이 되겠나"라며 "국민 어려움을 보살필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회담이 돼야한다"고 사실상 공개 거부했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문 대통령과 황교안 대표가 일대일로 만나 남북문제와 경제정책 방향, 민생 추스리기 등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자'는 본래 주장을 관철시켰지만, 일대일 회담 앞에 열리는 당대표 회동을 원내교섭단체인 3당으로 축소시켜 제1야당의 목소리를 더욱 키우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고위관계자 역시 "(원내대표 모임인) 여야정 상설협의체는 원내 5당이 하는 것으로 정례화됐고 협치의 축적물이었다"며 "현 국면을 돌파하기 위해 당대표 회동을 3당으로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황 대표간 일대일 회담이 성사됐음에도 당대표 회동 범위를 놓고 청와대와 한국당이 첨예하게 맞서는 이유는 회동 형식에 따라 논의 주도권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회동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데 청와대와 한국당 모두 같은 생각을 하면서 쉽게 물러서지 않는 모양새가 연출되는 셈이다.
5당 대표가 모두 참석할 경우, 국회 파행의 단초가 됐던 패스트트랙을 둘러싸고 황 대표 입장에서는 패스트트랙에 동참한 나머지 4당으로부터 고립될 수도 있다.
반대로 3당 대표들만의 회동으로 범위가 좁아지면 황 대표와의 일대일 회담을 앞두고 보수 야당 두 곳을 모두 상대해야하기 때문에 청와대 입장에서는 논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감도 감지된다.
이런 가운데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강기정 수석이 어제 저를 방문해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 회담’을 제안했다”며 청와대의 4당 대표 회동 추진 사실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여권 고위관계자는 "민주당 강성 의원들 일부는 아예 한국당 프레임에 말려들지 말고 국회 파행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고 말해 문 대통령과 여야 당대표 회동 범위와 의제를 조율할 실무협의도 쉽지 않음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