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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는 사람의 내면에는 '황야의 이리'가 살고 있다"



책/학술

    "책을 보는 사람의 내면에는 '황야의 이리'가 살고 있다"

    신간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창과 미술이 있는 인문학 산책'

     

    책을 보는 사람의 내면에는 '황야의 이리'가 살고 있다. 내면이라는 황야를 달리는 이리는 갈기를 휘날리며 꿈을 찾는다. 눈 덮인 떡갈나무 숲을 지나면 오롯한 꿈이 모습을 드러낼까, 해거름 이는 강물에 닿으면 꿈을 찾을까. 이리는 오늘도 활자가 새겨진 책 속의 황야를 질주한다. (…) 눈 덮인 황야를 달리는 여자는 고독한 활자의 숲에서 무엇을 찾고 있을까. 책의 행간을 순례하는 여자의 눈빛은 설원에서 본 이리의 눈망울을 닮았다. 노루를 찾아 토끼를 찾아 들판을 달리는 이리처럼, 여자는 활자 냄새를 맡으며 무엇인가 찾고 있다. (p175-176 빈의 나무 벤치에서 책을 보던 여자는 눈 덮인 황야를 달리는 이리였다)

    <창에는 황야의="" 이리가="" 산다="">는 시인이자 산문작가 민병일이 '길 위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창'들을 매개로 철학적·예술적 사유를 자유롭게 풀어낸 에세이다.

    바이칼 호숫가 리스트뱐카 마을의 창과 샤갈의 창, 함부르크 초가집의 동화적 시정 넘치는 창, 20세기 비애 서린 탄광촌의 창, 소설가 박완서의 숨결이 남아 있는 와온 바다의 창, 일본의 홋카이도 설국의 창, 몽골 초원의 창,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창 등에 이르기까지 도시를 순례하며 마주한 창들은 고유의 색과 질감 그리고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책에 수록된 200여 컷의, 저자가 여행 중에 직접 찍은 사진들은 여행지의 정취를 날것으로 느끼게 한다.

    중세·현대 서양화로부터 일본 우키요에까지 풍부하게 다루어진 미술 작품들을 따라가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독자들은 "고흐에서 요제프 보이스에 이르는 현대미술의 중요한 이정표를 따라 저자와 함께 산책"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적 즐거움뿐 아니라 글 전반에 흐르는,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 역시 읽는 이에게 공감각적 체험을 선사하는 특별한 요소이다.

    책의 제목에 언급된 '황야의 이리'는 헤르만 헤세의 시에서 가져온 것이다. 작가는 창들을 순례하던 중 '눈 덮인 황야에서 노루를 꿈꾸며 홀로 울부짖는' 이리의 모습을 보았노라고 고백한다.

    창이라는 사물에 숨겨진 삶과 허무, 삶이 창에 남긴 질감, 창이라는 형태가 말하고 있는 예술적인 것을 인문적으로 사유하고 싶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은 독자에게 다채로운 감동을 선사한다. 사진에 담긴 창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창에 비친 사물의 내면과 나의 내면이 하나의 풍경 속으로 녹아드는 진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을 섬세한 필치로 아우르는 에세이는 루카치가 에세이의 본질이라 일컬었던 영혼과 형식의 합일에 이른다. 요컨대 이 책은 일찍이 바그너가 꿈꾸었던 한 편의 종합예술작품이다.
    -임홍배(문학평론가·서울대 독문과 교수)의 발문 중에서

    책 속으로

    예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바이칼 호숫가의 리스트반캬에 와서야 샤갈의 그림에 나오는 나무 집과 창의 아름다움을 실감했다. 그가 그림을 통해 꾼 꿈의 실체가 현실을 초월하려는 게 아니라, 현실의 이면에 존재하던 또 다른 현실이었음을 알았다.
    (p.29 바이칼 호숫가 리스트뱐카 마을의 창)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름다운 것은 어느 순간 우리 곁에 와 있다. 은하를 건너온 모차르트의 나비들은 어느 순간 지상에 음악의 꽃을 피우고는 그와 함께 홀연히 사라져갔다. 모차르트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미의 판타지를 음악의 풍경으로 그렸고, 생명의 나비가 춤추는 음악을 통해 생의 덧없음마저도 경이로움으로 바꿔놓는다. 그의 오선지에서 춤추는 나비들은 우리를 지극히 높은 행복으로 이끈다. 어디선가 한 번은 들었음직한 모차르트 음악을 만날 수 있는 잘츠부르크는 행복 충전소였다. 행복은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찮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생의 순간마다, 잠복해 있던 햇빛처럼 그렇게 반짝이고 있는 게 행복임을 느끼게 한 잘츠부르크.
    (p.92 잘츠부르크 모차르트의 창)

    작가는 자신이 지은 이야기 집을 저 스스로 허물고, 또 다른 경험에 실려 있는 사유를 영혼의 원고지에 새긴다. 뭇 작가들이 그렇듯 선생님 역시 경험 속에서 예술을 길어 올렸다. 선생님은 “소설 속 이야기의 집은 ‘살아 있는 유기체와 같아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될 때마다 선생님의 갈비뼈 한쪽이 조금씩 주저앉았다. 이뿌리에 균열도 일었고, 머리털이 한 움큼씩 빠졌다. 그것은 예술가들이 운명적으로 받아야 할 천형이다. 선생님이 와온 바다에 와서 자신의 이야기 집을 하나씩 해체할 때면, 언어의 기둥과 서까래, 주춧돌이, 형상의 이미지들이, 노을 지는 바다로 밀려갔다.
    (p.487 소설가 박완서가 사랑한 와온 바다와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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