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학생간 성폭력…'보호 처분'이 답일까

  • 2021-07-19 06:05
지난해 7월 3일, 고(故) 김태한군은 엄마 생일날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군은 그해 6월 전남 영광의 한 중학교 기숙사에서 동급 남학생들에게 집단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이후 스트레스로 인한 급성췌장염을 진단받고 사흘 뒤 숨졌습니다.
가해 학생 3명은 지난 1월 강제추행 등 혐의로 소년보호재판을 받았습니다. 이 중 1명은 4호(단기 보호관찰·1호 병합), 2명은 1호(보호자 감호 위탁·2호 병합) 보호처분을 받았습니다.

    
가해 학생들은 사회의 보호를 받게 됐지만, 피해 학생 태한군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건을 신고한 뒤에도 가해 학생들과 같은 방을 써야만 했습니다. 일주일이 훨씬 넘어서야 분리조치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나마도 가해 학생 중 1명은 등교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태한군 아버지가 아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오는 27일은 故김군의 생일입니다. 지난 8일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태한군 아버지는 "촉법소년이다, 보호처분이 내려진다는 말로 사건 자체에서 책임을 회피하려는 이들을 마주할 때 답답했다"며 "보호처분이 잘못을 마냥 감싸주는 식으로 악용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학생간 성폭력'은 학교폭력의 일종으로 분류됩니다. 지난해 3월부터 학교 자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폐지되고, 교육지원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로 이관돼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법상 처분이 우선 적용되는데요.
가령 심의위가 가해 학생에게 사회봉사 처분을 내렸지만, 소년보호재판에서 소년원 입소 처분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가해 학생은 입소로 사회봉사를 이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의위에서 처분 기간을 변경합니다.

    
넓은 개념으로 성희롱은 성폭력에 포함될 수 있지만, 현행 법률상 신체 접촉이 있는 강간, 강제추행 등을 '성폭력범죄'로 구별하고 있습니다.
성폭력범죄는 형법을 기본으로 하지만, 가해자가 만 19세 미만이라면 형사특별법인 '소년법'에 따릅니다. 소년법은 소년범에 대한 형사처벌의 특례와 보호처분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보호처분은 처벌이 아닌, 교육을 통한 개선을 목적으로 이루어집니다.

    
보호처분 6호 민간 위탁 보호시설과 7호 의료시설, 8~10호 소년원의 경우는 구금 기능을 하지만, 동시에 교육적 기능을 중시합니다. 인성교육, 특성화교육, 직업능력개발훈련 등을 통해 비행을 교정하고 건전한 청소년으로 성장하게 합니다.
소년법 제32조 제2항에 따르면 시설내 처우인 6호·8호 처분은 사회내 처우인 보호관찰과 병합 처분될 수 있습니다. '개방처우', '중간처우'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기본적으로 가해 학생을 시설 내에 있도록 하지만, 소년부판사 재량에 따라 사회 안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며 일정기간 지도와 통제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보호처분은 장래 불이익을 주지 않아 가해학생이 새로운 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보호처분이 기록된 수사경력자료는 사기업·민간기관 취업 시 조회가 전면 금지되고 있는데요. 공적영역에서는 현행 형실효법에 따라 사관생도 및 군 간부 임용시 보호처분 전력을 회보하지만, 이 역시 금지하는 법령 개정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국방부장관과 법무부장관에게 제도 개선을 권고한 데 따른 것인데요. 이에 지난 4월 법무부는 "소년 시절 한때의 방황과 비행으로 인해 사회 첫발을 딛는 순간부터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좌절하고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형실효법 시행령 개정의 추진 배경을 밝혔습니다.
인권위는 과거 보호처분을 이유로 직업군인 임용의 길을 원천 차단하는 건 '인권침해'라고 밝혔습니다. 헌법 제11조 평등권과 제15조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도 판단했는데요.
그러나 국방부는 인권위 권고에 '수용불가' 의견으로 회신했습니다. 시행령이 개정될 경우, 국방부는 인권위 권고 수용 여부와 관계없이 간부 선발시 지원자의 보호처분 이력 등을 조회할 수 없게 됩니다.

