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요약비혼 동거 가구, 제도적 어려움 여전
다양한 형태의 가족 포용 필요
하늘나라로 돌아간 선녀
하늘나라에 있는 선녀는 착잡하다. 남편인 나무꾼과 떨어져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도 안 올려놓고 비혼 동거인지 뭔지 해서 아비 마음 고생하게 하더니, 힘들게 살 거면 하늘나라로 올라와!'.
아버지인 옥황상제의 불같은 호령에 선녀는 나무꾼을 두고 혼자 하늘나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선녀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친구들을 불러 고민을 털어놓았고 '흥부네 부부',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부부'를 같이 만나 제1회 '비혼 동거모임' 이른바 '비·동·모'를 시작했다.
흥부 말대로 국내에선 비혼 동거 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현재 비혼 동거 가구는 그 수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조사 결과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간접적으로나마 '비친족 가구 수'를 통해 어림짐작할 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5년엔 21만 4421가구에 지나지 않았던 비친족 가구는 2020년 42만 3459가구로, 5년간 약 50% 늘어났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통계청 제공 그들이 동거를 약속하게 된 이유
비혼 동거를 결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그 중 하나는 끝없이 상승하는 집값이다. 올해 3월 한국부동산원에서 발표한 종합주택의 평균 매매 가격은 전국 기준 4억 2725만 원이다. 2인 가구의 기준 중위소득이 약 326만 원인 것을 고려하면, 아무런 경제적 도움 없이 2030세대가 본인 소유의 집을 마련하려면 지출 없이 수입 전액을 모아도 10.9년이 걸리는 수준이다.
일자리가 집중돼 있어 인구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 서울은 종합주택의 평균 매매 가격이 8억 8186만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았다.
국내 주택 가격지수도 계속 상승 중이다. 지난해 6월을 기준(100)으로 2012년 3월 약 84.5에서 2022년 3월은 약 104.7로 뛰어 올랐다. 매년 상승하는 주택시장의 평균 매매가격을 안정화 하지 않는다면 신혼부부가 결혼 시장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높은 결혼 비용 역시 문제다.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매년 발표하는 결혼비용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올해를 기준으로 주택자금을 제외한 결혼 비용은 총 4720만원으로 집계됐다.
결혼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결혼 상품을 줄이고 싶어하지만 △부모의 전통적 사고방식(35.8%) △고착화된 결혼 절차(31.2%) △예의와 절차를 따르고 싶은 의사(18.7%) △주변의 이목과 체면(13%) 등 다양한 이유로 축소가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부동산원 주택매매 가격지수 20대 남성 A씨는 "한국 사회에선 결혼은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결혼은 단순히 좋아하는 사람 둘이 만난다는 것을 넘어 가족과 가족이 맺어진단 인식이 크다"며 "그 속에서 남성은 가장이란 직위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언급했다.
20대 여성 B씨는 "기혼 여성이 면접 과정에서 출산 계획과 같은 무례한 질문을 받았단 사례를 숱하게 봐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여성인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기혼 여성이 미혼 여성에 비해 구직이 힘들 것 같다"며 "아직은 육아나 가사노동이 여성의 일로 여겨지고 있어 결혼이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0년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한 비혼동거실태분석연구에 따르면 비혼 동거 사유(1순위)에서 '형식적인 결혼 제도에 얽매이기 싫어서(7.9%)' 항목이 19개의 항목 중 4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연령별로 살펴봤을 때 △20대(5%) △30대(7.1%) △40대(12%) △50대(19.4%)로 20~30대에 비해 40~50대는 상대적으로 현재의 형식적 결혼 제도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였다.
비혼 동거 사유로 '곧 결혼할 것이라서' 항목의 연령별 수치가 △20대(12%) △30대(13.7%) △40대(7.2%) △50대(8.1%)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는 다른 연령대에 비해 40~50대의 비혼 동거는 결혼으로 가는 과도기적 단계가 아닌 적극적 선택의 결과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 2020년 비혼동거 실태 분석 연구. 여성가족부 제공 '그런 걸 왜 하냐'고 묻는 사회
20대 여성 C씨는 "동거를 한다고 밝혔더니 소위 '발랑 까졌다'고 보는 편견도 있었다"면서 속상해했다. 그는 "주변 지인은 나중에 결혼을 하거나 다른 이와 연애를 시작할 때 흠이 될 수 있단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을 언급했다.
