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뽑기가 콘텐츠?…게임은 카지노?

핵심요약

'영웅 아이템' 나올 확률 0.0882%…1134번 해야 한 번 나와
1134회 구매시 374만원 넘게 들어
원하는 영웅 아이템 얻으려면 2억원 가까이 필요

    
"못 뽑으면 무과금(돈을 쓰지 않은 게이머)이랑 똑같아서 수천만 원을 쓰더라도 뽑아야죠".
"좋은 아이템이 나오면 현금화할 수 있어요".
지난해 1월 확률형 아이템(랜덤 뽑기) 논란 이후 게임업계는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문제는 랜덤 뽑기에 치중된 게임사의 BM(Business Model·사업 계획)에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게임업계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은 일정 금액을 투입해 무작위적·우연적 확률에 따라 아이템이 지급되는 형태를 가리킵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캡슐형 유료 아이템'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게임사는 게임 아이템 현금화를 공식적으로 제재하고 있지만, 중개 사이트를 통해 현금화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확률형 아이템은 이론상 몇만 원으로 수백~수천만 원짜리 아이템을 뽑아 판매하면 현금을 챙길 수 있단 점에서 도박적 요소가 있습니다. 따라서 게임의 탈을 쓴 도박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확률은 공개하지만…낮은 확률과 높은 가격

게임업계는 2008년 마련된 자율규제를 수차례 개정한 끝에 상설 모니터링 기구를 설치해 확률형 아이템을 감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낮은 확률로 하나의 좋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수천만 원씩 사용하는 문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모 게임사가 만든 A 모바일 게임의 공표된 확률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을 유료로 구매해 선호하는 영웅등급 아이템 51개 중 하나라도 나올 확률은 0.0882%로 단순 계산시 1134회를 시도해야 한 번 나올 수 있는 확률입니다.
해당 아이템 1회 뽑기 판매가는 부가세 포함 3300원으로 1134회 구매 땐 약 374만 2천 원 가량 필요합니다. 또한 51개 중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선 약 1억 9085만 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인 모바일 게임 유통채널인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 입점한 업체 중 지난해 12월 기준 매출 순위 10위권을 살펴보면 모든 게임이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일부 게임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죠.
매출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는 게임 전부가 확률형 아이템 BM을 사용해 이후 나올 대다수의 게임에서 해당 BM이 벤치마킹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발전하는 확률형 아이템…컴플리트 가챠

일부 게임사의 경우 확률형 아이템을 모두 뽑아야 최종 아이템을 주는 일명 '컴플리트 가챠'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어 더욱 논란입니다.
컴플리트 가챠는 다수 상품이 들어 있는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려 랜덤한 캡슐을 뽑는 일본의 '가챠'라는 용어와 완성을 뜻하는 영어 컴플리트의 합성어로, 완성을 시켜야 하는 뽑기를 뜻합니다.
    
이 방식을 사용한 모 게임의 경우 빙고판을 모두 채워야 최종 아이템을 지급하는 이벤트를 열고, 빙고판의 일부 숫자의 확률을 낮게 설정해 유저들이 빙고를 완성하는데 많은 금액을 지출하게끔 유도합니다.
이같이 일부 게임들은 이용자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눈속임을 하고 있습니다. 무료로 아이템을 제공한 뒤 유료로 일정부분을 구매해야 완성된 아이템을 지급하거나, 확률형 아이템을 모아서 또 다른 확률형 아이템을 뽑게 만드는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동차는 무료로 주고 모래밭에 묻힌 자동차 키는 직접 찾아라, 대신 땅 한 번 파보는 데 돈을 내야 된다"는 식이지요.
이러한 컴플리트 가챠의 시스템은 적은 돈으로 큰 보상을 얻기 위해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손실보상을 위해 멈추지 못하는 도박과 닮았습니다.
확률을 뚫고 끝까지 가지 않으면 시작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어 많은 이용자가 멈추지 못하고 함정에 빠져 큰 돈을 지출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어떤 게임의 경우, 단계별로 확률이 낮아지는 방식을 설계해 막대한 수익을 챙긴다는 이용자들의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현금화되는 아이템…편법 카지노?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는 일부 게임의 경우 온라인 중개 사이트에서 아이템 및 계정이 현금으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우연한 확률로 뽑기에 성공해 현금화 할 수 있다는 것은 카지노와 닮은 모습입니다.
카지노는 관광진흥법 제3조에 따르면 '전문 영업장을 갖추고 주사위·트럼프·슬롯머신 등 특정한 기구 등을 이용해 우연의 결과에 따라 특정인에게 재산상의 이익을 주고 다른 참가자에게 손실을 주는 행위 등을 하는 업'으로 설명됩니다.
    
