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아이들이 군에 가서 죽으면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나요".
검은 상복을 입은 한 엄마가 울부짖습니다. 연극 '이등병의 엄마' 중 한 장면인데요. 단지 연기일까요? 실제 군 의문사로 아들을 잃은 엄마가 무대에 섰습니다. 선임병들의 상습 구타와 가혹 행위로 아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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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이 군사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 6월까지 군내 폭행 및 가혹행위는 총 4275건으로, 그 이전 5년간 발생건수보다 600여 건이 더 늘었습니다.
그러나 실형 선고율은 이전 같은 기간보다 더 떨어져 1%에도 미치지 못했는데요. 이에 소 의원은 "사전적으로는 예방대책이 실효성 없고, 사후적으로는 군 내 폭행이나 일탈행위에 대해 엄벌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강감찬함.
해군 강감찬함에서 선임병들에 폭언, 폭행, 집단 따돌림을 당한 정모 일병이 지난해 6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선임병은 정 일병에게 "너가 죽어서 우리 배를 빨리 떠나면 좋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머리와 가슴을 밀쳐 갑판에 넘어뜨리기도 했죠.
정 일병은 함장에게 선임병 3명의 실명을 적어 신고하고, 가해자 전출과 비밀유지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함장은 분리조치를 하지 않고, 오히려 정 일병과 가해자들 간 대화를 주선했는데요.
또 상부에는 정 일병의 최초신고 이후 한 달여가 지나서야 보고했죠. 이마저도 부대 내 폭행, 가혹행위를 이르는 '병영부조리'가 아닌 '신상특이장병(도움병사)' 발생으로 말입니다.
군인복무기본법에는 다른 군인이 구타, 폭언, 가혹행위 등 사적 제재를 한 사실을 알게 되면 군 수사기관 등에 즉시 신고하도록 돼 있습니다. 함장 등 지휘부는 제43조 신고의무와 제45조 신고자 보호 규정도 지키지 않은 것이죠.
故정 일병의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중 일부. 군인권센터 제공 가해자들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 일병은 생전 주임원사에게 처벌 관련 질문도 했습니다. 사건 정식수사나 가해자 전출은커녕, 벌점 부과로 마무리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는데요.
실제 정 일병이 병가로 하선하자, 함장은 '군기지도위원회'를 열어 가해자들에 벌점 및 외박 1회 제한 조치한 뒤 사건을 마무리하죠. 군기지도위원회는 형사 절차도, 징계 절차도 아니며 함장 주관하에 함내에서 경미한 과오를 처리하는 기구입니다.
정 일병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군 당국의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그마저도 사망 열흘째 되던 지난해 6월 28일 함장 등 강감찬함 부대원들이 청해부대로 투입되면서 중단됐는데요.
이후 정 일병이 가해자로 지목한 선임병 3명 가운데 1명만 폭행 혐의로 형사입건됐고, 나머지 2명은 폭언 혐의로 감봉 3개월 징계를 받았습니다. 지난달 26일 해군에 따르면 함장은 중령으로 강등, 부장은 정직 3개월 처분과 진급 취소로 징계를 받았는데요. 이들은 모두 징계 결정에 항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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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징계업무처리훈령에는 영내 폭행 및 가혹행위에 대한 징계양정 기준이 규정돼 있습니다. 군인간 폭행은 함‧영내 자체 규율로 군기훈련이나 벌점 정도를 받을 일이 아닙니다. 신고와 수사,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건 군복무기본법과 부대관리훈령에도 어긋나죠.
▶국방부 부대관리훈령 제18조(위반자에 대한 처리지침 )제2항 |
구타·가혹행위자 및 사적지시 및 운용금지 위반자는 엄중한 형사처벌과 징계처벌을 하며, 피해자와 합의한 경우와 경미한 구타·가혹행위, 사적지시 및 운용금지 위반 행위도 처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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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군 징계 영창제도 개선을 위한 정책권고'에서 "상습적이고 상해를 동반한 폭행을 했음에도 지휘관의 재량에 따라 형사처벌을 하지 않고 영창 처분을 하는 경우가 다수 발견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영창 제도(현 군기교육대)는 범죄 사실이 기록되지 않는 처분이었죠.
사실 군에서 폭행 및 가혹행위에 대한 훈령을 마련해 징계하기 시작한 건 1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이전까지는 일반명령 위반에 해당하는 품위유지의무 위반 조항을 적용해 처벌했는데요. 폭행 및 가혹행위를 '그 밖의 비행사실'에 해당시켜 지휘관이 처벌 수위를 결정했습니다.
지난 2014년 10월 30일 윤일병 사망사건 선고공판에서 유가족들이 재판정을 빠져나오는 모습. 당시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유가족에게 '죄송하다'고 이야기한 가해자는 한 명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 집단폭행과 가혹행위로 숨진 윤일병 사건을 계기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출범해 '영내 폭행죄' 신설을 권고했습니다. 군인 간에 폭행이 발생하면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가해자를 처벌하는 내용인데요.
이러한 형법상 반의사불벌 규정을 영내에서 군인 간 폭행‧협박이 발생한 경우엔 적용하지 않고 처벌하는 것으로 2016년 5월 군형법 개정안이 최종 의결됐습니다. 영외에서 휴가 중 군인 간에 폭행이 일어난 경우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것이죠.
당시 국방부는 "군형법과 징계업무처리 훈령 개정으로 병영 내 구타 및 가혹행위를 예방하고 건전한 병영 문화를 조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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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대와 달리 군내 폭행 및 가혹행위 상황도, 피해자의 고통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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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내 폭행 입건 수는 2016년부터 5년간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는데요. 가혹행위 역시 줄어드는 듯하다 폭증했죠.
