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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사랑한 여성, 힐러리는 누구와 싸우는가?

책/학술

    권력을 사랑한 여성, 힐러리는 누구와 싸우는가?

    신간 '힐러리 클린턴:문화전쟁과 페미니즘'

     

    강준만 교수가 '도널드 트럼프: 정치의 죽음'에 이어 '힐러리 클린턴: 페미니즘과 문화전쟁'을 펴냈다.

    힐러리의 당선이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강준만 교수가 주목한 '힐러리학'은 '페미니즘과 문화전쟁'이다. 그간 미국에서 문화전쟁은 주로 좌우 이념적 차이 중심으로 다루어져왔지만, 강준만 교수는 그 의미를 확장시켜 힐러리가 투쟁해온 문화전쟁의 전선은 모두 5개였다는 논지를 편다. 첫째, 진보-보수 갈등의 이념 전선이다. 둘째, 남녀차별을 넘어서려는 페미니즘 전선이다. 셋째, 매우 강한 권력의지 또는 권력욕을 충족시키려는 권력 전선이다. 넷째, 자신을 아웃사이더로 간주해 좌우를 막론하고 기득권 체제에 도전한다고 믿음으로써 독선을 정당화하는 소통 전선이다. 다섯째, 고위 공직자로서 공적 봉사와 자신의 '리무진 리버럴(limousine liberal)' 행태 사이에 아무런 갈등이 없다고 믿는 위선 전선이다.

    강준만 교수는 이 모든 전선이 상호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페미니즘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1990년대에 수많은 대학에서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팝스타 마돈나(Madonna)를 다룬 대중문화 강좌가 열리고 마돈나를 주제로 한 논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마돈나학'이 정립되었듯이, '힐러리학'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힐러리학'의 핵심은 그녀의 페미니즘과 그에 따른 문화전쟁이라는 게 강준만 교수의 논지다. 과연 페미니즘을 둘러싼 힐러리의 전방위적인 투쟁은 성공할 것인가?

    강준만 교수는 힐러리의 '극단, 독선, 분열, 탐욕'에 대해선 매우 비판적이지만, 페미니즘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낸다. 힐러리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당하는 것은 없는지, '선의 해석'의 기회는 주어야 한다는 게 강준만 교수의 생각이다. 우리는 남자에겐 '집요한 권력욕'을 거의 문제삼지 않는다. '집요한 권력욕'에 반드시 따라붙기 마련인 표리부동만 해도 그렇다. 정치의 속성을 감안해 남성 정치인에게는 그것이 어느 정도 용납된다. 그런데 여성에겐? 왜 우리는 여성에게만 '집요한 권력욕'과 '표리부동'을 문제삼는 걸까?
    여성에게 정치라는 것을 넘어서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형적인 '이중구속(double bind)'이다. 이중구속은 해도 안 되고 안 해도 안 되는 상황을 말한다. 평범한 여성으로 살아가려고 해도 그런 이중구속 상황에 처하기 마련인데, 대통령을 꿈꾸는 여성에겐 어떻겠는가? 힐러리는 자신이 겪어온 이중구속의 딜레마를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여성들은 딜레마에 처하곤 한다. 한편으론 똑똑하게 자립해야 한다. 반면, 아무도 언짢게 하지 말고 누구의 발도 밟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이유로 아무도 안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세계적으로 성공한 여성 지도자들의 공통된 특성은 대부분 '호전성'이었다. 왜 그럴까? 가장 큰 이유는 유권자들이 여성 지도자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군 통수권자로서 전쟁도 불사할 만큼 강한가? 유권자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이런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여성 정치인은 자신의 강함과 투쟁성을 입증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도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 힐러리가 걸어온 길도 바로 그것이었다.

    미국의 문제를 힐러리의 문제로 보는 것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힐러리의 호전성에 대한 우려엔 상당 부분 동의할 수 있지만, 국제관계에서 호전성은 힐러리의 문제라기보다는 미국의 문제가 아닐까? 물론 힐러리보다는 덜 호전적인 정치인이 많이 있긴 하지만, 미국 대선판이 힐러리와 트럼프 사이의 대결 구도가 된 이상 힐러리와 트럼프를 동시에 놓고 평가하는 게 공정하지 않을까?