몇만 원으로 수백~수천만 원짜리 아이템을 뽑아 현금을 챙기는 게 가능하단 점에서 게임사는 아이템 현금거래를 원칙적으로 제재하고 있지만, 아이템 거래를 중개하는 대형 사이트의 경우 2002년 7월부터 현재까지 20년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개 사이트를 확인해보면 아이템 거래 게시물이 시시각각 올라오고, 판매 완료, 판매 중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구매요청도 가능해 게임화폐, 아이템, 계정 등 다양한 '상품'이 현재도 손쉽게 거래됩니다.
중개 사이트를 통해 아이템을 거래하는 경우, 입금 전까지 연락처나 아이디가 비공개 돼있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전자상거래 사이트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렇듯 간단한 방법으로 아이템 현금거래가 가능하고, 오랜 기간 아이템 거래 중개가 서비스되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요. 게임사가 적극적으로 현금화를 막지 않아 불법 사행성 게임장과 비슷하다는 비판도 이 대목에서 나옵니다.

막대한 수익 올리는 게임사…규제는 셀프로?

게임산업은 매년 평균 10%의 고성장을 하고 있지만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산업법)에 따르면 현재까지도 확률형 아이템의 정의는 물론 관련 조항도 없습니다. 게임사가 어떤 방식으로 사용하더라도 법적으로 규제하거나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행성 문제로 비판받은 게임업계는 "확률형 아이템 결과물에 대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이용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나아가 건강한 게임문화를 조성하고자 하는 취지"를 내세워 자율규제를 시행했습니다. 그러나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각 게임사 공식커뮤니티 캡처게임 커뮤니티 캡처
실제로 지난해 1월 일부 게임업체가 확률을 속이고 있는 것이 사실로 밝혀져 이용자들의 반발이 거세졌고, 정치권에서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는 등 규제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한국게임산업협회는 확률 정보 공개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 규제 강령 개정안'을 발표했고, 지난달부터 개정안이 시행됐습니다.
    
개정안은 자율규제 범위를 '게임내 상점에서 구매할 수 있는 유료 아이템과 조합, 결합 등을 통해 아이템을 강화하거나 합성하는 절차를 포함하는 유료 콘텐츠'까지 확대 적용했습니다.
확률 정보는 백분율, 분수, 텍스트 등을 추가해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표기했고, 유료와 무료 요소 결합 시 개별 확률을 인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규제를 강화했습니다.
게임업계의 이같은 노력에도 확률이 잘못 표기되거나, 미공개했을 경우 돌아가는 유일한 제재가 '미준수 게임'이라 공표하는 수준이란 점, 그마저도 협회나 언론보도를 통해 한 달에 한 번 공표되는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는 점 등을 놓고 비판이 끊이지 않습니다.

확률형 아이템 법적 규제 말하는 정치권

정치권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를 부쩍 강조하고 있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대표발의한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법률안'은 1년 가까이 국회를 표류하고 있습니다.
'게임을 이용한 사행성 조장을 방지하여 건강한 게임 생태계를 조성하는 목적'으로 제안된 이번 개정안은 △확률형 아이템 규제 신설 및 표시의무의 확대 △사행성 규제 확대 △이용자 보호의무 명시 △해외 게임사업자 국내대리인 제도 신설 등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게임 이용자들도 이 개정안 통과 여부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2030세대가 주축인 게임 이용자들의 관심에 여야 대선후보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를 공약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페이스북 캡처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페이스북 캡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게임은 2030의 중요한 여가활동을 넘어 미래 성장동력으로 가치가 크지만, 다수 이용자들의 권익보다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는 일부 업체의 태도는 아쉽다"며 "확률형 아이템 정보의 불투명성과 아이템 구매에 들어가는 과도한 비용으로 이용자 불만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후보는 규제 방안으로 △확률형 아이템의 구성 확률 및 기댓값 공개 △컴플리트 가챠 금지 △고의적인 확률 조작 업체에 대한 처벌 등을 내걸었습니다. 또 현재 계류 중인 게임산업법 개정안 법제화 지원도 약속했습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페이스북 캡처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페이스북 캡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도 페이스북을 통해 "게임은 결코 질병이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윤 후보는 "일부에서는 게임중독을 우려해 질병으로 분류하고 '셧다운제'를 통해 강제적인 개입을 하는 시도도 있었다"라고 비판하며 "지나친 사행성이 우려되는 부분 이외에는 게임에 대한 구시대적인 규제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윤 후보는 "확률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방향으로 게이머들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게임 등 미래 신기술 분야에 대한 소통 창구를 활짝 열고,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 페이스북 캡처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 페이스북 캡처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도 "자율규제가 아닌 법적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안 후보는 페이스북을 통해 "업계 측에서는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지만, 강원랜드의 슬롯머신도 확률을 공개하고 있어 설득력이 없다"며 "똑같은 확률형 상품인데 돈이 걸린 슬롯머신은 영업비밀이 아니고 오히려 아이템 뽑기는 영업비밀이 되는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습니다.
안 후보는 "이건 정상적인 사업이라고 볼 수 없다. 편법으로 규제를 피한 도박"이라며 "게이머들이 사행적 요소를 선호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도박 같은 환경에 몰아넣는 것이 올바른가"라고 반문합니다.

0

0

© 2003 CBS M&C, 노컷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