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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식, 초심자를 위한 미술사



책/학술

    이연식, 초심자를 위한 미술사

    '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

     

    서양 미술의 역사를 단 한 권으로 손쉽게 따라갈 수 있는 책 '이연식의 서양 미술사 산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이연식은 미술사가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도록, 초심자를 위해 미술사를 새로이 썼다. 우리에게 익숙한 르네상스의 작품들부터 시작해 이후 바로크와 고전주의, 인상주의, 추상표현주의 등을 거쳐 현대미술까지 소개한다. 뒤이어 행위예술 퍼포먼스에서 샤머니즘과의 연관성을 찾아 예술의 태초로 돌아가 고대와 중세의 미술을 소개한다. 그리고 19세기에 우리가 흔히 진정한 예술의 시작이라 생각하는, 르네상스 이전을 이상향으로 삼았던 '라파엘전파'를 소개하며 끝을 맺는다. 기존의 통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시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조들 간의 연관성이 오히려 미술사를 더욱 끈끈히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의 1장 〈우리가 아는 미술의 시작, 르네상스〉는 초기 르네상스의 싹을 틔운 조토와 마사초, 르네상스의 전성기로 이끈 보티첼리, 그리고 르네상스의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르네상스를 유럽 전역으로 전파하는 데 일조한 티치아노, 그리고 북유럽에서 르네상스를 모범적으로 받아들인 뒤러를 다룬다.

    2장 〈바로크와 로코코〉에서는 유럽 여러 나라가 르네상스를 흡수하여 발전시킨 결과물인 바로크와, 쾌락과 풍요의 귀족 문화에서 태어난 화려 난만한 로코코를 소개한다. 바로크의 대표적인 거장 카라바조와 그의 영향을 받은 젠틸레스키, 라투르, 베르니니, 플랑드르 지방의 브뤼헐, 루벤스, 반다이크, 17세기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페르메이르, 대표적인 궁정화가인 벨라스케스, 훗날 인상주의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프랑스의 푸생과 클로드 로랭 등이 이 장에서 소개된다.

    3장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사조들을 다룬다. 사치스럽고 방탕한 귀족 사회를 전복한 만큼 문화 또한 방종 이전의 엄정한 옛것을 찾고, 역사와 사상의 진보에 기여하던 고전주의 그림들의 경향을 다비드와 앵그르를 중심으로 살핀다. 고전주의가 복무하던 나폴레옹 왕조가 무너진 후 갈 곳 잃은 격정을 화폭에 담아낸 낭만주의에 대해서는 그로, 제리코, 들라크루아의 그림과, 프랑스 바깥에서 낭만주의를 펼친 프리드리히, 터너, 고야 등을 통해 알아본다.

    4장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는 부르주아 계급과 함께 등장한 사조들을 다룬다. 그림의 주제는 현실에 발 딛고 있어야 했고 그림의 크기도 부르주아들이 사서 감상하며 즐기기에 적합한 정도로 작아졌던 사실주의의 경향을 쿠르베를 통해 소개한다. 또한 살롱전 중심의 미술계 바깥에서 분투한 마네, 모네, 드가 등이 꽃피운 인상주의와, 쇠라, 로트레크, 고흐, 고갱, 그리고 후기 모네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사진의 등장 이후 실험적인 요소를 더하거나 진폭이 더욱 큰 격정을 담아낸 신인상주의를 다룬다.

    인상주의 화가들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지만 결이 다른 작품세계를 선보인 세잔으로 시작하는 5장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는 독자들이 교과서를 통해 배운 현대미술의 정석적인 난감함을 한껏 반영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화가들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넘어서서 캔버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해나가기 시작했는데, 마티스, 브라크, 피카소, 칸딘스키, 몬드리안 등 다양한 계열의 추상미술이 이로부터 배태된 것이다. 또한 자동기술법의 앙드레 마송을 비롯해 키리코, 달리, 에른스트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를 짚고, 무대를 미국으로 옮겨 잭슨 폴록과 로스코를 살핀다.

