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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이라도 배불리 먹고 가지" 울부짖던 네 어머니



사회 일반

    "컵라면이라도 배불리 먹고 가지" 울부짖던 네 어머니

    구의역 참사 1년, 김군의 동료 박창수 씨 "같이 자격증 공부하자 했었는데…"

    - "공구가방에서 컵라면 나오는 순간, 정말이구나 했어요"
    - 김군 떠난 지 1년…2인 1조 철저히 지켜지는 등 많은 변화
    -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들…너무 위험한 일을 시켜버렸다
    - 시간에 쫓긴 김군…제일 싸고 제일 빨리 먹을 수 있었던 게 컵라면
    - "위험에 내몰리지 말고 배곯지 말고 행복하길…"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20:00)
    ■ 방송일 : 2017년 5월 26일 (금)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박창수 (서울메트로 안전업무직, 구의역 김군의 동료)

    ◇ 정관용> 서울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김 모 군이 전동차에 치여 숨진 지가 벌써 1년, 내일모레 5월 28일이 김 군 1주기입니다.

    김 군의 가방에서 나온 기름때 절은 스패너 같은 작업공구 그리고 컵라면, 숟가락. 많은 사람들을 울렸었죠. 당시 은성PSD라는 회사에서 김 군과 함께 근무했던 직장 동료이자 형이죠. 서울메트로 안전업무직으로 일하는 박창수 씨를 오늘 스튜디오에 직접 초대했습니다. 박창수 씨 어서 오십시오.

    ◆ 박창수> 안녕하세요. 박창수입니다.

    ◇ 정관용> 지금도 그 일을 하고 계시죠, 박창수 씨는?

    ◆ 박창수> 그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김 군이 사고 당한 건 얼마나 된 거예요?

    ◆ 박창수> 한 5개월 정도 같이 일을 하다가 그렇게 됐습니다.

    ◇ 정관용> 그래요. 사고 나기 바로 전날에도 함께 식사를 했다면서요?

    ◆ 박창수> 그때 저희가 이제 은성에서 계약을 더 이상 안 하실 것 같다, 이제 그것 때문에 저희가 서로 만나서 노동조합 일을 그때 같이 파업에 참여를 했었어요.

    그때 나왔던 얘기가 이번에는 연장계약이 안 될 것 같다, 다른 데 일자리를 알아봐야 될 것 같다라고 하면서 밥을 먹으면서 고충 얘기도 많이 했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형으로서 얘기를 해 줄 수 있는 그런 부분은 "이제 조금 있으면 자회사도 되고 정규직 전환이 될 것이고 우리를 이제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평상시에도 시간에 쫓겨서 정말로 임금이 너무 작아서 못 했던 공부들을 이제 하나씩 하자. 너랑 나랑 다른 거 자격증 공부도 같이 하자"고 서로 도와가면서 하자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어요.

    ◇ 정관용> 혹시 김 군하고 같은 조에서 활동한 적도 있어요?

    ◆ 박창수> 아니요. 같은 조는.

    ◇ 정관용> 같은 조는 아니었고? 그때 한 달 일하면 월급이 얼마 정도 됐었죠?

    ◆ 박창수> 야간은 160만 원이었는데 그런데 이것도 좀 차별적인 부분이 있었던 거죠. 어른들은 160만 원. 그러니까 저같이 어른들은 160만 원. 그런데 군대를 가기 전인 그 아이들 같은 경우는 140만 원 정도예요.

    ◇ 정관용> 140.

    ◆ 박창수> 그런데 그게 세금 떼기 전이니까 세금을 떼고 나면 120만 원 정도 수준이었던 거죠.

    ◇ 정관용> 더 줄어드는군요. 그리고 우리가 다 알다시피 2인 1조가 원칙인데 그렇게 안 됐죠?

    ◆ 박창수> 네.

    ◇ 정관용> 박창수 씨도 그때는 2인 1조가 아니라 혼자 막 다니고 그랬어요?

    ◆ 박창수> 저는 그때 야간 점검만 나가서.

    ◇ 정관용> 야간근무 그것만 했어요?

    ◆ 박창수> 야간만 해서. 저 같은 경우는 두 가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좀 많이 피곤해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피곤하면 내가 승객의 안전을 지켜주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더 사고를 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저도 다른 데로 옮기라고, 은성에서 저를 관리하는 사람이 다른 데 가서 옮기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그걸 거절했어요.

