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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박근혜의 나라 vs 차기 대통령의 나라

    박준우·고 김영한·안종범 '비망록'이 시사하는 것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박근혜 정부에서 핵심 실세를 꼽으라 한다면 단연코 '기춘 대원군'으로 불린 김기춘과 우병우를 빼놓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공안, 사정 통치로 떠받든 '반쪽짜리 정부'였다. 그들은 그런 정부를 목표로 지향했고 또 실제로 행동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또 한명의 핵심인 황교안 대행은 그들의 '적폐'를 감추기 위해 청와대 주요문서를 30년간 봉인했다. 대통령기록물로 밀봉해 버린것이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박근혜 정부의 편향과 무능은 전직수석 3명이 남긴 업무수첩 속에 고스란이 기록돼 있다. 박준우 정무수석과 고 김영한 민정수석, 안종범 경제수석의 '비망록' 말이다.

    흔히 비망록을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골자를 적어 둔 책자'라고 말한다. 청와대 주요 수석들이 남긴 업무수첩이라는 것도 비망록이다. 박근혜 정부의 망상과 성격을 낱낱이 보여주는 첫 비방록은 고 김영한 민정수석 업무수첩이었다. 그가 민정수석으로 재직했던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의 기록이다.

    또 하나의 업무수첩이 블랙리스트 재판에서 공개됐다. 박준우 전 정무수석의 비방록이다. 그는 2013년 8월 6일부터 2014년 6월 13일까지 자필 기록을 남겼다. 외교관 출신으로 꼼꼼한 그의 성격답게 매주 월, 수, 금 3차례씩 열리는 김기춘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실수비)와 한달에 한 번씩 열리는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회의(대수비) 내용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박준우·고 김영한·안종범. (사진=자료사진)

     

    고 김영한 수석과 박 전 수석의 비망록을 합치면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인 2013년 8월부터 3년차가 시작되는 2015년 1월까지 만 1년 5개월간 청와대의 국가기조를 오롯이 알아 볼 수 있다. 이 기간은 국정원 댓글사건 항명으로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이 찍어내기를 당하고 세월호 참사를 거쳐 정윤회 문건 유출 수사로 정권이 비선들의 치부를 덮는데 성공할 때까지를 총괄하고 있다.

    두 기록을 보고 여담을 덧붙인다면 '절망'이라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을 찾기 힘들다. 5년 단임제 정부에서 국가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한 일들을 보면 '내편네편' 편가르고 그들이 '좌파'라 칭한 국민을 향해 '돈 끊고 척결하라'는 것이 거의 전부다. 그 어떤 다른 의제를 찾아 보기 어렵다.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청년실업'이나 '저출산' 같은 국가적 어젠다를 테이블 위에 올리는 일이 이상한 일이었을까.

    ◇ "국가가 좌파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

    김기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준우 전 수석은 "박근혜 정부 국정기조가 기울어진 나라, 편향된 나라를 바로잡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그 국정기조는 수첩 안에 또렷하게 적시돼 있다. 2014년 1월 4일 열린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주재의 '실수비' 기록이다. 물론 김기춘의 말이다.

    "국가가 좌파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 나라 바로세우기와 좌파 척결을 불퇴전의 각오로 투지를 갖고 싸워야 한다. VIP(대통령) 혼자 뛰고 내각은 안뛴다. 진도가 안나간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지난 2013년 9월 13일, 사퇴 발표를 한 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던 모습이다. (사진=자료사진)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찍어내기(2013년 9월) 하고 세월호 참사(2014년 4월 16일)가 터지기 중간쯤에 나온 지시 내용이다.

    박근혜와 '복심'인 김기춘의 '전투적 국정기조'는 한 줄에 그치지 않는다. 박준우, 고 김영한 전 수석 비망록은 실수비 때마다 "좌파 때문에 나라가 풍전등화"라는 글로 그득하다.

    박근혜의 '불도그, 진돗개, 살점 발언'도 이 와중에 있다. 2014년 1월 6일 대수비에서 박 전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해야 할 과제를 81개로 정해 놓고 수석들에게 "블독(블도그)보다 진돗개 같이 살점이 뜯어져 나갈때까지 비정상의 뿌리를 뽑아라"라고 지시한다. 이 발언은 그로부터 한달 뒤인 2월 6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때도 언급돼 언론에 공개 됐다.

    박근혜와 김기춘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좌파 쳑결' 국정철학은 절대 양보가 불가능한 가치이고 "(이 싸움에서) '천추의 한'을 남겨선 안된다"고 다그쳤다.

    ◇ '형편없는 국가의제' 왜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인가

    나라를 운영하는데는 '국정철학, 국가의제, 국정기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박근혜 정부 실패를 그들의 '국정기조' 때문이라 한다면 지나친 기우인가.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하여 국민 절반을 '좌파'로 규정하고 끊임없이 배척했다. 또 "국가가 좌파 위에 떠있는 섬과 같다"는 어처구니 없는 '망상'을 국정기조로 했다. 그들은 좌파 쳑결을 외치다 그것을 '신앙화' 했고 정권에 불리한 일이 발생하면 어김없이 '좌파 탓'으로 책임을 돌렸다. 세월호 참사가 그렇다.

    국가의제와 국정기조는 국가 운영 체계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상호 연동된다. 대통령이 정한 국가의제를 관료들은 절대적으로 추종한다. 이명박 정부때 '4대강 사업'과 박근혜 정부의 지지자만 끌고 가는 '반쪽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장관과 관료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지난 10년 보수 정권의 실패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국가의제로 본다면 이와같이 명료하게 드러난다.

    차기 대통령은 무엇을 국가의제로 정할 것인가.

    모두들 차기 대통령은 '독이 든 성배'라며 통합과 화합을 강조한다.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통합과 화합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는 국정기조에서 시작되고 국가 운영체계와 곧바로 연동된다. 국정기조가 수평적, 참여적이지 않고 수직적이라면 국가 운영체제 또한 보수정권 10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보수정권을 반면교사로 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RELNEWS:right}

    국정농단 재판에서 매일 박근혜 정부의 '민낯'을 보는 건 곤혹스럽고 허탈하다. 권력놀음 뿐이다. 청와대가 '어젠다'를 갖고 수준 높은 정보와 현상을 취합해 탁견 높은 정책을 논의하는 곳이라고 많은 국민이 기대한다. 그러나 희망은 '환상'에 불과했다.

    박준우, 고 김영한, 안종범 전 수석들의 업무수첩은 형편없는 국가의제가 왜 무덤으로 가는 지름길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청와대와 정부가 추종자들의 '소굴'이 되는 순간 차기 대통령도 국민도 또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비망록에서 배울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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