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내에 산후조리원이 한 곳뿐인데, 주변에서 타지의 산후조리원도 많이 이용하더라고요. 포대기로 아기 잘 싸서 천천히 운전해 가봐야죠."
경북 안동에 사는 권모씨는 오는 10월 출산을 앞두고 고민이 깊었습니다. 바로, '산후조리원' 때문인데요. 몸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마땅치 않아 집에서 쉬는 건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대신 병원에서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칠곡의 한 산후조리원을 예약했죠.
권씨는 "인근에 산후조리원이 아예 없는 지역에서도 많이들 입소하는 곳이라 예약 경쟁도 치열했다"고 안도하며, 출산이 임박하면 '원정 산후조리'에 필요한 바구니형 카시트를 알아볼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연합뉴스 산후조리원은 출산 후 여성이 임신 전 건강상태로 회복하는 및 요양에 필요한 인력과 시설을 갖춘 곳입니다. 이곳에선 분만 직후의 와 신생아에게 급식 등 편의서비스를 제공하는데요.
임산부가 가장 선호하는 산후조리 장소는 단연 '산후조리원'입니다. 보건복지부가 임산부 31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 산후조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산후조리원(78.1%), 본인 집(16.9%), 친정(4.6%), 시가(0.1%) 순으로 선호도가 나타났는데요.
실제 임산부 10명 중 8명은 산후조리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후조리원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임산부들이 있는데요. 거주 지역에 산후조리원이 없는 경우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6월 기준 전국 기초지자체 226곳 중 약 43%인 98곳에는 산후조리원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머무르거나, 다른 지역의 산후조리원으로 가야 하죠.
반면 수도권 임산부들은 선택지가 많습니다. 산후조리원이 많은 덕에 비용, 접근성, 시설, 프로그램 등 여러 가지 기준을 갖고 비교해 고를 수 있죠.
산후조리원의 '지역 격차'는 심각한 상황인데요. 전국 산후조리원 477개소 가운데 서울 116개소, 경기도 147개소로 절반이 넘는 약 55%가 수도권에 집중돼있습니다.
이에 '공공산후조리원'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공공산후조리원 확대의 타당성에 관한 융합 연구' 논문에서는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민간산후조리원은 출산 건수가 낮은 지역에는 개설을 피하거나, 또는 개설했다가 경영상의 이유로 폐업하거나 이전해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지적했는데요. 그러나 공공산후조리원 미설치 지역의 임산부 역차별 문제, 민간산후조리원과의 갈등 우려, 지자체 운영상 적자 문제 등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연합뉴스·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러한 문제 제기에도 공공산후조리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민간산후조리원이 전무해 지자체가 나서야만 하는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죠.
지난 2021년 11월 1일 경기 여주 공공산후조리원 앞에는 전날 저녁부터 쳐진 텐트가 줄을 이뤘습니다. 여주의 유일한 산후조리원인 이곳에 입소하려는 이들이 예약 경쟁을 펼친 건데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전날 밤 10시쯤 갔는데 대기 7번이었다"라며 "다른 산후조리원은 대기 예약이라 가슴 졸였는데 여주공공산후조리원 확정 받아 두 다리 뻗고 자겠다"고 예약 성공담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입소 경쟁 과열로 불편이 이어지자, 시는 지난해 2월부터 '선착순 현장 예약' 방식이 아닌 '추첨제'로 개선했습니다. 평균 2대 1의 경쟁률로 인기는 여전합니다.
충남 홍성 공공산후조리원. 홍성의료원 제공 지난 2월 최혜영 의원은 인구 30만 미만인 지자체에 공공산후조리원 설치를 의무화하고, 국가가 재정적·행정적 지원을 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습니다.
최 의원은 "본 의원이 거주 중인 안성시의 경우, 산후조리원이 없어서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거나 원정 산후조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며 "인구규모가 작은 지자체에 경제적 부담이 적고, 질 좋은 서비스의 공공산후조리원 확대를 통해 출산에 대한 공적책임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 0.78, '저출생'에 대한 논의는 갑자기 넘쳐 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역 소멸' 역시 현재 진행형인 심각한 사회 문제인데요. 이런 상황에 더 큰 피해를 보는 건, 소멸 위기 지역의 임산부들입니다.
실제 전남 영광군에서는 유일하던 민간산후조리원이 이달부터 예약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인력난'을 이기지 못해 폐원을 결정한 건데요. 관내 임산부들이 많이 이용하는 광주권의 산후조리원과 비교해도 시설 수준이 떨어지지 않고 만족도가 높아, 연중 만실 수준으로 인기가 많은 곳이었습니다. 영광군이 합계출산율 3년 연속 전국 1위를 기록한 데, 대도시 수준의 산후조리원인 이곳의 역할도 컸다는 후문이 나올 정도죠.
어느 지역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산후조리원을 가고 싶어도 쉽사리 갈 수 없는 임산부들. 작은 허들조차도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이들에겐 큰 부담일 수 있을 텐데요. '초저출생'과 '지역 소멸' 위기가 맞물린 대한민국엔 예비 부모들이 당장 맞닥뜨린 장애물을 치우는 일이 급선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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