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연쇄 총격 사건은 아시아계 미국인이 운영하는 마사지 업소 3곳만 타깃이 됐습니다.
모두 8명이 사망했는데 그 중 6명이 아시아계 여성으로 확인돼 인종 혐오에 기반한 증오범죄란 지적이 나왔습니다.
이에 지난 27일 미국 전역에서는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습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뉴욕, 워싱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내 60개 도시에서 집회가 열렸는데요,
참석자들은 "아시안 증오를 멈춰라", "나는 바이러스가 아니다. 증오가 바이러스다"와 같은 구호를 외쳤습니다.
뉴욕에서 시위를 주도한 주디 장은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한 지 1년이 지났고 아시아계에 대한 폭력은 더욱 거세졌다. 내가 아는 모든 아시아인들은 폭력이나 괴롭힘, 모욕의 희생자였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인들이 해당 병명을 '우한 바이러스', '중국 바이러스' 등으로 지칭하면서 아시아 지역사회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건데요.
정말 그의 주장처럼 코로나19와 아시아계 증오범죄는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코로나19 이후 아시아계 증오범죄 '급증'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증오∙극단주의 연구 센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주요 도시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가 급증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16개 도시에서 지난해 기준 122건의 반 아시아계 미국인 증오범죄가 발생했으며, 이는 전년 대비 약 150% 증가한 수치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출신 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는 인권단체 'Stop AAPI Hate'가 공개한 Stop AAPI hate 전국 보고서(2020.3.19~2021.2.28)도 코로나19 이후 인종차별 범죄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 단체가 운영하는 신고센터에 지난 11개월 동안 접수된 인종차별 사건은 3795건. 차별 당한 이들이 누구나 다 신고하는 건 아니란 점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실제 인종차별 범죄의 일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의 유형도 다양했습니다. 보고서에 요약된 차별 유형을 보면 폭언(68.1%)이 가장 많았고,기피(20.5%), 폭행(11.1%), 직장에서의 차별∙서비스 거부∙탑승 거부 등 인권침해(8.5%), 온라인 괴롭힘(6.8%)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실제로 인종차별을 경험한 이들은 신고센터에 "역겹다", "우한으로 쫓아내야 한다", "바이러스와 함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등의 폭언을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최근 뉴스에서 접한 것처럼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는 신고 접수도 380건에 육박했습니다.
◇증오에 더욱 취약한 사람들
차별 대상으로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여성의 피해 사례는 68%로 남성의 피해 사례(29%)보다 2.3배나 많았습니다. 연령별 피해 사례는 26~35세(31%), 36~45세(20%), 18~25세(16%), 46~60세(14%), 12~17세(12%), 61~75세(6%), 75세 이상(1%) 순이었습니다.
인종차별을 가장 많이 당한 민족은 중국인으로 전체의 42.2%를 차지했습니다. 한국인은 14.8%로 두 번째로 많았으며, 베트남인(8.5%), 필리핀인(7.9%), 일본인(6.9%) 등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인종차별을 당한 장소로는 직장 35.4%, 길거리 25.3%, 온라인 10.8%, 공원 9.8%, 대중교통 9.2% 등이 있었습니다.
◇인종차별을 경험하는 청소년들
청소년도 인종차별에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STOP AAPI HATE'는 코로나19 이후 인종차별을 느끼거나 경험한 990명의 아시아계 청소년(0~17세)을 인터뷰했는데요.
아시아계 청소년들은 미국인들의 인종차별에 입을 모아 우려를 표했습니다. 특히 인종차별을 직접 당한 청소년들은 인종차별을 당해보지 않은 또래보다 더 가족을 걱정하고, 우울해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인종차별을 겪어 본 아시아계 청소년 10명 중 8명(77.3%)이 현재 미국 내에서 번지는 아시아 혐오 정서에 분노했고, 인종차별을 겪어보지 못한 아시아계 청소년들도 10명 중 7명(70.6%)이 분노한다고 답했습니다.
인종차별 경험 유무와 상관없이 '우울하다'고 답한 아시아계 청소년은 각각 47.5%, 45.8%로 절반에 가까웠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TOP AAPI HATE'에서는 5가지 해결방안을 제안했는데요.
내용을 살펴보면 △학생들이 여러 미국 공동체의 역사와 인종차별의 근원 및 영향 그리고 인종적 정의를 추구해 온 권리 운동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중∙고등학교에서 민족학 수업 시행 △선생님과 학교 관계자에게 사회적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괴롭힘 방지 교육 실시 △학생과 성인들에게 정의 실천을 위한 교육 제공 △온라인 괴롭힘 익명 제보 사이트 운영 △아시아계 학생들의 안전한 학교생활 및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 지원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편 미국 법무부는 30일 인종범죄의 추적과 기소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메릭 갈런드 미국 법무장관은 코로나19 대유행과 맞물려 아시아계 미국인을 겨냥한 차별∙폭력 증가가 연방 법집행기관의 새로운 동력을 요구한다고 밝혔는데요.
증오범죄에 대한 자료 수집 개선, 조사와 기소의 우선 처리와 함께 증오범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불법적 행위에 대한 민사적 권한의 활용 등을 목표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법무부는 지난 몇 년간 너무 많이 본, 증오로 가득 찬 대규모 살인의 희생자를 위한 정의 추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런 움직임이 아시아계 미국인 옹호자들의 압력 증가에 부응해 바이든 행정부가 취하는 폭넓은 대응의 일환이라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