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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았던 선수 생활 접고 전력분석원 변신한 이대혁



농구

    짧았던 선수 생활 접고 전력분석원 변신한 이대혁

    [코트의 숨은 조연] ③ 전력분석원

    짧은 선수 생활을 마감한 뒤 전력분석원으로 변신한 이대혁 KGC 전력분석원.

     

    농구 코트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오롯이 코트 위를 누비는 선수들, 그리고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의 몫이다. 하지만 주연으로만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조연들도 필요하다. 선수단이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매니저를 비롯해 선수들의 몸을 관리해주는 트레이너, 상대를 면밀하게 파악해주는 전력분석원, 그리고 외국인 선수의 손발 역할을 하는 통역까지. 농구 코트의 숨은 조연들에게도 잠시나마 스포트라이트를 비춰보려 한다.[편집자주]

    "재활을 더 하고 복귀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워요."

    고등학교 3학년이던 2006년 9월. 체대 입시를 준비하던 이대혁(28)은 홍대부고 농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202cm 큰 키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1년 반 동안 입시 준비를 한 것도 아까웠고, 늦은 나이에 농구를 시작하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설득에 넘어갔고, 1년을 쉰 뒤 2008년 다시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농구 선수 이대혁의 시작이자 현 KGC 전력분석원 이대혁의 시작이었다.

    이대혁 전력분석원은 "체대 입시를 준비했다. 9월 모의고사를 보고 대학을 어디 쓸까 알아보고 있었다"면서 "그 때 홍대부고에서 제안이 왔다. 입시 준비를 했는데 무슨 운동이냐고 거절했다. 19살이 이제 와서 운동을 하냐고 거절했다. 그런데 긍정적인 말을 너무 많이 해주셔서 '열심히 하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시작한 농구. 이대혁 전력분석원은 큰 키와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건국대 시절 유망주로 손에 꼽혔고, 프로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십자인대가 시작이었다. 4~5개월 재활 후 복귀했지만, 내측인대도 다쳤다. 이후 조급해졌다. 복귀를 서두른 탓에 또 부상을 당하며 2년 가까이 제대로 뛰지 못했다. 운동 능력도 점점 떨어졌다. 드래프트 순위도 전체 11순위로 밀렸다. 이대혁 전력분석원이 지금도 아쉬워하는 순간이다.

    이대혁 전력분석원은 "처음 농구할 때는 빠르고 높게 뛰는 게 가장 좋은 줄 알았다. 칭찬을 해주니까 더 빨리 더 높게 뛰려고만 했다. 부상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서 "운동을 일찍 시작했으면, 여유가 있었을 것 같다. 그랬으면 덜 다치거나 안 다치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처음 부상을 당하고, 수술 후 복귀했을 때가 정말 아쉽다. 재활 운동을 하면 몸이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복귀를 굉장히 빨리했다. 그런데 3일 만에 또 다쳤다. 거기에서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 때가 가장 아쉽다. 재활을 더 하고 복귀했으면 다시 안 다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프로 생활도 일찍 끝났다. 운동 능력이 저하되면서 벽이 느껴졌다. 마침 손창환 전력분석팀장이 코치가 되면서 구단에서 전력분석원 제안을 했다. 고민도 했지만, 팀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대혁 전력분석원은 "선수 때도 장점이 많지 않았다. 뛰는 것, 리바운드가 장점이었다. 몸이 좋았다면 다른 능력도 연습할 수 있었을 텐데 점점 벽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스스로 이 팀에서 쓸모가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면서 "다른 것도 생각하는 시기였다. 마침 구단에서 좋은 제안을 해줬다. 농구하다가 다른 일을 하기 어렵다. 남은 이유 중 하나는 형들이 좋아서였다. 선수 때와 달리 이 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수 시절 이대혁 전력분석원의 모습. (사진=KBL 제공)

     

    농구공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만지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농구를 늦게 시작한 탓에 농구 용어도 잘 몰랐다. 패턴도 공부를 더 해야 했다.

    이대혁 전력분석원은 "처음에는 일하는데 오래 걸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컴퓨터가 고장나지 않는 선에서 이것 저것 만져봤다. 그래서 손에 빨리 익었다"면서 "농구 용어도 잘 몰랐다. 처음 농구할 때 나보고 5번(센터)이라 했다. 등번호가 32번이었는데…. 팀파울도 몰랐다. 그래서 용어를 익히려 NBA 중계를 많이 본다. 또 농구 전문성이 떨어져 최대한 경기를 많이 보려 한다. 또 책도 읽어보고, 손창환 코치께서 쓴 자료도 꾸준히 읽었다"고 강조했다.

    이내 "컴퓨터를 마주하는 직업이 됐다. 활동적인 일을 하다가 정적인 일로 바뀌어 답답하다. 컴퓨터 몇 대를 켜놓고 있으니 전자파 때문에 노화가 빨리 오는 것 같다"고 웃었다.

    이대혁 전력분석원의 목표는 소박하다. 일단 경력을 쌓아 팀장이 되고 싶다. 물론 다른 구단 전력분석원과 다르고 특색있는 분석은 기본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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