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 현판식 모습. 자료사진
박근혜 전 대통령도 방산비리 수사에 대한 의지만은 높았다. 박 전 대통령도 문재인 대통령처럼 "방산비리는 안보의 누수를 가져오는 이적행위"라고 지적했다.
박 전 대통령이 방산비리를 척결하겠다고 외치자 눈치빠른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은 검찰내에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을 전격 설치했다. 합수단을 만든 뒤 단장엔 그의 충성맨'으로 알려진 김기동 현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을 지명했다.
그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찍은 '우병우 사단' 12인 가운데 한 명이다. 김 단장은 공교롭게 조국 민정수석의 부산 혜광고 후배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검찰에 '방산비리합수단'을 설치한때는 2014년 11월이었다. 세계일보가 '정윤회 문건' 첫 보도를 터트리기 10여일 전쯤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그해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 치던 시기였다.
세월호 참사 후 "이것도 나라냐"는 비난과 탄식이 쏟아졌고 박근혜 정부는 침몰해 가는 난파선과 같았다. 그러나 박 정부는 '좌파척결'을 내세우며 공안 통치를 강화했고 그 '몰핀'에 의지해 겨우겨우 국정 장악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블랙리스트'가 판을 치던 정점의 시기였다.
공안통치로 겨우 산소호흡기를 뗀 박근혜 정부는 국정 드라이브를 더 가속시켰다. 방산비리합수단을 내세운 사정통치라는 엔진을 추가 부착한 것이다.
김기동의 방산비리합수단은 그해 12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채 8개월도 안되는 사이 현역 장성 등 장성급 11명과 영관급 31명 등 무려 63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합수단이 직접 수사해 적발한 비리는 없었다. 대개가 청와대 하명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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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합수단은 중간 수사결과 발표에서 "해군 통영함, 소해함 사업, 해상작전 헬기(와일드캣) 도입 등 12건의 방위사업에 대한 수사 결과 9,800억원의 사업비리가 적발됐다. 63명을 기소했고 47명은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황기철, 정옥근 전 해군참모총장과 최윤희 전 합참의장 등 역대 해군 핵심들이 모두 걸려 들었다.
그러나 찬란했던 수사 결과는 법원에서 '잿빛'이 되고 말았다. 황기철 전 총장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았고, 최윤희 전 합참의장도 항소심에서 무죄, 통영함 비리에 연루된 정옥근 전 총장 역시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정옥근 전 총장은 STX 비리와 관련 징역 4년을 대법원에서 선고 받음)
검찰 고위관계자는 "역대 합수단에서 이렇게 많이 무죄 선고를 받은 사례는 없는 걸로 기억한다"며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고 무리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선례들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도 검찰에선 단 한번의 반성은 없고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만 넘어가고 있다"며 "합수단 수사에서 전직 최고위 장성들에 대한 무죄 선고가 쏟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합수단장이 검사장으로 승진하고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으로 또 영전하는지 누가 납득할 수 있겠냐"고 개탄했다.
◈정치적 방산비리 수사…합수단이 아니라 '덮수단'이었나
수리온 헬기. 자료사진
그렇다면 역대 최대 규모의 방산비리합수단 수사에도 불구하고 무죄가 유죄를 압도하며 방산비리가 계속되는 이유는 뭘까?
방산비리 수사 결과를 보고 무죄 선고에 놀랄 즈음 '이적 행위'라 외쳤던 수리온 헬기 비리가 또 터지는 걸 보면서 국민들의 허탈감은 그 바닥이 어디인지 알 길이 없다.
통영함 비리사건으로 무죄를 받은 황기철 전 참모총장은 "검찰이 실적을 의식해 무리한 수사를 한거냐"는 물음에 "성과를 내려 그런 건지, 위에서 어떤 지시를 받고 그런 건지 잘 모르겠다. 검찰 수사 전 단계인 감사원의 감사부터 잘못됐다. 감사 과정에서 이미 ‘오로지 총장이 목표’라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말했다.(주간동아 2017년 5월 10일)
우병우 수석 시절 방산비리 수사의 문제는 정치적 의도를 가진 '하명수사'가 첫째 원인으로 지목된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합수단 수사는 박근혜 정부가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정통치가 필요했고 그런 목적에 부응하기 위해선 최대한 실적을 올리는 급조된 수사가 필요했다'고 진단했다.
당시 방산비리합수단이 수사했던 사건은 모두 군검찰이나 감사원 등에서 1차로 스크린하거나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사안들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이 지휘하는 청와대는 방산비리합수단에 이런 사건들을 내려보냈고 급조된 합수부는 성과를 극대화 할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방산비리 척결이라는 근본적 시각에서 출발한 수사가 아니라 정권 보위용 수사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물 새는 헬기 '수리온'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도 청와대에 보고가 됐던 사안으로 확인되고 있다. 황찬현 감사원장은 "수리온 헬기에 대한 1차,2차 감사 결과를 지난해 8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국회 법사위에서 보고 했다.
특히 감사원은 2015년 10월 국산 헬기 '수리온'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KAI(한국항공우주산업)가 원가 계산서를 허위로 작성해 547억원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 이 일로 담당 직원 2명을 수사 의뢰했다. 또 KAI가 2013~2014년 직원 명절 선물용으로 사들인 40억원대 상품권 중 11억원의 사용처가 불분명한 것으로 감사 결과 드러났다.
하지만 검찰은 당시 이같은 사실을 통보 받고도 KAI 경영진에 대해선 수사를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박 전 대통령의 KAI경영진에 대한 신뢰가 높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당시 검찰이 방산비리를 제대로 수사했다면 수리온 헬기 비리는 문재인 정부
에서 터질 일이 아니었다. 검찰 수사가 대통령앞에서 멈춰 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KAI를 "신성장동력이라고도 했고 창조경제의 핵심 성공사례"라고 극찬햇다.
이때문에 검찰과 정치권 안팎에서 '우병우 수석이 감사원 보고 사실을 알고도 검찰에 수사를 하지 말도록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이 과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자금비리를 포착하고도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영향으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검찰의 다른 관계자는 "비리가 제기되면 성역없이 수사를 해야 하는데 우병우에 포위된 검찰이 정권 입맛에 맞는 수사에만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니겠냐"며 "합수부가 덮수부가 된 격"이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방산비리합수단까지 설치했던 검찰이 수리온 헬기 등 KAI사업 비리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면 우병우 민정수석 시절의 방산비리 수사가 지금의 적폐청산으로 돌변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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