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우리나라는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에 대해 특별한 규제 정책 방침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어떠한 형태로든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에 대해 규제 방향을 밝히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한국증권법학회가 2014년 12월 발간한 증권법연구 15호에 실린 김홍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논문 중 일부다. 학계는 이미 2014년부터 가상화폐 규제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방향 설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상화폐 거래소 코빗이 2013년 4월 설립됐고, 중국이 2013년 강력 규제안을 마련했으며 일본이 2014년 관련 법률을 개정한 것과 비교했을 때, 아무런 논의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 中 초강경 규제, 日 제도권으로 편입우리나라가 가상화폐 대책을 준비만 하고 있는 사이 해외 각국은 나름의 규제 방향을 정했다.
우선 중국은 가상화폐에 대해 초강경 규제를 실시했다. 중국 인민은행은 2013년 12월 비트코인이 법정통화가 아닌 특정 가상상품이라며 금융기관의 비트코인 관련 거래를 금지했다.
이어 중국의 온라인 포털 바이두가 결제 방식에서 비트코인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급락했다. 2014년 4월에는 중국 건설 은행이 공공재산과 사익 보호, 자금 세탁 방지를 위해 비트코인 관련 계좌의 사용을 금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에는 ICO(코인공개)를 전면 금지하고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까지 명령한데 이어 비트코인 채굴 사업 퇴출까지 지시했다. 채굴하는 데 엄청난 전력이 소요되는데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가상화폐 채굴 기업의 전력 공급 마저 제한한 것이다.
일본은 전세계 국가 가운데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였다.
2014년 일본 최대의 비트코인 거래소 마운트곡스가 파산하자,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규제 방침을 발표하고 과세를 비롯한 전반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비트코인의 성격과 금융기관 규제, 세금 부과 규정 등 포괄적인 내용을 담았다. 비트코인을 귀금속 등과 같은 '일방 상품(commodity)'로 취급했다.
지난해 6월에는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개정해 전자 결제, 송금 등 일반 화폐로서의 기능도 부여했다. 이를 통해 가상화폐의 음성적 사용을 차단하고 시장 활성화 기반을 마련한다는 의도다.
가상화폐에 부과했던 소비세 8%도 폐지했고 취급업소 등록제도 실시했다. 같은해 9월에는 전 세계 최초로 11개 가상화폐 거래소를 사업 승인(인가)했다.
그러나 일본에도 가상화폐 투기 광풍이 불자 규제안을 내놓았다. 올해 초 일본 국세청은 가상화폐 거래에서 막대한 차익을 올린 사람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현재 일본 정부는 가상화폐 매매나 교환으로 20만엔(약 200만원) 이상 차익을 얻으면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데 자진 신고 외에 실효가 적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에 일본 국세청이 주요 거래에 대한 정보를 거래소에 요청했다.
◇ 韓 학계 지적 4년 흘러도 "준비 중", 엄포성 단기 대책만 내놓아반면 한국은 학계가 지적한 지 4년이 지난 2018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단 하나 제출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고, 금융당국은 유사수신행위 등 규제법(유사수신법)을 정부 입법안으로 준비 중일 뿐이다.
지난 2016년 11월 금융위원회와 기재부, 한국은행, 금감원, 학계, 법률 전문가 등이 가상통화TF를 구성해 총 4번의 회의를 거쳤지만 결론은 없었다.
지난해 7월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이 해킹으로 인해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터지자, 2개월 뒤 금융위 주도로 가상통화 관계기관 TF를 개최해 ICO 처벌 방침을 밝힌 게 그나마 진전된 결과다.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상화폐 투기 열풍은 거세졌고 사회 문제로까지 불거졌다. 그때가 돼서야 "대책을 검토 중"이라던 정부는 특별 규제안을 내놓았다..
이 마저도 금융당국이 은행을 통해 가상화폐 거래소를 우회적으로 조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규제 방침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 것은 각 부처간 '책임 미루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크다.
가상화폐를 상품으로 볼 것인지 금융으로 볼 것인지 또는 도박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정의 자체가 부재했다. 서로 책임을 미루다 보니 담당 부처가 정해지지 않았고 이러한 사항은 지금의 정부 혼선으로 반영되고 있다.
중국이 '강력 규제', 일본이 '제도권 편입'이라는 방향을 설정하고 가상화폐 관련 중·장기적 대책을 이행하는 사이, 한국만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뒤늦게 투기 광풍을 잡겠다고 단발성 대책만 내놓아 오히려 시장의 혼란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각 부처별로 가상화폐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이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문에 범정부 TF를 만든 것 아니냐"면서 "몇날 몇일 '준비 중이다, 검토 중이다'라 엄포성 단기 대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정부의 통일된 가이드라인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 공동대표는 "정부가 망설여서 실기한 것으로,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 케이스"라면서 "미국도 경고는 경고대로 하고 규제는 규제대로 하는데, 우리나라는 경고와 규제을 분리해서 사고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