이 때문에 동거 사실을 숨기는 커플도 있었다. A씨는 "동거를 한다고 밝혔을 때 결혼을 할 것이라 넘겨짚거나, 본인을 가벼이 여기기도 했다"며 "동거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아 지인들에게 동거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한편 자녀가 많은 흥부는 사회적 인식을 신경쓸 겨를도 없이 제도적 측면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자녀가 있는 동거 가족은 더 큰 어려움이 뒤따른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비혼동거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동거 중이며 자녀가 있는 부모가 겪는 어려움으로 △출생신고(52.3%) △의료기관에 보호자 필요 시(47.3%) △보육시설이나 학교에서 가족관계 증명 시(42.9%) 등으로 집계됐다.
여성가족부 2021년 비혼동거실태조사. 여성가족부 제공 비혼 동거 가족이 겪는 자녀 양육 어려움을 물은 결과 △세금 납부 시 인적공제나 교육비 혜택이 없다(62.4%) △부모 중 1명이 보호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53.1%) △부정적 시선이 있다(46.8%) 등이 있었다.
국내엔 사실혼 제도로 보호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실혼을 인정받기 위해선 △가족들이 동거 사실을 알고 있는가 △결혼식을 올린 적이 있는가 △경제 관리를 함께 했는가 △상견례를 했는가 △양가의 가족 행사 또는 제사에 참여했는가 △주변 지인이 부부로 인식하고 있는가 등을 증명해야 한다.
조건이 추상적일수록 사실을 증명하기 어려워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실혼을 인정받았다고 해도 출산 및 육아, 장례 등으로 휴가를 받을 수 없으며 연말 정산 소득 공제 등 혜택에도 제약이 발생한다.
우리는 '팍스(PACS)' 커플입니다
팍스를 맺은 지 n년째인 미녀 벨과 야수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고 있다. 팍스는 공동생활 약정(Pacte Civil de Solidarite)의 약자로 프랑스에서 1999년에 시행된 법안이다. 이 법안은 연인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의지대로 함께 거주하며 아이를 출산해도 차별 없이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1990년대 프랑스는 혼인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데 반해 동거 인구는 급증했다. 이에 사회적으로 기존 가족 제도의 한계를 인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팍스가 시행됐다.
팍스 가족은 단지 결혼보다 간소한 절차를 밟을 뿐, 결혼처럼 충분한 법적 권리를 보장받는다. 가족 수당과 사회보장 급여, 소득세 산정 등에서 혼인 가구와 동일한 혜택을 받고 자녀에게도 정부의 지원이 이어진다. '정상가족'의 틀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팍스로 프랑스인들은 새 가족을 꾸렸다. 프랑스 통계청에 따르면 팍스 협약을 맺은 커플은 도입 첫해인 지난 1999년 6151쌍에서 매해 꾸준히 증가해 2020년에는 17만 3894건으로 조사됐다. 같은 해 15만 4581건으로 조사된 결혼 건수보다 무려 약 2만 건 이상의 높다.
팍스 제도가 프랑스의 합계 출산율에 크게 기여했단 평가를 받는다. 한때 1.5%까지 떨어진 프랑스의 합계출산율은 2019년 1.97%까지 회복했다.
가족 뭐 있어? 밥 먹으면 다 가족이지!
동거 중인 커플들은 제도 개선에 입을 모았다.
애인과 동거를 하고 있는 B씨는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 등의 위급 상황이 생겼을 때를 생각한다면 불안하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같이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 임시보호자가 되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제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선 비혼동거실태조사에 따르면 비혼 동거 가족에게 필요한 정책으론 △동거인에게 법적 배우자 권한 인정'(65.4%) △동거 관계에서 출생한 자녀에 대한 부모 지위 인정(61.6%) △공적 가족복지서비스 수혜 시 동등한 인정(51.9%) △사망 및 장례 시 법적 배우자와 동일하게 인정(50.2%) 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 2021년 비혼동거실태조사. 여성가족부 제공
'가족'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단 입장은 전문가들도 공감한다. 국내에도 프랑스의 팍스와 비슷한 법안인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언급된다.
김경선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지난해 재임 시절 개최된 가족정책포럼에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아 제도권 밖으로 밀려났던 국민들을 포용하고, 아이들도 가족형태와 상관없이 보편적 인권을 가진 사회 구성원으로 존중받으며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전 차관은 "비혼 동거 가족이 사회적 편견과 차별 없이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 전문가 등과 지속적인 논의를 거쳐 제도를 개선하고 정책적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학생들이 결혼을 주제로 참여한 데이터 저널리즘 프로젝트 결과물입니다. 취재=이건우 황예원 김정은 박지민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