    책 속으로

    힐러리는 이미 그때부터 느끼고 있던 남녀 차별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으로 여성적 감각을 키우는 걸 멀리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어린 시절 꿈이던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한 안내서를 구하려고 항공우주국(NASA)에 편지를 썼다가 여자는 우주비행사가 될 수 없다는 답장을 받고 크게 실망했다. 이 사건에 대해 힐러리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노력과 결심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에 부닥친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나는 분개했다.……여자를 싸잡아 일률적으로 거부한 것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남녀공학 고교에서 당한 성차별도 그런 분노를 키웠다. 힐러리는 고교 시절 졸업 앨범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특별활동에 참여할 정도로 매우 적극적인 학생이었지만, 고교 3학년 때 학생회장직에 입후보했다가 남학생 후보에게 패배를 당하는 아픔을 겪었으니 말이다. 「제1장 “여성 차별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본문 29쪽)

    힐러리는 사실상 중국 공산당 정부를 겨냥해 언론의 자유와 민중 여성 공개 토론회를 위한 집회를 탄압한다고 비난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여성 학대 행위에 대해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그녀가 “인간의 권리는 여성의 권리이다. 그리고 여성의 권리는, 확고하게, 인간의 권리이다”는 말로 연설을 끝맺자, 세계 189개국에서 온 4,000여 명의 대표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중엔 『여성의 신비(The Feminine Mystique)』(1963)를 쓴 베티 프리댄(Betty Friedan, 1921~2006)도 포함되어 있었다. 『뉴욕타임스』는이 연설이 힐러리의 “공적 삶에서 가장 빛난 순간(finest moment in public life)”일 것이라고 했다. 게일 시히(Gail Sheehy)는 바로 그 순간이 힐러리에게 전환점이 되었다고 말한다. 「제5장 “인간의 권리는 여성의 권리,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본문 179쪽)

    2013년 11월 1일 힐러리는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열린 여성 콘퍼런스에서 “여성의 야망과 포부 실현을 막는 ‘유리천장’을 없애자”고 역설했다. 이를 두고 미국 언론들은 힐러리가 2016년 대통령 선거 출마 의사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힐러리는 청중 7,000여 명 앞에서 “정치·경제·사회 전 영역에서 완벽한 여성의 참여를 모색해야 한다”며 “여성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데 보이지 않는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힐러리는 연설에서 차기 대권 도전 등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미국 언론들은 미국에서 아직 깨지지 않은 ‘유리천장’은 대통령이라는 점을 들며 힐러리가 이를 직접 깨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했다. 11월 2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뉴욕주 민주당 상원의원 척 슈머(Chuck Schumer, 1950~)는 “2016년은 힐러리의 해”라며 출마를 촉구했다. 「제9장 “여성의 야망과 포부 실현을 막는 ‘유리천장’을 없애자”」(본문 306~307쪽)

    힐러리는 9월 5일 처음으로 전용기에 수행 기자들을 태운 데 이어, 9월 8일 뉴욕주 남동부 화이트플레인스(White Plains)의 공항 활주로에서 278일 만에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녀는 “대선 보도가 불만스럽다”고 말을 시작했다. 이메일 스캔들, 클린턴 재단의 고액 기부자 유착 관계 같은 기사들이 잇따른 데 대한 일종의 항의였다. 힐러리는 “오랫동안 정치에 몸담은 나를 차갑고 무감정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하버드대학 로스쿨에 지원해 시험을 보러 갔을 때 주변 남학생들에게 당한 집단 괴롭힘을 언급하면서 “그때도 그랬고, 변호사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로 젊은 여성으로서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트럼프 못지않게 비호감도가 높은 데 대한 일종의 변명이었다. 「제12장 “나를 차갑고 무감정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이해한다”」(본문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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