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0년째 '내 돈 받기' 투쟁…'사기 후진국' 오명 벗으려면

[사기, 뒤바뀐 정의⑤]
지난해 역대 최고치 기록한 사기 범죄
재범도 늘어나지만 회수금액은 오히려 하락세
"투자 사기도 피해 구제 방안 마련해야"

편집자 주

'청담동 주식부자'로 유명세를 떨쳤던 그는 지금도 서울에 있는 최고급 아파트에 산다. 10년 전 사기죄로 3년 6개월을 선고받아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이희진씨의 재력은 여전히 건재한 것처럼 보인다. 그 사이 그에게 주식 사기를 당했던 피해자들, 코인 사기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너진 삶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지연된 정의, 아니 어쩌면 뒤바뀐 정의를 매 순간 목도하는 사회. 지난해 사기 사건이 역대 최고치에 달한 이유가 아닐까.

▶ 글 싣는 순서
①[단독]'청담동 주식부자' 사기 재판 중 "골퍼됐다"…초호화 생활
②[단독]'검찰총장'에서 이희진 '방패'로…불안한 法심판대
③'사망보험금'도 못 갚아줄 빚…'이희진 피해자' 부서진 10년
④[단독]피해자 비웃는 '사기의 삶'…또다른 '이희진'들 도처에
⑤[단독]10년째 '내 돈 받기' 투쟁…'사기 후진국' 오명 벗으려면
(끝)
최근 5년간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해마다 늘어 지난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가운데 피해 금액 역시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정작 회수 금액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범죄들은 수법이 고도화되면서 범인을 특정하는 것조차 어려워, 수사부터 기소, 재판 등을 거쳐 선고에 이르기까지 수년이 걸리는 실정이다.
23일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사기 범죄는 42만1413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021년 29만 2116건에서 2022년 32만 3496건, 2023년 34만 7901건으로 해마다 증가세를 이어왔다.
사기가 횡행하면서 피해 금액도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21년 15조 791억 원이던 피해액은 2022년 29조 2487억 원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어 2023년 18조 5137억 원으로 다시 낮아졌다가 2024년 27조 7602억 원으로 다시 치솟았다. 올해는 11월 30일 기준 피해액만 28조 4865억 원으로, 이미 지난해를 넘어섰다.
이렇게 사기 범죄가 날로 기승을 부리는 형국이지만 사실상 검거 금액인 회수 금액도 지난해부터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2021년 6996억 원, 2022년 1조 120억 원, 2023년 1조 1892억 원으로 증가하는 듯했으나, 지난해 8823억 원으로 급감했다. 올해 회수액은 더욱 저조하다. 지난달 11월 30일 기준 회수액은 4010억 원에 그쳤다. 5년 만에 최저다. 이에 대해 경찰청은 "12월 통계가 아직 합산되지 않았고 보정이 완료되지 않아 해당 작업을 거치면 회수액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청은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현황이 2020년 813억 원에서 2025년 8243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사기 사건은 늘어나는데 회수 금액이 줄어든 사이, 최근 4년간 사기 혐의로 재차 검거된 피의자 수는 꾸준히 늘었다. 2021년 3만 553명에서 2022년 3만 3063명, 2023년 3만 4633명, 2024년에는 3만 6854명으로 증가했다. 전체 동종 범죄 재범 피의자 수는 17만 명대에서 큰 변동이 없었지만, 사기 범죄만큼은 뚜렷한 증가세를 보인 모양새다.