    그런데 나이 어린 그 친구 같은 경우는 너한테 불이익이 가도록 해 주마, 그리고 연장계약 안 해 준다, 이런 말로 해서 어린아이들 친구 같은 경우는 계속 옮겨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런 상황이었죠.

    ◇ 정관용> 그러니까 회사 측에서 부당한 지시를 해도 너는 이제 연장계약 안 한다라는 위협 때문에 고분고분 들을 수밖에 없었고 그리고 혼자 출동하라고 그러면 그냥 혼자 갈 수밖에 없고 그런 거죠? 그리고 또 사고 접수, 신고 접수가 들어오면 1시간 내에 출동 안 하면 벌칙 받고 그런 거 있잖아요.

    ◆ 박창수> 네, 페널티가 일단 주어져 있었고요.

    ◇ 정관용> 페널티는 어떻게 주어지는 겁니까?

    ◆ 박창수> 그 어린 친구 같은 경우는 퇴근시간이 더 늦어진다든지 퇴근을 잘 안 시켜줬고 아니면 급여 부분에서 건드리고 그랬었어요. 많이 그랬었어요.

    ◇ 정관용> 그렇게 어린 친구들의 채용 숫자가 많았습니까?

    ◆ 박창수> 많았죠. 원래는 그 어린 친구들이 안 됐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여러 명 그 어린 친구들이 같이 면접을 보더라고요. 그래서 아, 여기가 어린 아이들이 일을 해도 되는 곳인가 하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생각하고 보니까 하면 안 되는 거였죠. 하면 안 되는 거였고 너무 위험한 일을 시켜버린 거였죠.

    ◇ 정관용> 그 당시 19살, 김 군이. 그렇죠?

    ◆ 박창수> 네.

    ◇ 정관용> 박창수 씨는 군대를 갔다 와서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겁니까?

    ◆ 박창수> 네.

    ◇ 정관용> 그러니까 그렇게 너무 어린 아이들한테 2인 1조 원칙도 안 지키고 협박도 해 가면서 위험한 일을 시키다가 그런 사고가 났다, 한마디로.

    ◆ 박창수> 네.

    ◇ 정관용> 월급도 실제 손에 쥐는 건 120만 원밖에 안 되고.

    ◆ 박창수> 네.

    ◇ 정관용> 사고 나고 나서 정말 믿어지지 않아서 김 군한테 전화도 계속하고 그랬다면서요.

    ◆ 박창수> 여러 번 전화를 계속했었는데 전화를 아예 받지 않는 것을 확인을 하고 나서도 안 믿었던 것 같아요. 믿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 정관용> 그랬겠죠.

    ◆ 박창수> 그래가지고 그 다음 날에도 계속 전화를 해 봤는데도 안 받으니까 더욱더 저기해서, 그런데 결국에는 나중에 딱 받아들였을 때는 뉴스에 나오고 나서 이제 공구 가방에서 자주 먹던 컵라면이나 이런 게 나오는 그 순간부터 정말이구나. 그제서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좀 그때가 많이 힘들었어요.

    ◇ 정관용> 컵라면을 자주 먹었어요, 김 군이?

    ◆ 박창수> 그때는 컵라면을 먹었던 이유가, 일단 지금은 식당이 있어요. 저희가 이제 카드를 찍고 먹을 수 있는 그런 식당이 있는데, 그때는 저희가 돈을 직접 내고 사 먹어야 됐으니까. 그래서 제일 싼 게 컵라면이었고 그리고 제일 빨리 먹을 수 있는 것도 컵라면이었고. 그러다 보니까 컵라면이나 빵이나 주로 이런 걸 많이 먹었어요.

    ◇ 정관용> 공구가방에 항상 컵라면이나 빵 같은 걸 넣어가지고 다녔다?

    ◆ 박창수> 네.

    ◇ 정관용> 그건 또 식사할 시간도 제대로 없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돈도 돈이지만.

    박창수 씨(사진=시사자키)

     

    ◆ 박창수> 그때는 그랬죠. 그래서 그때는 이랬던 것 같아요. 밥을 먹다가도 야간 같은 경우에도 나이 어린 그 친구들은 밥을 먹는 그 도중이라도 금방 다시 전화를 해가지고 장애가 났다고 하면 바로 전화를 해서 내려오라고, 당장 내려오라고.

