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의 고민이 예상 외로 깊어지고 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 재송부를 요청한 지난 3일만 해도 청와대 내부 분위기는 임명 강행쪽에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마치고 청와대에 복귀해 국회 인사청문회 관련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은 임명 여부와 시기를 놓고 깊은 고심에 들어갔다.
◇ 자칭 '만신창이'된 조국, 검찰 개혁 동력 남았을까?
청와대 관계자는 8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참모진과 민주당 측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며 "생각보다 깊은 심사숙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고민은 다섯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먼저 지난 2일 기자회견에 이어 6일 인사청문회까지 조 후보자 본인의 불법 사실이 드러난 것은 없지만, 검찰이 인사청문회 막바지에 조 후보자 부인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사문서위조 혐의로 전격 기소하면서 문 대통령의 막판 고심이 깊어졌다는 후문이다.
당장 '검찰을 지휘할 법무장관직을 수행할 수 있느냐'는 자유한국당의 파상공세와 별도로 이에 동조하는 여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조 후보자 스스로도 "만신창이가 됐다"고 얘기할 정도로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향후 검찰 개혁 동력을 이어갈 수 있느냐는 현실적 고민도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의 불법 사실은 없더라도 부인과 딸, 5촌 조카 등이 검찰 수사 대상에 오른 상황에서 검찰 개혁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수 있을지, 혹여나 검찰에 대한 보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세간의 여론도 신경쓰이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초기 구상은 비검찰 출신 법무부장관을 통한 '제어되지 않는 검찰 권력' 견제였다. 법무부장관이 합법 테두리 내에서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검찰 인사권과 감찰권도 조 후보자 사태가 도드라지면서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문 대통령의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 野 파상공세로 국회 공전 불가피…총선 7개월 앞두고 민주당 속앓이문 대통령이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경우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파상공세도 부담이다. 한국당은 법무부장관 해임건의안 제출과 국정조사, 특검 요구, 대규모 장외 집회 등 대규모 원내외 투쟁을 경고하고 있다. '조국 정국 2라운드'가 펼쳐지면서 9월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등의 일정에도 큰 차질이 빚어질 수 밖에 없는 모양새가 됐다.
당장 한국당은 8일 오후 국회에서 황교안 대표 주재로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조 후보자 임명 철회를 촉구했다. 황 대표는 "국민의 분노가 조국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제 '범법자 조국'을 포기하라"고 공세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또 "지난 금요일 인사청문회는 조국이 가야 할 곳은 법무부 장관실이 아니라 검찰청 조사실임을 명백히 입증한 자리였다"며 "지금이라도 대통령은 조국 임명을 철회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최후통첩"이라고 경고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대외적으로는 '임명 강행' 기조를 굳히고 있지만, 내부 반대 기류도 일부 감지된다. 7개월 여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은 8일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종료한 뒤 "당의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할 예정이다. 당의 입장(임명 강행)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밝히면서도 "조 후보자와 관련해 심도있고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고 전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조 후보자를 임명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우려들에 대한 이야기도 회의에서 논의됐다"며 "적격 의견을 전하면서도 당내 여러 의견들이 나왔던 점을 청와대에 가감없이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늦게 총리 공관에서 비공개로 진행된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등이 이런 뜻을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과 강기정 정무수석 등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대통령이 인사청문회 직후 민주당 분위기를 포함해 여러 경로로 여론 추이를 살피는데 주력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다양한 의견'도 결국 문 대통령 최종 결정에 적잖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조 후보자 임명 찬성, 반대를 둘러싼 지지자와 반대론자간 격한 세몰이, 그리고 조 후보자를 향한 검찰 수사 찬반 논란 등 8·9 개각 이후 한 달 가까이 지속된 국민 피로감도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고민일 수 밖에 없다.
◇ 공정·평등·정의에 대한 가치 훼손됐나?
문 대통령 입장에서 검찰 개혁안을 설계하고 강한 의지를 다진 조 후보자의 '유탄 피격'은 아플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와 별도로 조 후보자 가족을 둘러싸고 진행되는 '계급 논쟁'은 더 뼈아프다. 조 후보자 딸이 고등학교 시절 병리학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고등학교과 대학교 재학시 각종 인턴 활동을 하면서 '스펙쌓기'에 '올인했다'는 20~30대 젊은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촛불집회'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는 문재인 정부 기치에 열광했던 젊은층은 조 후보자 딸의 입시 편법을 '제2의 정유라'라고 부르며 가치 충돌 최전선에 나섰다. 검찰 개혁이라는 정부정책과 별도로 '목표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20~30대 이탈 움직임은 원칙론자 문 대통령 입장에서도 여간 곤혹스러을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 동력 확보와는 별개의 문제다.