영화 '한공주'의 한 장면. 영화 '한공주'의 한 장면.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영화 '한공주' 속 성폭력 피해 주인공의 한마디입니다. 2004년 경남 밀양에서 고등학생 44명이 한 여중생을 1년여간 집단 성폭행한 실화 바탕의 작품입니다.
실제 또래집단 '밀양연합' 일원이던 가해 학생들 중 20명은 형사재판이 아닌, 소년보호재판을 받았습니다. 유무죄를 따지기보다 소년을 어떻게 바르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재판인데요. 이 가운데 4명에게 소년원 송치, 16명에게는 봉사활동·교화 등 '보호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잘못을 저지른 학생에게 개선의 기회를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미성숙한 누군가의 잘못으로 고통받은 피해 학생을 보호하는 것엔 우리 사회가 소홀하진 않았을까요.

        
지난해 3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고등학생에게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징역 구형에서 보호처분이 내려졌다"며 "부디 구속처벌을 내려주시고 피해자가 숨 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세요"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청원에 30일 동안 국민 35만여 명이 동의했습니다.
가해 고등학생은 지난 2019년 8월 초등학생을 협박·유인한 뒤 성폭행과 불법촬영을 저질렀고, 이를 빌미로 3차례 걸쳐 50만 원을 뜯어냈습니다. 앞서 검찰은 가해 학생에게 최단 5년, 최장 7년의 징역형을 요청했지만 '보호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피해 학생의 어머니도 청원 글을 통해 "자식을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피의자의 상황을 헤아리려 애썼지만 '실수'라기엔 납득하기 어려운 증거들이 있다"면서 "피의자의 인권이나 법 테두리보다 고통받는 피해자의 입장을 헤아려달라"고 밝혔습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보호처분을 받는 성폭력 학생범죄자는 매년 200여 명입니다. 보호처분 건수는 제자리지만, 이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는데요.
아무리 학생이라도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쪽과 엄벌이 아닌 교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쪽이 맞섭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답한 청와대 국민청원 1호가 소년법 폐지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는데요. '소년법 폐지 및 개정', '보호처분의 내실화' 등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소년법 개정안 가운데 중범죄 가해자에게 소년법 적용을 배제하자는 법안도 있습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성폭력 학생범죄자는 '보호처분'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소년법 대상 연령을 낮추자는 개정안들보다 더욱 엄정한 건데요.
이에 반해 '보호처분'을 보다 내실 있게 하자는 논의도 있습니다. 지난 2월, 법무부 산하 소년보호혁신위원회는 보호처분 소년을 조사할 때 소년보호시설에서 '친절하고 온화하게' 진행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또 법무부와 교육부가 협력해 소년원에서의 정규 교과교육, 소년원 밖 학교로의 통학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앞서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소년보호시설의 환경 개선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CBS노컷뉴스가 교육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전국 초중고 성폭력 심의 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학생간 성폭력'은 2018학년도를 기점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습니다. 특히 2020학년도에는 코로나 확산으로 비대면 수업이 이뤄지면서 학교 폭력이 현저히 줄었습니다.
그러나 피해학생이 있는 한, 사회의 보호책임은 줄어들 수 없습니다.

    
성폭력 가해 학생은 법원 소년부에서 보호처분 외에 교육지원청 학폭심의위에 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 피해 학생에 대한 사과나 분리 등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중요한 조치인데요.  
이영애 대구시의원은 관내 양성평등 및 성인지 교육현황을 두고 "학교 내 학생 간 성희롱‧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교육지원청 심의위의) 1‧2‧3호 처분은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019년 교육부는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배포했습니다. 교육부에서 처음 발간한 종합 지침인데요. 2차 피해 예방과 피해자 보호, 재발방지 대책 등을 담고 있습니다. 또 성폭력 피해학생의 결석에 대해 출석인정 범위를 확대하고, 전입학도 교육감 책임하에 학교를 배정할 수 있게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4월 대구시교육청 홈페이지에는 한 상담교사에 대한 민원이 잇따랐습니다. 해당 교사가 전학 간 성폭력 피해 학생의 학교에 가해 학생을 데려갔기 때문인데요.
심의위 조치도 '서면사과'가 원칙인 데다, 이미 가해학생은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피해학생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은 안일한 행동에 시민들은 분노했습니다.
"소년 범죄에서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를 위한 조치가 없는 것."
지난해 6월 범죄심리학자 표창원이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한 말입니다. 보호처분제도는 소년범에 대해 국가가 부모 입장에서 보호하고 교육할 책임이 있다는 '국친사상'에 근거합니다. 국가가 부모의 마음으로 피해 학생에 대해서도 보호조치를 잘해나가는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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