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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 서정시집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책/학술

    김종해 서정시집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오규원 시집 <분명한 사건> 문학잡지 Littor(릿터)(2/3월호)

     

    <그대 앞에="" 봄이="" 있다="">는 등단 54년을 맞은 김종해 시인이 평생 써 모은 700여 편의 시들 가운데 따뜻한 희망과 위안, 사랑과 안식의 메시지가 담긴 서정시를 모은 것이다.

    이 시집은 삶에서 느끼는 뼈저린 추위와 아픔, 절망과 상처를 가진 사람에게 따뜻한 희망과 위안, 치유를 깨닫게 해준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 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전문

    만약에 말이지요, 저의 임종 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열두 달 가운데
    어느 달이 가장 마음에 들더냐
    하느님께서 하문하신다면요,
    저는 이월이요,
    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
    바로 언덕 너머 꽃 피는 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
    네, 이월이요, 한 밤 두 밤 손꼽아 기다리던
    꽃 피는 봄이 코앞에 와 있기 때문이지요.
    살구꽃, 산수유, 복사꽃잎 눈부시게
    눈처럼 바람에 날리는 봄날이
    언덕 너머 있기 때문이지요.
    한평생 살아온 세상의 봄꿈이 언덕 너머 있어
    기다리는 동안
    세상은 행복했었노라고요.
    ――「봄꿈을 꾸며」전문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보다 많아짐에 따라 노도질풍기의 격정과 고뇌와 분노도 쇠잔해지고 사람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점점 순응해 간다. 세계 속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며 자기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과의 화해를 도모하게 된다. 아니 반 넘어 강요된 화해를 담담한 심정으로 수락하게 된다. 그것은 그 동안 허락된 산 날에 대한 고마움의 토로요 은혜 갚음인지도 모른다. 화해는 당연히 세계 긍정과 인간 긍정으로 이어진다. 인간 긍정의 적극적 형식이 곧 사랑이다.

    김종해 지음 | 백선제 그림 | 문학세계사 | 120쪽 | 11,500원

     

    오규원 시인 10주기를 맞아 그의 첫 시집 <분명한 사건="">이 다시 출간되었다. 초판이 발행된 지 46년 만이다.

    <분명한 사건="">(초판 1971)은 등단한 해를 전후로 7년간(1964~1971) 쓴 시들에서 30편을 추려 묶은 그의 첫 시집이다. 삶의 터전과 내면의 변전이 한데 일어나던 무렵에 나온 <분명한 사건="">은 이후 장시 「김씨의 마을」이나 「순례」 연작을 완성하기 이전, 등단 초기부터 계속된 언어와 세계의 관계에 대한 시인의 고민을 오롯이 담고 있다. 시인 스스로, 1968년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봄에 완성한 시 「현상실험」을 예로 들며 언어 또는 표현의 불명확성과 애매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고백하고 있다.

    “언어는 추억에/걸려 있는 /18세기형의 모자다” “망명 정부의 청사처럼/텅 빈/상상”이며 “가끔 울리는/퇴직한 외교관댁의 초인종”이라고 작품에서 말하고 있듯, 여기에서의 언어들은 낡았지만 그래도 아름다움과 나름대로의 권위를 지닌 존재들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저는 언어의 힘과 아름다움을 믿으면서도 현실의 언어 또는 ‘나’의 언어는 낡았음을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여실하게 읽힙니다. 언어의 힘과 아름다움을 믿고 있었다는 흔적은 ‘모자’라든가 ‘정부’라든가 ‘외교관’이라든가 하는 것만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장시 「김씨의 마을」이 씌어졌으며,”―「대담|언어 탐구의 궤적: 오규원/이광호」(『오규원 깊이 읽기』, 문학과지성사, 2002)

    「몇 개의 현상」, 「정든 땅 언덕 위」, 「분명한 사건」, 「현황 B」 등 시집 『분명한 사건』에 수록된 시들과 장시 「김씨의 마을」을 쓰던 이 무렵의 시 쓰기를 그는 이상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스스로 분석하기도 한다.