    ◇ 정관용> 고장 신고 딱 들어오면 당장 내려와라?

    ◆ 박창수> 네, 그래서 예를 들어서 그러니까 순댓국이나 이런 것도 시켜서 먹잖아요. 음식이 나왔어요. 음식이 나와서 한 숟가락 뜨려고 하는데 전화가 와서 먹지도 못하고 내려가는 경우가 되게 많았었죠.

    ◇ 정관용> 조금 그나마 나이가 있고 그러면 식사 좀 하고 갈게, 한마디라도 할 텐데 어린 친구들은 그렇게도 못하고?

    ◆ 박창수> 못하죠. 절대 못하죠. 그러니까 저 같은 경우는 저한테 그런 걸 시킨다 하면 밥 먹고 내려갈게요 하고 전화를 끊거나 저는 이렇게 했었는데. 그 어린 친구들은 일단 학교에서도 그렇고 일단 다 말을 잘 듣는 아이들이었고 되게 착한 애들이었으니까 어른들이 하는 말에 잘 따랐던 것 같아요.

    ◇ 정관용> 안타까운 사고 이후에 일단 서울메트로 측에서 그 당시는 은성PSD라고 하는 하청업체에 고용된 형식으로 하청을 줬던 건데 다 직접 고용을 하는 식으로 바뀌었죠?

    ◆ 박창수> 네, 사고가 나서 그렇게 바뀐 거죠. 사고가 나서 6월 중순쯤에 서서히 그렇게 얘기가 나오다가 그렇게 된 거죠.

    ◇ 정관용> 그러니까 지금 박창수 씨는 서울메트로 소속인 거죠?

    ◆ 박창수> 네.

    ◇ 정관용> 정규직입니까? 비정규직입니까? 그건 어떻게 되는 거예요?

    ◆ 박창수> 그러니까 정규직은 아니고요. 저희가 무기계약직으로 되어 있어요.

    ◇ 정관용> 무기계약직.

    ◆ 박창수> 그러니까 무기계약직은 정년은 보장되어 있는데 임금이나 이런 건 계약직. 그런 수준의 월급인 거죠.

    ◇ 정관용> 그러니까 서울메트로에 기존에 있는 다른 정규직과는 좀 다른 임금체계로?

    ◆ 박창수> 다른 임금체계예요. 그러니까 계약직 임금체계랑 무기계약직 임금체계, 그리고 정규직 임금체계 다 다른 거죠.

    ◇ 정관용> 지금 거기 정규직이 있고 비정규직이 여전히 있고 지금 박창수 씨 같은 경우를 안전업무직 이렇게 부른다면서요?

    ◆ 박창수> 네.

    ◇ 정관용> 며칠 전에도 박원순 시장이 지금 정규직, 안전업무직, 비정규직 이렇게 따로따로 나뉘어져 있는 게 문제가 있다. 이것도 개선해야 된다. 이런 언급을 한 것으로 지금 나오는데. 어쨌든 안전업무직으로 분류되고 고용은 보장되지만 월급이라든지 이런 면에서 다른 정규직과는 차별이 있다 그 말이군요?

    ◆ 박창수> 네, 확실하게 차별이 있다고 보고 있어요.

    ◇ 정관용> 특히 스크린도어를 점검하고 수리하고 하는 인원들 중에 정규직도 있어요? 안전업무직이 아닌 기존 정규직?

    ◆ 박창수> 없습니다.

    ◇ 정관용> 그건 전혀 없고? 그다음에 지금 2인 1조 원칙은 철저히 지켜집니까?

    ◆ 박창수> 지금 2인 1조는 무조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어서 일단 더욱더 안전하게 일단 안심은 하고 일을 할 수가 있어요. 어떤 작업을 하든지. 한 사람이 열차가 들어오는지 안 들어오는지 봐주고 하니까 거기서 2인 1조가 지켜진다고 볼 수가 있죠.

    ◇ 정관용> 그리고 신고 들어오면 꼭 1시간 이내에 도착, 이건 없어졌어요, 여전해요?

    ◆ 박창수> 그런 건 아예 없어졌어요. 그런 것 같은 경우는 이제 아예 존재하지도 않고 없어졌는데 그러니까 작년에 문제가 되었던 것. 김 군이 컵라면을 먹어가면서 급히 일을 할 수밖에 없던 이유가 일단 1시간 페널티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이제 직영화로 패널티는 없어졌지만 전자규정이 있어요. 그런데 이건 PSD 그 자체 규정이 없어요. 그래서 정규직의 전자규정.