'청담동 주식부자' 피해자들, 10년째 투쟁 중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가 2016년 9월 7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씨가 2016년 9월 7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사기 피해자들은 빼앗긴 돈을 되찾기 위해 수년을 감내한다. 수사기관이 벌금이나 추징금 형태로 범죄수익을 회수하더라도, 대부분 국고로 귀속될 뿐 피해자에게 곧바로 돌아오는 구조는 아니다. 결국 피해자 스스로 민사 절차에 나설 수밖에 없다.
배상명령제도나 '부패재산의 몰수 및 회복에 관한 특례법(부패재산몰수법)' 같은 제도가 존재하지만, 실효성은 제한적이다. 배상명령제도는 소송 지연 우려 등 재판부 재량에 따라 각하될 수 있고, 손해액을 특정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법률사무소 중경 이희우 대표변호사는 "배상명령은 형사 재판부가 판단하는데, 손해액이 특정되지 않으면 각하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 손해액을 특정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부패재산몰수법 역시 손해배상청구권 행사 자체가 어려운 상황 등 피해 회복이 실질적으로 곤란한 경우에만 적용되며 제한적으로 활용된다.
결국 피해자들이 수년의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리딩방 사기 피해의 경우 서버가 해외에 있거나 온라인 범죄가 늘면서 피의자 특정 단계부터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다. 범인이 송치된 뒤 민사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형사 판결이 확정되지 않으면 범죄 입증 책임은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민사 재판부가 형사 판결을 이유로 기일을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형사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사 재판에서 유력한 증거로 활용되지만, 그만큼 피해자들은 형사 재판이 모두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희우 변호사는 "형사 고소부터 판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현행 법 체계상 피해자에게 직접 돈을 환급해 주는 제도가 없어 결국 민사소송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희진 주식사기 사건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2016년 이씨의 징역형이 확정된 뒤, 일부 피해자들은 2020년에서야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또다시 5년이 흘러 올해 8월에서야 대법원은 이희진씨 측의 책임이 있다는 원심을 확정했다. 범행 발생 이후 10년 만이었다.
하지만 판결이 나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이씨는 여전히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강제집행에 나서려 해도 재산이 배우자나 장인 명의의 법인으로 이전돼 이씨 명의 재산은 많지 않은 상태다. 피해자들이 버티는 이씨를 상대로 다시 법적 절차를 밟을 수는 있지만, 또 한 번의 소송에 필요한 변호사 비용과 시간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받을 돈보다 쓸 돈이 더 커지는 상황이다.

같은 사기인데 왜 구제는 다를까…'한국형 페어펀드' 시급

같은 사기 범죄라도 일부 사기 유형에는 신속한 피해 구제를 위한 제도가 마련돼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는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공공임대 우선 공급, 대출 만기 연장, 대위변제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 역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피해자가 지급정지 신청을 하면 금융기관과 금융감독원이 사기 계좌를 지급정지해 피해금을 환급해 줄 수 있다.
반면 코인·리딩방 관련 투자 사기는 상황이 다르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관련 범죄로 2933명이 검거됐고, 올해는 12월 통계가 빠졌음에도 이미 3888명이 검거됐다. 그럼에도 '투자 욕심을 부리다가 당한 사기까지 지원해야 하느냐'는 사회적 인식 속에 별도의 피해 구제 제도나 법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투자 사기의 위험은 이미 일상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제도적 대응은 제자리걸음이다.
해외 사례는 다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페어펀드(Fair Fund)'를 통해 환수한 부당이득과 민사 제재금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대신 투자 피해자에게 분배하고 있다. 유럽연합(EU) 국가들 역시 법에 따라 투자자보상기구 등을 운영하며 피해 회복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은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 과징금 제도가 존재하지만, 이를 피해 보상에 활용하지는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 윤창원 기자이재명 대통령. 윤창원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한국형 페어펀드를 도입해 투자자 피해 구제를 강화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소송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신속하고 직접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 금융위원회는 한국형 페어펀드를 도입하기 위한 착수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지만 아직도 제도는 도입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투자 사기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하고 명확한 피해 구제 장치와 함께 예방 중심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몰수한 범죄수익을 국고로만 귀속할 것이 아니라, 민사소송보다 신속하게 피해자에게 보전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도약 우성명 변호사는 "피해 구제 범위와 대상을 어느 정도 명확히 설정해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예방 차원에서는 정부 예산을 투입해 투자 사기 예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 사기가 점차 조직화·유형화되고 있는 만큼 다른 사기 범죄에 적용되고 있는 피해자 구제 제도가 적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디센트 법률사무소 홍푸른 변호사는 "투자 사기의 경우엔 보이스피싱처럼 계좌 지급 정지 등 최소한의 피해자 구제 제도도 마련돼있지 않다"며 "긴급하게 (피의자의) 계좌를 동결해서 진행하려면 지급정지 제도는 투자 사기의 경우에도 도입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 사기 피해자는 "민사소송까지 수년이 걸렸고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며 "범죄자가 빼앗아 간 돈이 내 돈인데, 제 사건의 경우 전액 국고로 환수된 현실이 원통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네가 투자 잘못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며 "그런데 별다른 정부의 제도조차 없다는 사실에 '정말 내가 잘못한 건가'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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