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뒤면 잠재성장률 0%대…'일할 사람' 없는 나라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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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사이 반토막 난 잠재성장률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경제가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를 총동원해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이룰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의미한다. 경제사전에 나오는 설명이다.
 
이런 잠재성장률이 하락한다는 것은 경제의 기초체력약화됐다는 것으로, 곧 실질 경제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을 두고 '적신호'가 나라 안팎에서 잇따라 들어오고 있다.
 
한국은행이 추정한 잠재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 5% 안팎이었지만 2016년부터는 2%대 중후반으로 떨어졌다. 15년 사이에 반토막이 난 셈이다.
    

한국은행 추정 잠재성장률은 2.5~2.6%

2019년 한은이 내놓은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추정을 보면 2016년에서 2020년 사이 잠재성장률은 2.7~2.8%로 기존 추정치보다 0.1%포인트 정도씩 하락했다. 기간을 더 좁혀 2019~2020년의 잠재성장률은 2.5~2.6%인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해는 한국은행이 내놓지 않았고, 올해도 아직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수치는 더 떨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4월 1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직후 가진 간담회에서 "일반론으로 말하면 경제위기를 겪게 되면 노동 투입과 자본축적이 크게 위축되고 생산성도 저하되면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는 종식되지 않고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잠재성장률 추정에 불확실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1년여간 고용 사정이 악화했고, 서비스업의 생산 능력이 저하된 여건을 감안하면 잠재성장률이 코로나19 이전보다 훨씬 낮아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그러면서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잠재성장률을 다시 추정해 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점점 가팔라지는 잠재성장률 하락세

대략의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는 분석도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981년부터 2019년까지 연간 자료를 바탕으로 10년 단위로 생산가능인구당 잠재성장률을 계산해봤다.
그 결과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 7.6%에서 1990년대 5.3%로 떨어지더니 2000년대 3.8%, 2010년대 2.1%로 계속해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가능인구당 잠재성장률은 15세 이상 인구당 잠재 국내총생산(GDP)의 전년 대비 증가율을 의미하는데, 한국경제연구원은 잠재성장률의 하락세점점 가팔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이 추계하는 전체 잠재성장률이 최근 15년 사이에 반토막이 난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해외기관, 2050년 한국 잠재성장률 1.5% 아래로 전망

이런 적신호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들어오고 있다.
 
영국계 글로벌 경제전망 기관인 '캐피털이코노믹스'는 18일 내놓은 '한국: 앞으로 30년'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현재 2.5% 정도인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이 앞으로 9년 뒤 2.0%로 낮아지고 2050년에는 1.5% 아래로 추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분석가는 "한국 경제가 팬데믹 하에서도 상대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고, 그런 만큼 큰 충격 없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다만 한국 경제의 중장기 전망은 그리 밝진 않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의 중장기적 미래에 대해 불투명하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이 분석가는 특히 "한국 경제의 노동생산성 증가세는 가속화하고 있지만, 만 15세 이상 일할 능력이 있는 노동가능인구 수가 감소하는 영향을 상쇄할 정도로 충분하진 않다"고 말했다.
 
15세 이상 노동가능인구 감소는 바로 저출산 현상이 우리 사회에 쏟아내는 독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이번 보고서는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가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더블A마이너스(AA-)'로 유지하면서도 내년 잠재성장률 전망을 기존 2.5%에서 2.3%로 0.2%포인트 하향 조정한 지 한 달도 안 돼 나온 것이어서 충격을 준다.

저출산과 빠른 고령화가 원인

피치는 빠른 고령화를 잠재성장률 하향의 주된 이유로 꼽았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CBS노컷뉴스에 "피치 내부의 다른 부서 보고서에서 나온 부분을 평가부서가 재인용한 것으로 안다"면서 "원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유일한 이유라고 한다"고 밝혔다.
 
피치의 이번 잠재성장률 하향 조정이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이런 하향 조정의 이유는 생산가능인구 감소, 즉 '저출산·고령화'가 유일한 이유라는 설명이다. 노동력 감소, 즉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인구는 2021년 5100만여 명에서 2067년 3900만여 명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같은 기간 평균연령은 43.3세에서 57세로 급속도로 증가한다. 출생아 수가 줄고 고령화가 심화되면 생산연령인구(15~64세)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9년 뒤 0%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더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다.
 
긍정적 노동증가율 시나리오 잠재성장률 추이 (자료: 한국금융연구원 )긍정적 노동증가율 시나리오 잠재성장률 추이 (자료: 한국금융연구원 )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달 27일 내놓은 '향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경로 추정'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오는 2030년 잠재성장률이 낮으면 0.86%에서 높아도 0.92%로 1%선 아래로, 즉 0%대까지 추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먼저 향후 10년간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OECD 국가 상위권 수준으로 상승한 뒤 이 수준이 유지된다는 가정하에 추산한 긍정적 시나라오에 따르면 잠재성장률은 2030년 0.92%로 1% 아래로 떨어지고, 2045년에는 0.55%까지 추락할 것으로 한국금융연구원은 내다봤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상승에 따라 노동증가율 경로가 상승곡선을 그리지만 2029년 이후부터는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가 늘더라도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연구원 설명이다.
 
더욱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 수준이 현재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는 가운데 청소년과 노인인구 비율이 변동하는 경우를 가정한 부정적 시나리오로 계산하면 2030년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은 0.86%까지 떨어지고 2040년 0.67%, 2045년 0.49%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부정적 노동증가율 시나리오 잠재성장률 추이 (자료: 한국금융연구원 )부정적 노동증가율 시나리오 잠재성장률 추이 (자료: 한국금융연구원 )
한국은행이나 한국경제연구원, 한국금융연구원 등 연구기관에 따라 계산 방법이 조금씩 달라 수치의 차이는 있지만, 향후 10년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심각하게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없다.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 완화해야

또 이런 잠재성장률 하락의 주된 요인이 저출산·고령화라는 점에 대해서도 역시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성욱 박사는 CBS노컷뉴스에 "장기적으로는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서 "여성의 육아 부담 경감과 주거비·교육비 부담 완화 정책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단기적으로는 여성과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생산가능 연령대 남성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면서 "이를 높이면 노동력 감소추세를 상당부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향후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빠른 생산연령인구 감소와 주력산업 성숙화, 불확실성 확대 등으로 잠재성장률은 더욱 하락할 것"이라며 "여성과 청년층의 경제활동 참가를 유도하고 저출산에 적극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노동공급 둔화 속도를 완화하는데 정책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소영 교수는 CBS노컷뉴스에 "생산성 높은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여성이나 고령인구의 활용을 늘려야 한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저출산으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를 완화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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