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birth.nocutnews.co.kr
'적극적 출산 정책'에도 쪼그라드는 해남군 인구
해남군 유튜브 캡처 "해마다 인구 유입과 유출로 1천명, 출산과 사망으로 500명 합쳐서 1년에 대략 1500명씩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군 예산 여건상 출산장려금을 더 올릴 수는 없고 나라에서 보편적 복지를 늘린다니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지원에도 인구가 감소했다고요? 일자리 찾아 계속 인구가 유출되고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는 세태인데 저희가 무슨 수로 막겠습니까. 나라에서도 못하는걸요." - 전라남도 해남군 관계자
땅끝마을로 유명한 전남 해남군은 1960년대 한때 인구수 24만 명을 자랑하는 지역이었다. 10여 년 전부터는 적극적인 출산 정책을 펼쳐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전국 150여 개 지방자치단체가 해남의 정책을 벤치마킹할 정도였다.
2008년 전국 최초로 출산장려팀을 신설하고 지금은 인구정책과로 조직을 확장한 해남군. 과연 성과는 어땠을까.
전방위적인 노력에도 해남군의 인구는 현재 6만 8천 명 선으로 쪼그라들었다. 2015년 해남군의 합계출산율(한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2.46명에 달했지만, 2019년 합계출산율 1위 자리를 전남 영광군에 내준 데 이어 지난해 1.67명까지 떨어졌다.
물론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0.84명과 비교하면 해남군의 합계출산율은 상대적으로 월등히 높다. 하지만 적극적인 출산 정책에도 해남군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의 효과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전국 출산지원금 해마다 증가…지난해엔 3822억 원
감사원과 각 시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초저출생에 따른 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비 100%로 추진되는 지자체 사업은 3500여 개, 4조 6천억 원 규모다.
이 가운데 출산장려금 지급액은 해마다 증가 추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가 지출한 출산지원금은 약 3822억 원으로 전년 대비(2827억 원) 35%가량 올랐다.
해남군의 경우 2012년부터는 첫째아 300만 원, 둘째아 350만 원, 셋째아 600만 원, 넷째아 이상은 720만 원을 출산장려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첫째 아이를 낳으면 바로 50만 원을 지원하고 나머지는 15만 원씩 3년에 걸쳐 나눠주는 방식이다.
또 2주간 산후조리원 비용의 70%가량인 100만 원을 지급하고, 셋째아의 경우 매 학기 150만 원씩 연간 3백만 원, 4년간 총 12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지자체 간 출산율 높이기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수년째 제자리인 해남군의 출산장려금은 주목도가 낮아졌다. 경북 영덕군이 2017년부터 첫째 아이에게 출산장려금 48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고, 봉화군은 2018년 첫째 아이 기준 전국 최고 금액인 700만 원을 주기로 한 것이다.
박문재 해남군 인구정책과장은 "이제 합계출산율 1위는 영광군이다. 해남군이 인구수를 늘리기 위한 노력은 계속하지만 군 재정여건상 출산장려금은 현행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면의 인구가 읍으로, 읍의 인구가 인근 목포나 광주로, 그쪽 인구는 다시 서울과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없는 한 인구감소는 막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감사원이 적발한 '출산장려금 먹튀' 사례
그렇다면 출산장려금은 인구 감소를 막거나 증가시키는데 실제로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감사원이 올해 내놓은
저출산고령화대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8월 현재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초자치단체가
출산장려금 정책을 시행 중으로, 전국 총 지급액은
2709억 원, 지자체별로는 최소 5만 원에서
최대 3천만 원이 지급되고 있다.
합계출산율 상위 5개 지자체를 살펴보면 전남 해남・영암・장성군, 강원도 인제군, 부산광역시 강서구로 모두 출산장려금 지원 사업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부산 강서구의 경우 첫째아 출산장려금을 지급하지 않음에도 높은 합계출산율을 보이고 있는데, 이 사례만 놓고 보면 지급 액수와 출산율이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해남군의 경우 한때 합계출산율이 2.47명으로 전국 1위였지만 2015년 이후 전국적인 출산율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2015년 해남에서 태어난 신생아 수는 839명이었지만, 2019년에는 490명으로 4년 사이 42% 정도 줄었다.
단순히 출산장려금을 받기 위해 일시적으로 해당 지역에 전입하는 이른바 '먹튀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해남군에서 출산장려금을 지급받은 자녀의 모(母) 인원 중 27.5%(782명 중 215명), 2015년은 28.3%(831명 중 235명)가 출생 직전인 6개월 이내에 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부(父) 전입인원에 비해 모(母) 전입인원이 3배 정도 많았는데, 이는 해남군 조례상 자녀 출생 당시 부모 중 1명만 군내 주민등록을 두고 있으면 출산장려금 수령이 가능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자녀의 경우 2012년은 18%(788명 중 144명), 2015년은 26%(843명 중 218명), 모(母)의 경우 2012년은 15%(782명 중 121명), 2015년은 22%(831명 중 180명)가 단기간(6개월) 내 다른 지자체로 전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산장려금을 첫 회 빼고 3년에 걸쳐 나눠주는 장치가 있지만 3년간 지원을 받고 이사를 가면 어쩔 도리가 없다. 이사를 오는 게 아니라 시댁이나 친정으로 잠시 주소를 옮긴 뒤 출산장려금을 타간 사례도 있었다.
'첫째 출산장려금 0원' 부산 강서구, 인구 늘어
반면 부산 강서구는 첫째아 때는 출산장려금을 지급하지 않고, 둘째아는 50만 원, 이후에는 120만 원을 지급하고 있어 4개 지역보다 출산장려금 지급 액수가 적었다.
그런데도 4개 지자체와 달리 총 인구수는 늘었는데, 경제자유구역 명지지구(명지국제신도시) 조성사업에 따른 국제업무 공간 조성과 양질의 주거ㆍ교육 환경 제공 등이 인구유입과 출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출산장려금 조례를 개정해 지급기준을 강화하고(출산 당시 거주 → 6개월 이상 거주) 지급금액을 축소한(500만 원 → 100만 원) 나주시의 경우도 인구가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나주시의 0세 인구는 2012년 565명에서 2018년 889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출산장려금이 아니라 혁신도시로 지정되고 19개 공공기관이 이전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주거환경 인프라가 개선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출산장려금 효과 '있다' vs '없다'
출산장려금은 지자체 단위에서 단기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장기적인 효과는 검증하기 어렵다는 연구결과가 많다. 또 지자체 간 지급액의 차이는 다른 시군구로 이주할 유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한다.
육아정책연구소 양선미 연구위원은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전국 226개 지자체 출산 정책 담당 공무원 중 81.1%가 '현금지원사업 확대에 문제가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현금 위주 사업의 효과가 낮거나 없고(69.6%), 지자체 간 과다 경쟁만 지속된다(66.0%)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앙정부의 출산대책 지원이 늘어도 선출직 자치단체장들은 기존 지원을 줄이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단기간의 현금지원을 받더라도 좀 크면 학교 등의 문제로 그 지역을 떠날 수밖에 없다. 내 자녀가 안전하고 편하게 잘 자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 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