    6장 〈오늘날의 미술〉은 말 그대로 20세기 이후의 다양한 미술을 다룬다. 레디메이드 양식을 맨 처음 선보임으로써 미술을 새로이 정의하는 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 뒤샹을 필두로 이브 클랭, 클래스 올덴버그, 로이 릭턴스타인, 앤디 워홀, 피에로 만초니, 마크 퀸,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등, 다양한 오브제들을 만들고 실험한 현대미술가들을 살핀다. 들판에서 번개를 유도한 월터 드 마리아, 건물과 자연을 천으로 뒤덮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인공태양을 활용한 올라푸르 엘리아슨처럼 미술의 장소를 확장한 예술가들과, 비디오아트를 활용하듯 매체를 확장한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퍼포먼스까지 선보인 백남준에 이르면 미술은 더 이상 캔버스 위에 국한된 것이 아니게 된다. 이 장에서 마지막으로 다루는 또 다른 행위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는, 관객에게 그 내면을 투사케 한다는 점에서 예술을 일종의 샤머니즘 굿으로 귀결시킨다.

    샤머니즘의 호출은 자연히 예술의 태초로 넘어가, 7장 〈미술의 기원〉은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서 시작하게 된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된 최초의 미술은 망자에 대한 고대 이집트 미술과도 연관될 수 있다. 이후 미술은 그리스의 사실적인 조각상으로, 로마의 모각들로 이어지며 유럽대륙에 발을 붙였고, 기독교에 충실했던 중세에 접어들면 이콘화와 성당 건축, 스테인드글라스로서 존재감을 과시했으며, 수도원을 중심으로 필사된 서적들이나 태피스트리, 제단화 등에 그 흔적을 진하게 남겼다. 중세는 흔히 르네상스 이전의 암흑시대라는 오해를 사지만, 중세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이 있었기에 르네상스라는 위대한 사조도 이룩해낼 수 있었다.

    책 속으로

    예를 들어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고 싶은 파리 사람은 다른 누군가가 흑백의 동판화로 옮긴 것을 구입해서 봐야 했습니다. 이걸로 성에 차지 않으면 파리에서 마차를 타고 피렌체나 로마까지 몇 날 며칠 내려가야 했죠. 18세기 영국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미술품을 직접 보면서 돌아다니는 여행, 이른바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는데, 이 또한 미술품을 직접 보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여러모로 불완전했지만 판화는 이미지를 다른 지역으로 전달하는 유일한 수단이었습니다. 판화의 발전은 인쇄술의 발전과 궤를 함께합니다.
    _p60 〈1장 우리가 아는 미술의 시작, 르네상스_북유럽의 르네상스〉 중에서

    궁정화가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벨라스케스(1599~1660)입니다. 벨라스케스 때문에 당시 스페인 궁정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반다이크가 영국의 궁정 사람들을 실제보다 수려하게 그린 것과는 달리, 벨라스케스는 모델에 대해 냉정했습니다. 사실 군주들이 좋아할 만한 타입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무렵의 스페인 국왕 펠리페 4세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좋아해서 그의 화실에 수시로 드나들었고, 자신의 초상화도 여러 점 그리게 했습니다. 어찌 보면 화가가 모델을 길들인 셈이죠. 펠리페 4세는 군주로서 무능했다는 평을 받지만, 벨라스케스를 발탁하고 총애했던 때문에 역대 스페인의 군주 중에서 가장 훌륭한 초상화를 남기게 되었죠.
    _p69 〈2장 바로크와 로코코_벨라스케스〉 중에서

    나폴레옹의 대관식인데, 그림 속에서는 나폴레옹 자신이 관을 들고는 황후 조제핀에게 씌워주려 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에게 관을 씌워줬어야 할 교황은 나폴레옹의 뒤에 앉아 있습니다. 실제로 대관식에서 당연히 교황이 나폴레옹에게 황제의 월계관을 씌워줬어야 하는데, 나폴레옹이 교황의 손에서 월계관을 빼앗아 자기 머리에 직접 씌우고는 조제핀에게 황후의 관을 씌웠던 것입니다. 교회가 내게 관을 씌울 자격 따위는 없다, 황제의 자리는 어디까지나 내 손으로 쟁취한 것이다, 이거였죠. 이 그림에는 나폴레옹의 요구로 수정된 곳이 있습니다. 애초에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나폴레옹이 황제의 자리에까지 오르는 것을 못마땅해하여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그림에 어머니를 그려 넣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정묘한 솜씨 때문에 마치 그날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옮긴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주문한 사람의 요구에 따라 사실을 왜곡하고 있습니다.
    _p118~120 〈3장 고전주의와 낭만주의_다비드, 그리고 앵그르〉 중에서