한국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7일 실시한 전화면접 조사에서 조 후보자 임명에 '찬성한다는 응답은 36.2%, '반대한다'는 답변은 46.8%로 각각 집계됐다. (만19세 이상 성인 1000명 대상 유무선 RDD 전화면접 방식 실시. 지역별ㆍ성별ㆍ연령별 가중치를 부여.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는 ±3.1%포인트. 응답률은 18.2%.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기회의 평등을 외치는 20대에서도 '반대' 34.6%, '찬성'이 25.3%인 것으로 조사됐다.
◇ 청와대와 여권 VS 검찰 '정면충돌'…임명권자 부담문 대통령의 네 번째 고민은 조 후보자 검증을 계기로 불붙는 청와대와 여권 그리고 검찰간 정면 충돌 양상이다. 조 후보자 가족에 대한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을 두고 여당이 검찰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 자체도 문 대통령에게는 부담이다. 2017년 5월 정부 출범과 동시에 검찰총장을 바라보며 청와대 '하명 사건' 처리에 혈안이 된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고검장에서 지검장 자리로 낮춰 윤석열 당시 검사를 임명한 것도 문 대통령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지난 7월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을 고검장을 뛰어넘어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도 문 대통령이다. 같은 달 25일 문 대통령은 윤 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권력형 비리에 대해 휘둘리지 않고,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는 자세를 끝까지 지켜달라. 청와대든 또는 정부든 또는 집권 여당이든 만에 하나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엄정한 자세로 임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조 후보자 가족에 대한 검찰의 강제수사, 특히 부인 정 교수에 대한 피고인 소환조사 없는 기소에 대해 여당과 청와대 내부는 '부글부글'하고 있다.
"검찰은 오직 진실로 말해야 한다. 자기들이 정치를 하겠다는 식으로 덤비는 건 검찰의 영역을 넘어가는 것이다"(이낙연 국무총리), "미쳐 날뛰는 늑대마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물어뜯겠다고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다. 검찰의 춤사위에 언론들도 휘모리 장단으로 합을 맞춘다"(청와대 선임행정관), "가장 나쁜 검찰의 적폐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이해찬 민주당 대표),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사전에 압수수색 보고를 해야 지휘가 가능한 게 논리에 맞다"(박상기 법무장관) 등 검찰에 대한 포화는 멈추지 않는다. 청와대와 여당의 십자포화는 결국 문 대통령의 검찰 인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에게도 부담이다.
◇ 칼날 위에 선 문 대통령…임명철회는 국정운영 동력 약화 직결
그렇다고 문 대통령이 조 후보자에 대한 임명철회, 혹은 우회적인 자진사퇴를 결심할 경우 맞은 후폭풍도 만만찮다. 문 대통령의 마지막 고민 지점이다.
조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초대 민정수석으로 발탁돼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권력기관 개혁은 물론 지난해 3월 발의한 문 대통령 개헌안 중 '대통령 4년제 1차 연임제'를 직접 설명할 정도로 문 대통령의 법리적 동지였다.
문 대통령이 치열한 고민 끝에 조 후보자를 임명 철회한다 해도 마땅한 '대체 인력'이 없는데다, 향후 검찰 개혁은 요원해질 것이라는 현실적 고민도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조 후보자 임명을 둘러싸고 내년 총선은 물론 다음 대선까지 진보·보수간 진영논리가 강하게 작용하는 현 정치상황에서 집권 중반기 국정운영 동력 상실도 우려된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선택의 칼날 위에 서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조 후보자에 대한 신임이 절대적인 데다, 장관 후보자 청문회를 앞두고 검찰이 보여준 '정치 검찰' 행태를 이번 기회에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검찰 개혁안을 설계한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청와대 일부에서는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과 후보자 부인에 대한 이례적 기소 등 '검찰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아 문 대통령이 9일 중 '임명 강행' 결심을 굳힐 것이란 관측도 동시에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