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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가 예수인 까닭은? … 황재형 작가의 '광부예수'

책/학술

    광부가 예수인 까닭은? … 황재형 작가의 '광부예수'

    신간 '작품의 고향; 한국미술 작가가 사랑한 장소와 시대', 임종업 지음

    황재형, 광부예수, 1985

     

    임종업 기자가 쓴 <작품의 고향=""> 중 '스스로 광부가 된 화가-태백과 황재형'편에서 제자들이 기록한 작품평이 소개된다. 황 작가의 작품 '광부예수'(1985)에 대해 그의 제자 김은하가 쓴 글을 보자.

    "이 그림은 광부 옷, 게다가 속까지 비어 있어서 이상했습니다.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의아했어요. 나의 아버지도 광부인데 그러면 아버지도 예수가 될 수 있는가. 너희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뺏긴 채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지 않느냐는 말씀이셨습니다. (중략)
    우리는 아버지가 노동자인 것을 부끄러워하며 내다 팔았는데, 이를테면 노동자 차람의 아버지를 길거리에서 만나면 모른 체하고, 슬리퍼에 몸뻬 차림으로 학교르 찾아온 엄마를 창피해하며 보고 싶어 하지 않았는데, 자식들이 내다 버린 아버지를 선생님은 예수의 자리에 그려넣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사는 게 바로 예수라고 그림을 통해 말없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황재형, in myheaven, 1997

     

    황재형의 작품 'in myheaven' (1997)에 대해 제자 하은영이 쓴 글을 보자.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 그냥 사택촌에 지나지 않았어요. 제가 탄광촌 출신이 아니어서인지 내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느껴져 공감하기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몇 년 뒤 그림이 불쑥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끊임없이 욕망이 부추겨지면서 진득하게 엮어나가는 게 아니라 단숨에 확인하고 단숨에 품어버리고 싶은 저였기에, 충동적이고 소비적인 사람을 만나 사랑을 하고 그것은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홀로 되었을 때 바라본 그림은 삶 그 자체였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덕지덕지 진흙길. 한 걸음 뗀 것이 짐이 되고 속박이 되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이 연결되어 하늘 밑까지 이어집니다. 제발 볕이 들기를 바라지만 어디에도 없습니다. 집들은 모양은 다르지만 연결돼 있는 것이 삶의 질곡을 이고 있는 듯합니다. 윗집 아랫집 모두 연결되어 하늘빛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그림이 만약 시멘트길이고 양철지붕이었다면 어떤 희망도 위로도 못 받았을 것입니다. 그림은 어떤 허영도 어떤 환상도 없이 그 자체인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질곡 속에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한겨레신문 미술담당 기자 출신인 저자 임종업은 <작품의 고향="">에서 우리 땅과 시대를 뜨겁게 작품에 담아온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12개 지역 15 작가를 아우른다. 책의 구성은 한 작가에 대한 총평을 하고 그 작가에 대한 인터뷰를 싣고 있다. 이로써 작가의 삶과 작품의 시대적 배경, 장소적 특성과 작품세계를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작가의 생각과 철학, 작품론은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위에서 인용한 황재형 작가의 제자들이 쓴 작품평은 큰 울림을 준다.

    전혁림, 강요배, 이종구, 겸재 정선은 고향의 산천과 사람을 작품에 담고, 황재형은 태백을 찾아가 광부가 되고 그곳에서 수십년째 살며 작업하고 있다. 송창은 임진강에서 현대사를 그리고, 박대성, 서용선, 김기찬처럼 무의식의 끌림과 같은 안식처로서 ‘장소’를 선택해 작품에 담는 작가도 있다.

    박대성, 현률, 2006

     

    이 책은 이렇게 우리 땅과 시대를 뜨겁게 작품에 담아온 작가와 작품을 소개한다. 작품은 그들의 치열한 삶만큼 감동적이고, 저자의 글에는 이들 작가와 작품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작가들은 겸재 정선, 한국 남종화를 지켜온 허련.허형.허건, 박대성, 오윤, 강요배, 서용선, 황재형, 김기찬, 송창, 이종구, 전혁림, 김경인.이길래 등 모두 당대를 대표한다. 그러기에 이들의 작품의 고향을 찾아가는 길은 '장소‘와 ’시대‘를 중심으로 한국미술의 큰 흐름을 되돌아보는 일이기도 한다. 아울러 그동안 제대로 정리되지 못했던 민중미술의 맥을 짚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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