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는 13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왼쪽부터)가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현직 판사 3명에게 1심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3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에 대해 "사법신뢰 확보를 위한 보고로 용인되는 수준의 정보 보고였다"며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 2016년 4월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자 전·현직 법관들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영장내용 등을 위법하게 유출해 법원행정처에 보고한 혐의로 지난해 3월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신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의 형사수석부장이었고 조 부장판사와 성 부장판사는 영장전담 부장판사로 재직했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이 법관들과의 유착의혹 등으로 확대되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신 부장판사에게 법원에 접수된 영장청구 및 수사기록을 보고해달라고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 부장판사는 이같은 지시를 성·조 부장판사에게 전달해 이들로부터 영장 관련 정보 등 10여차례에 걸쳐 수사기밀을 받아 임 전 차장에게 건넨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이들이 법원행정처에 영장내용 등 수사 정보를 보고한 사실은 일부 인정하면서도 당시 검찰 수사를 부당하게 저지하기 위한 목적은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신 부장판사가 당시 (수사선상에 올라있던) 김수천 부장판사 사건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검찰에 대한 강력한 압박과 수사저지 목적'이라고 제출한 문건 중 신 부장판사가 기재한 내용은 객관적 상황파악과 향후 사건 전개 예상 등으로 검찰 대응 방안을 신 부장판사가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신 부장판사는 중앙지법 수석부장판사로서 사법행정 차원에서 비위사항을 보고한 것으로 보일 뿐 임 전 차장의 지시를 받고 비위 은폐·축소를 위해 행정처 지시에 협조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공모 여부에 대해서도 "조 부장판사와 성 부장판사는 영장전담 판사로서 통상적 절차에 따라 수석부장판사에게 처리결과를 보고하고 법관 비위사항을 행정처에 보고한 것"이라며 "두 사람은 신 부장판사가 9개의 문건을 작성해 임 전 차장 등 행정처에 보고한다는 사정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영장재판으로 취득한 정보를 외부로 누설할 의도로 사전에 모의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성창호 전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1심 선고를 마친 후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더 나아가 재판부는 이들이 행정처에 전달한 정보가 공무상 보호돼야 할 정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수사기록상 정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수사기관과 법원 내부에서 판사와 필수 인력 사이에서만 공유되고 외부에 누설되어선 안 되는 정보"라며 "다만 법리에 비춰봤을 때 모든 (수사)정보가 누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고 비밀로 지켜질 필요가 있을 때에만 해당한다"고 정의했다.
이어 "당시 정 전 대표와 관련해 언론에 대대적 보도가 이뤄졌고 수사 담당자인 특수1부장 등 검찰 관계자들이 언론에 정식브리핑을 하거나 사적 관계를 이용해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실제로 신 부장판사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정보는 몇몇 언론들에 이미 보도됐거나 동일·유사한 내용이었고 법원과 검찰은 사건 당시 다소 긴장과 갈등은 있었지만 기본적으론 상호 협조 관계로 빈번히 소통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신 부장판사가 영장 판사로부터 수사정보를 보고받아 행정처에 보고한 것은 재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상황에서 관련규정에 근거해 법관 비위를 감독하는 상급 행정기관인 행정처 차장만을 상대로 이뤄졌다"며 "신 부장판사의 행위로 인해 범죄 수사기능과 영장 재판기능에 방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법원행정처 내부에 알려져 국가기능의 위험을 초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재판 직후 성 부장판사 측 변호인은 "아직 사건(판결)이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 말씀을 드리는 것은 지금 상태에서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많이 불편한 재판이었을 텐데 충실히 심리하고 현명한 판단해주신 재판부에 감사드린다. 이 사건이 사실관계 면에서 보나 법리적 면에서 보나 무리한 기소였다는 점은 1심에서 확인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신 부장판사를 비롯해 당사자 3명은 따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검찰 관계자는 "법관들에 대해선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는 (재판부의) 이중잣대로 보인다"며 "법원의 판단을 신뢰하고 영장 발부 여부를 맡긴 건데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 관련정보를 (내부적으로) 주고받은 것을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도 기존 판례와 대치돼 납득할 수 없다"고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