    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마네와 모네인데, 사실 마네와 모네를 구분하기가 의외로 쉽지 않죠. 물론 이 두 사람의 작품을 많이 보면 친숙해지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발음만으로도 헛갈리기 쉽습니다. 마네는 인물화, 모네는 풍경화입니다. 마네가 선배, 모네가 후배입니다. 뭐, 학교 후배라는 게 아니라 마네가 모네보다 나이가 여덟 살 많습니다. 실제로 마네는 모네라는 젊은 화가가 있다는 말을 듣고 못마땅해 했다고 해요. 자기와 이름이 헛갈릴 염려가 있지 않겠느냐고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_p154 〈4장 사실주의와 인상주의_야외로 나간 물감〉 중에서


    세잔은 인상주의 예술가들에 대해 별로 감정이 좋지 않았어요. 세잔이 마네를 처음 만났을 때 마네가 악수를 청하자“ 죄송하지만 지금은 제 손이 너무 더러워서요”라고 하며 악수를 거절한 일화는 꽤 유명합니다. 세잔은 자신이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이었으면서도 인상주의 예술가들이 너무 도회적이고 감각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결국 세잔은 파리에 진득하니 머물지 못하고 고향인 엑상프로방스를 왔다 갔다 하더니, 아버지가 죽으면서 유산을 물려받게 되자 엑상프로방스에 틀어박혀버렸어요.
    _p182 〈5장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_세잔〉 중에서

    명민하고도 섬세했던 브라크는 장식용 벽지를 화면에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화면을 재구성한다’에서, ‘꼭 물감으로 그려야만 하나? 주변에서 손에 닿는 대로 화면에 갖다 붙여도 되지’로 넘어간 것입니다. 피카소도 냉큼 벽지와 잡지 따위를 화면에 붙이고는 글씨를 써 넣었습니다. 조금 지나서는, ‘꼭 평평한 화면에만 그리거나 붙여야 해?’ 하면서 두 사람은 아예 입체물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하지만 그때까지 오래도록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회화의 전통과 관행에서 벗어나서 평면과 입체 사이, 회화와 조각 사이, 보이는 대로 그리는 입장과 화면을 재구성하는 입장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 것은 엄청난 혁신이었습니다. 브라크와 피카소는 자신들이 앞선 예술가들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조형 질서를 만든다는 의식이 있었고, 긴장과 경이로 가득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_p191 〈5장 추상미술과 초현실주의_입체주의〉 중에서

    신기하게도 관객들은 아브라모비치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이 뒤흔들리는 느낌을 받았고, 적잖은 이들이 그 짧은 시간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기서 관객들은 저마다의 내면과 대면합니다. 예술가는 반사판, 거울 같은 구실을 합니다.
    퍼포먼스는 말하자면 현대적인 굿판입니다. 주재자와 관객의 교감, 합의, 관례가 중요합니다. 백남준도 자신의 퍼포먼스를 굿으로 여겼습니다. 예술가는 무당입니다. 아브라모비치는 무당 노릇을 했습니다. 관객이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는 무당입니다.
    _p241 〈6장 오늘날의 미술_개념의 확장과 퍼포먼스〉 중에서

    폼페이가 발굴되기 전까지, 유럽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회화에 대해 알 길이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미술의 선구라고 할 수 있는 고대 이집트 미술 또한 19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까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그리고 중세의 미술가들은 오늘날 우리가 비교적 잘 아는 이집트의 미술에 대해, 그리스와 로마의 회화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이지요. 또, 우리가 선사시대의 동굴 그림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겨우 100년 남짓밖에 안 되었지요.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과거에 대한 지식은 늘어났고, 문화와 예술에 대한 시각은 바뀌어 왔습니다. 달리 말해 과거는 새로이 발견되고, 새로이 구성됩니다. 미술사가 끝없이 새로 쓰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_p280 〈7장 미술의 기원_끝없이 새로 쓰는 미술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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