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퇴가 아니라 정시 퇴근입니다."
퇴근 후 업무에서 로그아웃하는 '워라밸(Work-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을 외치던 사람들. 하지만 퇴근하면 정말 일 생각 안하고 살 수 있나요?
이제는 워라밸을 넘어 '워라블'이라는 개념이 등장했습니다. '일과 삶을 섞는다(Work-Life Blending)'는 의미의 '워라블'은 개인의 삶을 중요시하는 Z세대를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같은 듯 다른 두 개념, 청년들은 어떤 직장을 꿈꾸는 걸까요?
◇취업난에도 자처하는 '조기퇴사'…워라밸이 중요한 MZ세대
밀레니얼 세대가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워라밸'은 직장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지난 8월 잡코리아가 알바몬과 신입직 및 경력직 구직자 127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이후의 직장관 변화'를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구직자들이 가장 영향을 받은 직장관으로 '워라밸의 중요도'가 꼽혔습니다.
구직자 496명 중 69.2%가 '코로나 이후 금전적인 보상보다는 나의 건강, 워라밸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답했는데요. 이 같은 응답은 신입직 구직자에게서 73.6%로 경력직 구직자의 60.6%보다 13%포인트나 높았습니다.
정부에서도 휴식이 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일·생활 균형 및 1800시간대 노동시간 실현'을 국정과제로 삼았는데요. 노동시간을 주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고 특례업종을 축소하는 내용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을 추진했습니다.
해당 개정안은 2018년 2월 28일 국회 통과해 2018년 7월 1일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었고, 오는 2021년 7월 1일부터는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됩니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었나봅니다. 연일 취업난과 청년 실업 문제가 대두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입사원의 조기 퇴사율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1년 이내 신입사원 퇴사율'을 조사한 결과 2010년 15.7%에서 2016년 27.7%까지 증가했습니다. 2019년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의 조사에서는 1년 이내 신입사원 퇴사율이 48.6%로 집계됐습니다. 조사 기관과 대상에는 차이가 있지만 신입사원의 퇴직이 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시장을 통과했음에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2020 취준생이 기대하고 사회초년생이 원하는 직장생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5%는 '자신의 성장이 어려워 보일 때' 퇴사를 결정할 것 같다고 답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성장이 가능한 회사라면 퇴사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지난 해 1년 간 신입사원 채용을 진행한 기업 356개사를 대상으로 '신입사원 조기퇴사'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0.9%는 과거 세대에 비해 밀레니얼 세대의 조기퇴사 비율이 더 높다고 밝혔습니다.
밀레니얼 세대가 조기 퇴사를 더 많이 하는 이유로는 '개인의 만족을 가장 중시해서'(68.8%), '워라밸을 중요하게 생각해서'(44.1%) 등의 의견이 이어졌습니다.
◇취미활동이 돈이 된다?
'워라블'은 업무와 생활의 경계를 허물고 적절한 조화를 통해 성장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SNS 활용에 익숙한 MZ세대는 다양한 자아를 갖는 것에 익숙한데요. 요즘에는 '부캐'라고 표현하기도 하죠.
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자 A씨는 퇴근 후에 책을 쓰는 작가로 변신합니다. 평소에 좋아했던 글쓰기를 취미 생활과 새로운 직업으로 연결했습니다.
퇴근 후에 취미로 영상 편집을 공부하는 직장인 B씨는 사내 홍보 영상 제작에 참여합니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업무에 활용한 것이죠.
일상 생활 속에서 업무에 필요한 영감을 얻는 이러한 경험은 모두 워라블에 속합니다.
주도적으로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삶을 발전시키고,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얻은 아이디어를 다시 일에 대입하는 선순환 구조인 것이죠.
◇업글인간과 덕업일치
워라블은 z세대만의 라이프 트렌드일까요? 사실은 많은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책 '트렌드 코리아 2020'에서는 2020년을 이끌 10대 키워드 중 하나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업그레이드(Upgrade) 하기 위해 열중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업글인간'을 꼽기도 했습니다.
잡코리아가 직장인 1394명을 대상으로 '자기계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직장인 절반이 '자기계발 한다'고 답했습니다.
직장인들의 자기계발 분야는 '영어(37.7%)', '직무자격증 취득(35.4%)', '직무 전공지식(31.7%)'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루의 절반 가까이, 혹은 그 이상을 일하며 살아갑니다. '일'과 '삶'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개념으로 본다면, 일하는 시간은 삶을 낭비하는 괴로운 시간으로 여겨질 수 있는데요.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이른바 '덕업일치'(덕질과 직업을 일치시킨다)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잡코리아와 동아일보가 20대 849명을 대상으로 '덕업일치'를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9%는 "취미·적성에 맞는 직업(덕업일치 일자리)을 찾는 것이 행복을 좌우한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거나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목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