클릭하거나 확대하면 원본 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소병철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폭행‧가혹행위에 대한 처벌로 불기소가 1238건, 약 29%로 가장 많았습니다. 기소유예와 같은 불기소 처분의 경우, 범죄를 저지른 사실은 있지만 공소 제기를 하지 않을 뿐입니다. 이어 선고유예 51건과 집행유예 127건을 포함하면
약 33%는 실질적인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것이죠.
군사법원 판결문 열람 서비스를 이용해 2020년 1월~2022년 1월(26일자 기준, 2년간) '폭행'을 키워드로 검색한 판결은 총 399건입니다. 여러 혐의로 중복된 경우를 포함해, 도구를 사용한 특수폭행 사건 65건, 위력행사가혹행위 사건 42건 등입니다.
폭행‧특수폭행 사건 중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를 받은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 2020년 10~12월 피고인은 동기생인 피해자 3명을 군사시설 내에서 6차례 걸쳐 폭행했습니다. 안부 인사를 안 해서, 부름에 응답하지 않거나 늦게 와서, 표정이 마음에 안 들어서 피고인은 피해자들을 때렸습니다. 재판부는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벌금 50만 원을 선고 유예했습니다.
#. 2020년 10~11월 피고인은 피해자 2명을 군사시설 내에서 7차례 걸쳐 폭행했습니다. 또 생활관에서 피해자 7명을 22회간 강제추행하기도 했습니다. 피고인은 휴식을 취하는 피해자에게 성기 부위를 접촉하고, 손을 뿌리치는데도 엉덩이와 가슴 부위를 만졌습니다. 재판부는 "남은 복무기간 동안 성실하게 군 복무를 마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징역 10월, 벌금 10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습니다.
군형법은 민간인에게 적용되는 일반형법보다 처벌수위가 높습니다. 군형법에서는 일반형법과 달리 강제추행 처벌의 하한선을 징역형으로 두고, 폭행에 대해서는 특수상황이나 피해자의 신분 등을 고려해 가중처벌하도록 돼 있는데요. 문제는 각종 감형으로 실형을 피하는 경우가 다수라는 것이죠.
일부 군사법원에서는 형을 깎아주면서 황당한 양형 이유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육군 제1군단 보통군사법원은 초병근무 중 후임병을 군용 대검으로 수회 찌르고 5회에 걸쳐 폭행한 피고인에게 "만기전역을 하여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기인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징역 1년을 선고 유예했습니다.
일각에선 군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민간 로펌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사건 처리에 부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지난해 11월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공군 이모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 관련 공군본부 보통검찰부 소속 군검사들의 대화 녹취록에 따르면, 군검사인 전모 소령이 "우리도 나중에 나가면 그렇게 전관예우로 먹고살아야 되는 거야. 직접 불구속 지휘하는데 뭐 어쩌라고?"라며 후임 군검사를 입단속 시켰습니다. 이에 인권센터는 가해자 변호사가 소속된 로펌에 대한 전관예우가 있었다고 주장했죠.
피고인이 여러 정상참작과 공공연한 전관예우로 유리한 상황에 놓일 때, 피해자에게는 어떤 보호 조치가 이뤄졌을까요?
지난 2014년 공군 모 전투비행단에서 한 병사가 100여 차례 가까운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지휘부는 즉각 분리는커녕,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선처해줄 생각이 없는지 물었는데요. 또 당시 피해자의 변호인은 부대를 방문해 증거기록 복사를 요청했지만, 열람만 허가받는 등 정보 접근을 제한받았습니다.
지난해 7월 제18전투비행단에서는 집단폭행과 감금, 성폭력 의혹 사건에 대해 군사경찰이 가해자 조사는 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먼저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받자고 소환 통보했다 연기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8월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군사법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는 모습. 윤창원 기자
폐쇄적인 군 사법기관이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다는 지적은 국정감사에서 빈번히 제기됐습니다. 그때마다 '군 사법 개혁'이란 말만 공허한 답변으로 떠돌았습니다.
이미 2004년 참여정부 청와대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 평시 군사법원을 폐지하자는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제시했지만, 군 수뇌부는 군의 특수성을 무시한다며 반발했고 결국 폐기됐죠.
지난해 10월 병영문화 개선 대책기구인 민관군 합동위원회(이하 합동위)는 군 사법제도 개선 등 73개안을 국방부에 권고했습니다. 군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수임 제한 강화 방안, 평시 군사법원 폐지 내용이 포함됐는데요.
그러나 합동위 권고가 나오기에 앞서 평시 군사법원 폐지 내용이 빠진 군사법원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 법사위원회를 통과했죠. 지난해 8월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해 올 7월부터 성폭력과 군인 사망사건, 입대 전 범죄에 대해서만 1심부터, 이를 제외하고는 항소심부터 민간법원으로 이관됩니다.
평시 군사법원 폐지를 촉구해온 시민사회단체는 법사위를 향해 "누더기 졸속 법안으로 반복되는 군 내 폭력사고를 근절하고 책임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라며 비판했습니다.
사람을 때리고 괴롭히는 게, 군에서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이기에 군사법체계가 작동해야 하는 걸까요?
지난해 6월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군사법원법 개정안에는 군형사사건 중 80% 이상이 교통·폭력·성범죄 등 군의 특수성과 무관한 범죄라고 나옵니다.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는 "군 성폭력의 주범은 군 자체"라며 "비군사 범죄는 민간에서 객관적으로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데로 간다고".
드라마 <D.P.>에서 군내 가혹행위를 당한 피해병사가 가해 선임병들이 전출 간다는 소식에 분노합니다. 이 대사를 두고 현실과 다르지 않은 뼈아픈 냉소라고 평할 것만이 아니라, 실제 군내 폭행‧가혹행위를 저지른 이들에게 누군가를 아프게 한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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