    “그가 『분명한 사건』을 쓸 무렵에는 그의 의식은 비교적 순수했어요. 언어에 대한 믿음이 깊었다고나 할까, 혹은 시에 대한 인식이 그랬다고나 할까요. 하나 대상을 명확히 묘사하려고 할 때 언어는 항상 대상의 편이 되어 그로부터 멀어져갔지요. 결국 그는 자신이 틈입할 수 있는 글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분명한 사건』의 언어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일에 한해서는 그의 편이었지만, 그 자신의 삶을 표백시키고 있었다는 점에 있어서는 그를 배반하고 있었지요.” (『길 밖의 세상』, 나남, 1987, p.288; 『오규원 깊이 읽기』 p.50 재인용)

    이러한 반성은 이후의 시들에 삶의 현장이 적극적으로 들어오게 되는 단서로 읽힌다. 1970년대 관념성이 짙던 그의 시세계는 점차 관념이 구체적인 사회적 내용을 갖추면서 시의 산문화 경향으로 이어지는 등 새로운 한국 시의 해체를 맞게 된다. 작품에 거주지가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그 한 요인이다. “투명한 심상의 세계를 다룬 시들은 세계는 분명해지는데 개인(시인)의 삶이 표백된다”는 오규원의 저 반성은 이후 「순례」 연작시들로 나아가고, 현실과 사물의 현상을 주목하는 시학적 탐구를 거치며(『사랑의 감옥』), 오랜 관념과의 싸움 끝에 ‘날이미지시’라는 극점에 다다른다(『길, 골목, 호텔 그리고 강물소리』,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 『두두』).


    1
    언어는 추억에
    걸려 있는
    18세기형의 모자다
    늘 방황하는 기사
    아이반호의
    꿈 많은 말발굽쇠다
    닳아빠진 인식의
    길가
    망명정부의 청사처럼
    텅 빈
    상상, 언어는
    가끔 울리는
    퇴직한 외교관댁의
    초인종이다.

    2
    빈 하늘에 걸려
    클래식하게 서걱서걱하는 겨울.
    음과 절이 뚝뚝 끊어진
    시간을
    아이들은
    공처럼 굴린다.
    언어는, 겨울날
    서울 시가를 흔들며 가는
    아내도 타지 않는 전차다.
    추상의
    위험한 가지에서
    흔들리는, 흔들리는 사랑의
    방울 소리다.

    3
    언어는, 의식의
    먼 강변에서
    출렁이는 물결 소리로
    차츰 확대되는
    공간이다.
    출렁이는 만큼 설레는,
    설레는 강물이다.
    신의
    안방 문고리를
    쥐고 흔드는
    건방진 나의 폭력이다.
    광장에는 나무들이
    외롭기 알맞게 떨어져
    서 있다.
    -「현상실험」 전문

    오규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92쪽 | 8,000원

     

    격월간 문학잡지 <릿터>4호(2/3월호)커버스토리는 ‘부동산크리피’다. 개인과 가정, 지역과 사회 모두를 지배하게 된 부동산이라는 이름의 괴물에 대해 칼럼 다섯과 이야기 넷으로 말한다. 조남주, 정아은 등의 젊은 작가와 정헌목, 강예린 등 젊은 연구자, 활동가가 필자로 참여했다. 오래된 판상형 아파트의 사실적인 입면이 인상적인 표지 사진은 벨기에의 사진작가 세바스티에 쿠빌리에(Sebastien Cuvelier)의 작품 「Eunma Town」이다. 아파트의 욕망과 가정집의 안락함이 묘한 아이러니를 이룬다.

    장강명, 이영훈, 박태하, 이응준, 서경식 에세이 연재도 4회째를 맞이했다. 문학과 예술, 스포츠와 스토리텔링에 이르기까지 깊은 사유를 엿볼 수 있다. 인터뷰는 등단 10년차를 맞이한 서유미 작가와, 최근 문제작 「비밀은 없다」를 선보인 이경미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듣는다. 예술가와 사회인으로 또한 여성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둘의 비슷하고도 다른 결이 흥미롭다. 최근 민음사에서 ‘이탈로 칼비노 전집’이 완간되었다. 이를 기념하여 유니크한 소설로 주목받은 젊은 작가 이상우가 전집의 두 번역자(김운찬, 이현경)과 대화를 나눴다. 이탈로 칼비노와 이탈리아 문학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이번 호 소설은 두 남성 작가의 몫이었다. 이승우와 가즈오 이시구로, 언어권을 불문하고 두터운 독자층을 보유한 두 작가의 소설을 권한다. 허연, 오은, 안미린, 배수연의 시는 언어의 전위에서 삶의 심층부를 꿰뚫는 한국시의 저력을 새삼 확인시킨다. 《릿터》 4호의 리뷰는 여섯 필자가 열두 작품을 소개한다. 최근 출간된 황정은의 소설집에서 2017년 1월 타계한 존 버거의 작품까지 다양한 색깔의 책들을 다루었다.

    《릿터》 4호에는 숨겨진 보물이 있다. 평소에는 빈 노트였을 공간에 소설을 담았다. 표지 사진 「Eunma Town」의 ‘밤의 버전’을 얼굴로 한 특별 부록에 최진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해가 지는 곳으로』의 일부를 담았다. 소설의 마무리는 여름이 되기 전 ‘오늘의 젊은 작가’로 출간될 단행본으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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