    ◇ 정관용> 전자규정, 이건 무슨 뜻이죠?

    ◆ 박창수> 그러니까 장애 발생시 지체 없이 조치해야 된다. 그러니까 이 규정을 적용을 받고 있는데 그런다고 해서 저희한테 무슨 징계라든지 이런 부분은 없는데 그래도 많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빠르게 나가서 신속한 조치를 요구하고 있으면 그 때문에 식사시간과 퇴근시간을 지키지 못할 때가 아직까지도 . . .

    ◇ 정관용> 아직도.

    ◆ 박창수> 아직도 있어요.

    ◇ 정관용> 어떤 의미에서는 시민들의 불편을 빨리 해결해야 된다라는 측면에서는 불가피할 수 있지만 식사시간, 퇴근시간도 어길 정도가 된다면 인원을 더 뽑아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 인원이 부족한 거죠?

    ◆ 박창수> 지금 인원이 군대 가는 인원도 있고 해서 일단 지금 많이 부족해요.

    ◇ 정관용> 어쨌든 김 군의 안타까운 사고 이후에 많이 좀 변화가 있었고 그때보다는 분명히 좋아지기는 한 거죠? 여전히 남은 과제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뭐가 더 이루어져야 됩니까?

    ◆ 박창수> 이 차별이 그냥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 정관용> 특히 이런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일일수록 정말 정규직으로 해 달라. 그 말씀이시군요.

    ◆ 박창수> 네.

    ◇ 정관용> 내일모레 우리 김 군을 기리는 행사가 예정돼 있다고요?

    ◆ 박창수> 네.

    ◇ 정관용> 어디서 어떤 행사를 할 예정입니까?

    ◆ 박창수> 일단 구의역에서 공공운수노조에서 27일에 잡아놨는데 일단 거기에서 행사를 14시쯤에 저희가 진행할 예정이에요. 거기서 저희 동료들이 편지를 쓴 내용도 있고 해서 그 편지내용을 제가 대표로 읽는 그 과정이 있어요.

    ◇ 정관용> 구의역에서 행사가 이루어진다. 추모의 글을 동료들과 함께 쓰셨다고?

    ◆ 박창수> 네.

    ◇ 정관용> 그날 낭독을 하게 되겠지만 혹시 오늘 가능하면 우리 청취자분들한테 미리 좀 들려주실 수 있나요?

    ◆ 박창수> 네.

    ◇ 정관용> 한번 읽어봐 주시죠.

    ◆ 박창수>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로 희생된 김 군에게 보내는 추모의 편지.
    잊을 수 없는 그날 우리 곁을 떠난 동료 김 군에게.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너는 너무나도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갔지.
    먹어보지도 못한 컵라면에 빨리 먹으려고 공구가방에 아무렇게나 넣고 다니던 스텐 숟가락이 온국민을 슬퍼하고 분노하게 만들었지.
    차라리 컵라면이라도 배불리 먹고 가지..라며 울부짖던 너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구나.

    네가 무엇을 얼마나 크게 잘못했기에 사고를 당해야 했는지 억울하고 원통하기만 하구나.
    그렇게 네가 우리 곁을 허망하게 떠나간 지 1년이 되었구나.
    그곳 천국에서는 빨리빨리 수리하고 이동하라 재촉하고 다음 달에 계약만료니까 나가라고 하지는 않겠지?
    부디 그곳에서는 위험에 내몰리지 말고 배곯지 말고 부당한 대우 받지 않는 영원한 행복의 세계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기도할게.

    너의 숭고한 희생으로 온 국민들이 우리 PSD 노동자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중인데 처음에 약속과 기대가 실망과 좌절로 바뀌어가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포기하기는 더 어렵구나.
    모든 국민들이 너를 기억하고 있는 만큼 서울메트로 206명의 PSD 노동자들은 너의 희생을 잊지 않고 너의 못다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할게.
    하늘나라에서는 따뜻한 햇살이 가득한 봄날이 되기를 바랄게.

    ◇ 정관용> 김 모 군의 그 희생을 절대 잊지 않고 김 모 군의 못다한 꿈 이룰 수 있도록 우리 PSD 노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죠. 오늘 박창수 씨 나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박창수> 고맙습니다.

    ◇ 정관용>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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