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딸 앞에서 결혼은 금기어"…서울로 쏠리는 청년들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

편집자 주

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birth.nocu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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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지방대 졸업 후 서울서 취직…결혼은 금기어"

충북 음성군에 사는 박명수(가명·56)씨는 요즘 코로나19로 일거리가 줄면서 아내와 함께 운영하는 열처리 공장에 흥미를 잃었다.
출근은 하지만 일거리가 없어 공치는 일이 다반사다. 박씨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계속 벌어놓은 거 까먹기만 하는 거 같다"며 "집사람은 이제 안 나와도 될 거 같다"고 했다.
박씨의 큰 딸(27)은 충북의 한 사립대를 졸업한 뒤 경기도 하남에 원룸을 얻어 현재 서울 소재 직장에 다닌다.
미디어를 전공한 딸은 영상콘텐츠 제작 회사에 다니다가 얼마 전 홍보대행사 영상콘텐츠에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다.
딸 박씨의 원룸은 전세 1억 원짜리인데 다행히 경기도의 청년주택 전월세 지원 혜택을 받아 해결했다.
당초 1천만 원 정도가 부족했지만 아버지 박씨가 채워줬다. 딸은 아버지와 약속한 대로 적금을 넣듯 매월 25만 원을 아버지에게 부치고 있다.  
 
아버지 박씨는 "그나마 둘째는 지역 사회복지시설에 취직했고 집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다. 그래도 출퇴근 거리가 꽤 돼 중고차를 사줬는데 내 일이 줄어 걱정이 많다"며 "아이들이 결혼은 안 할 것이라고 한 적이 있어서 가족끼리도 결혼이란 말 자체를 잘 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 좁은 원룸서 살아가는 청년들…"차곡차곡 돈 모으면 삶 나아질까"

경상남도 섬에서 자랐고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 문학공부를 한 김모(29)씨는 서울 강서구에 있는 1억 2천만 원짜리 오피스텔 원룸에 살면서 영상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부모님은 아직 고향에 살지만 김씨는 자주 찾아뵙지는 못한다.  결혼을 아예 하지 않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서두를 마음도 없다.
부모가 경기도 일산에 사는 정모(29)씨는 당초 고양시에 있는 중소기업에 취직해 잘 다니다가 전공을 살리고 싶어 지난 4월 강남에 있는 작은 광고대행사로 옮겼다.
월급은 조금 올랐지만 일산서 강남까지 다니기가 어려워 관악에 있는 1억짜리 원룸 전세를 얻었다.
국가의 청년 지원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많이 하면서 방이 좁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고민이 많아졌다.
서울에 넓은 방을 얻자니 너무 비싸고, 싼 방 얻자고 경기도 쪽으로 가자니 출퇴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씨는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자꾸 답답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만 당장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열심히 일하면서 즐길 것은 즐기되 차곡차곡 돈을 모으다 보면 삶도 나아질 것이라는 것이 그녀의 희망이다.
부모를 떠나 서울에서 살고 있는 정씨 등 3명은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는 것, 원룸에 산다는 것, 결혼할 생각이 없거나 굳이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 나름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것 등 비슷한 점이 많다.

생존 경쟁 치열한 서울…전국 합계출산율 꼴찌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들 청년의 사례는 사실 인구 문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인구 유출은 지방 소멸을 부르고, 인구의 수도권 쏠림 현상은 각종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은 저출산 기조로 이어지기도 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합계출산율이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의 인구 미래가 어둡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수도권은 젊은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버티는 곳이자 결혼하고 싶지 않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통계청이 지난달 내놓은 '2020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10가구 중 6가구는 1인 또는 2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해 11월 기준 총 가구 수는 2148만 가구로 전년 대비 59만(2.8%) 가구가 늘었는데 가구원 수 별로 살펴보면 1인 가구(31.7%)가 가장 많았다. 특히 20대 1인 가구가 127만 가구로 1년 전 112만 가구 대비 15만 가구나 늘었다.
혼자 사는 20대 1인 가구의 증가는 비혼 또는 만혼과 관련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자리 찾아 서울로…결혼에 대한 가치관도 변해

올해 감사원이 펴낸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과분석 보고서'와 지난해 한국고용정보원의 '2019 청년 사회생활 실태조사'는 청년들의 수도권 집중과 저출산 문제의 요인을 다양하게 짚어내고 있지만 핵심은 하나다.
바로 일자리. 청년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각종 환경과 의식의 변화로 인해 아이를 낳겠다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감사원이 한국행정연구원에 의뢰한 연구에 따르면 저출산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핵심 요인은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또 심리적으로 결혼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졌다는 것, 경제적으로는 가구소득 감소와 양육·교육비 증가, 주택가격 상승 등이 꼽힌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인구의 수도권 집중과 저출산에 대해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출산한다는 것이 본능적인 선택지가 돼야 하는데 본능을 가로막는 사회구조적인 변화가 이들에게 위협적인 수준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기성세대는 시간이 지나면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는 확실한 신호가 있었고 이를 믿고 가정을 꾸렸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서울과 수도권이 일자리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라 젊은이들이 몰릴 수밖에 없는데 그들의 삶이 굉장히 열악하다. 출산에 맞춰져 있는 인구정책으로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전 세계 어디서도 돈을 줘서 인구가 늘어난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이 포기했다기보다는 현실 안주에 맞는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 지속가능성과 연결해 자꾸 출산을 강조하는 것도 또 다른 압박"이라며 "자연스럽게 가족을 선택하고 출산하는 게 본인에게 효용 있고 도움이 된다는 뚜렷한 신호를 줄 수 있도록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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