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최남선(65)·백공주(35)씨가 서울 양천구 신정3동 주민센터에 기부한 성금과 손편지. 양천구청 제공"도움받던 저희 모녀에게 이런 날도 오네요. 좋은 곳에 써 주세요."
지난 12일 서울 양천구 신정3동 주민센터에 한 60대·30대 모녀가 방문했다. 주인공은 신정3동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기초수급생활자 최남선(65)·백공주(35)씨. 최씨 모녀가 품에서 꺼낸 봉투에는 5만 원권 지폐 20장, 총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최씨는 딸 백씨와 함께 단둘이 살고 있다. 백씨는 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 등으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다. 최씨는 장애가 있는 딸을 받아들이지 못한 남편과 20년 전쯤 이혼한 뒤 홀로 딸을 돌보며 살아왔다. 한 장학재단에서 일하던 최씨는 직장도 그만두고 딸의 돌봄에 전념했다. 일정한 수입이라고는 다달이 들어오는 생계급여가 전부라고 한다.
이번 기부는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모녀에게 찾아온 크나큰 시련이 계기가 됐다. 딸 백씨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병원비와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절망 속에 있던 그들에게 다행히 한 병원이 암 수술 지원을 자처하고 나섰다.
시력이 매우 안 좋던 백씨를 위해 병원은 없던 안과까지 임시로 개설했다. 대학병원 안과의를 임시로 초빙해 암 수술과 함께 백씨의 백내장 수술도 병행하기 위해서다. 최씨는 "암이라는 큰 병이 찾아온 데다 (공주) 눈이 잘 안 보여서 마음이 많이 흔들렸다"라면서 "그런데 병원에서 저희 아이를 위해 안과까지 만들어 암과 눈 수술을 해주셨다. 너무 감사해서 가슴이 벅찼다"라고 말했다.
다행히 백씨 건강은 많이 호전된 상태다. 시력을 되찾으면서 조금씩 걷기 시작했고 글씨도 곧잘 읽게 됐다.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백씨가 유일하게 가입할 수 있는 보험이 암 보험이라 들었는데, 암 진단과 수술을 거치며 적잖은 보험금이 지급됐다.
사실 보험금을 받았더라도 최씨 모녀의 주머니 사정이 넉넉해진 것은 아니다. 20년 넘는 세월 홀로 중증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면서 주변에 많은 빚을 졌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딸을 돌보느라 60대 중반에 이른 최씨 건강 상태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그럼에도 최씨 모녀는 보험금을 자신들을 위해서만 쓰기보다 그동안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마음을 떠올렸다. 최씨는 "그동안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도저히 이 돈을 제가 다 쓸 수는 없었다"라면서 "우리보다 더 어려운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정3동주민센터 정광준 주무관은 "두 사람의 나눔을 오래 기억하기 위해 감사패와 기념 패널을 준비해 전달했다"라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큰 울림을 주고 있다. 기탁한 성금은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소중히 사용하겠다"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최남선(65)·백공주(35)씨가 서울 양천구 신정3동 주민센터에 성금을 기부한 뒤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양천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