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한국 현대사에 남을 비극 중의 비극이다. 이런 대형 참사는 그 지역 사회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들기 마련이다. 세월호의 직격탄을 받은 안산은 어떨까? CBS노컷뉴스는 세월호 1주기 특집으로 지난주 세월호 가족의 생활실상을 보도한 데 이어 이번주에는 세월호 참사가 안산 지역에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지난 3월 20일 치유공간 '이웃'에서 세월호 희생자 생일잔치가 열렸다. (사진=권민철 기자)
지난달 20일 안산 '이웃'이라는 이름의 치유공간에서 세월호 희생자의 생일잔치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돌아오는 희생자들의 생일잔치가 대부분 이곳에서 열린다.
마치 마을회관을 연상케하는 '이웃'에 이날도 희생자의 가족, 친구, 이웃, 교회 선후배, 학원 교사들까지 6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주인공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물을 시청하고 그와 얽힌 추억을 이야기고 마음에 담아뒀던 편지를 써서 가족들과 나눴다.
때로는 웃다가, 어느새 찾아든 그리움에 눈물을 닦기를 반복하며 2시간을 보냈다.
주최측은 이를 치유프로그램이라고 불렀다.
'이웃' 이명수 대표의 설명이다.
"시도 써주고 영상도 만들고. 한 아이의 생일잔치를 준비하려면 한 20여명의 팀이 구성이 돼요. 같이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어릴 때 사진도 보여주고, 부모님 인터뷰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서 서너명 인터뷰도 하고. 치유프로그램인 거죠"
이곳에는 생일잔치 외에도 개인용 상에 밥을 차려 가족들을 먹이는 '치유밥상'도 일상적으로 준비된다.
"부모들이 지금 막 내팽겨진 채 지내왔잖아요. 그래서 좀 귀하게 대접을 해주어야겠다고 만든 거에요. 많을 때는 하루에 100명 정도가 점심, 저녁을 먹어요. 밥을 먹을 때는 각상으로 먹게 해요. 그게 되게 의미가 있는 거죠. '내가 귀한 존재다'라는 것을 부지불식간에 알도록 하기 위해 고안된 거에요. 일상으로 회복을 위해서 말이죠."
이곳에서 가족들은 마음껏 울기도 하고 때로는 마사지도 받는다고 한다.
"피해자들 동네가 집도 붙어 있고 그러니까 소리들이 너무 잘 들려요. 그래서 엄마들이나 아빠들이 울 데가 없어요. 울어야지 치유가 시작이 될 수 있는데 그러질 못했던 거죠. 그래서 여기 와서는 아주 마음 놓고 울으라고 상담실 벽에 흡음제도 많이 넣고 문도 모두 이중문으로 설계돼 있어요. 마사지의 경우는 살을 만지거나 누가 주물러 주거나 그러면은 이 것은 현실이되는 거예요. 내가 나를 느낄 수 있는거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같은 걸 문득 문득 느끼게 되는 거예요. 나를 누군가가 따뜻한 손으로 만져 주고 있구나, 혼자가 아니구나 이런 느낌을 받는 게 치유에서는 되게 중요한 거거든요. 이 과정을 통해서 일상으로 회복할 수 가 있는 거예요."
비온 뒤에 땅이 굳는다 했다.
치유공간 '이웃'처럼 안산 곳곳에서는 이렇게 이웃인 피해자들을 배려하고 그들을 돕고 그들과 연대하려는 선행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웃'에서 생일잔치가 열리던 시각 안산 시청앞 세월호 천막에서는 지역 아줌마들이 세월호 노란 리본을 제작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이곳에서 만난 오정숙(49) 씨는 "전국적으로 노란 리본 나눔을 했지만 1주기가 가까워오니까 요청하신 분들도 많고 해서 이걸 다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지역 아주머니들로 조직된 엄마의 노란손수건 회원들이다.
엄마의 노란손수건 정세경 대표는 "우리 엄마들이 아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죽음의 진실을 밝히는데 힘을 보태기 위해 엄마의 노란손수건이라는 카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용기 있고 당당한 엄마를 상징하는 카페를 만들어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엄마들이 함께 소식도 나누고 정보도 공유하기 위해서 조직했다고 한다.
이들 엄마들 외에 이 지역 대학생들은 '책공감프로젝트'라는 1:1 학습지원 프로그램에 참가해 희생자 형제자매들의 잃어버린 학습의욕을 자극하고 있다.
일종의 멘토사업인 것이다.
희생자 형제자매들을 위해서는 이외에도 공부방, 음악방 등의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중이고, 희생자 부모들을 위해서는 희생된 아이 친구들이 희생 학생에 대한 기억을 편지로 써서 전달하는 노란 우체국 사업도 펼쳐져 오고 있다.
또 다른 한편에선 주민들간 유대 강화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다시 세우기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고잔동, 와동, 선부동에서는 '하늘 땅 별마을', '희망마을' 같은 마을공동체 활동이 활발하다.
'희망마을' 김은호 대표의 설명이다.
"곳곳에서 회복력이 대단하다는 걸 느낍니다. 안산시가 가진 회복력으로 도시가 피폐해지고 무너지고 상처투성이가 될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가 점차 회복해가고 있는 사례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지역주민들과 대화모임을 여러 차례 가졌습니다. 세월호 사건들을 통해서 어떤 마을을 원하냐 이런 이야기들도 같이 나누고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갈등들에 대해서 공감하는 자리였습니다."
와동의 엄마들 모임인 '와리맘스'도 세월호를 거치면서 좀 더 끈끈해졌다고 한다.
임미라 회장의 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아이를 더 보살펴야 된다는 그런 게 생겼습니다. 와리맘스 엄마들 안에서도 우리 아이들을 우리가 지켜야 겠다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뭐 하나만 있어도 동네엄마들이 동네아이들을 같이 돌봐주는 상황이 된 거죠. 세월호 참사로 인해서 엄마들 모임이 단단해졌다고 할까요?"
이 밖에 세월호 참사를 주제로 한 대시민강좌, 세월호의 교훈을 노래대회로 승화시킨 노란물결합창단 등도 적극적인 시민참여의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안산시민 1,000명이 한자리에 모여 '세월호 이후'에 대해 난상토론을 벌였던 '1000인 토론회'의 경우는 대형재난에 대한 지역사회의 성숙한 대응을 보여준 대표적인 집단 지성의 사례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행사였다.
여기에 과거 어느 재난에서도 보기 힘든 지역 주민들의 다양한 형태의 재능기부도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자원봉사활동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안산 자원봉사센터 장영숙 센터장은 "분향소나 광화문에서 서명받는 일에 참여하신 분들도 있었고, 300일 기념해서 팽목까지 도보행진 할 때도 많은 시민분들이 자원봉사 차원에서 참여하고 활동했다"며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단순한 재난 재해에 구호 활동으로 참여하던 자원봉사가 시민 참여 형식으로 지평이 확장 된 것"이라고 말했다.
☞ [CBS노컷뉴스 특별기획] "세월호 1년, 대한민국은 달라졌습니까?" 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