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birth.nocutnews.co.kr
인구 4989명의 포두면, 30년 뒤 사라질지도
지난 13일 전남 고흥군 포두면의 거리가 한산하다. 독자 제공 "빈집이 많아. 연세 드신 분들이 눈 깜짝깜짝할 사이에 돌아가시더라고. 그러다 보면 자식들이 누가 시골 와서 살겠어? 그러니까 빈집이 많지."
지난 13일 전라남도 고흥군 포두면.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이 뙤약볕을 피해 집에 머물면서 가뜩이나 텅 빈 거리는 공기마저 적막했습니다. 이 마을 터줏대감인 한옥분(가명)씨가 전한 포두면의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활력을 잃은 모습이었습니다.
인구 4989명이 살아가는 포두면. 이곳은 앞으로 30년 뒤 대한민국 행정구역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5월 소멸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분류했기 때문입니다.
포두면의 소멸위험지수는 0.090. 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로 나눈 값'인데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진입 단계, 0.2 미만이면 소멸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됩니다. 현재 포두면은 5단계 소멸고위험 지역입니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2014년 마스다 히로야 일본창성회의 대표가 내놓은 '지방소멸'이라는 보고서에서 유래한 지표입니다. 당시 보고서는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인 896개가 2040년까지 소멸한다고 경고했죠.
마스다 지표에 따르면 인구 3만 명을 유지하지 못하는 지자체는 30년 후 소멸지역이 됩니다. 하지만 현재 포두면의 각종 지표를 보면 30년을 유지하는 것도 힘겨워 보입니다.
한때 바글바글했던 포두초, 지금은 전교생 80명뿐
사실 포두면은 한때 학령인구 증가로 학급 수를 늘려달라는 운동까지 벌어질 정도로 활력을 띠는 지자체였습니다. '포두공립보교 학급연장운동'이라는 제목의 기사(동아일보 1935년 9월 19일자)를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고흥군 포두면은 인구가 근 만 명이나 되는데 공립보통학교 일개소에 삼학급뿐이라 매년 입학되는 아동은 겨우 삼십 명이다. 아동교육에 고통이 심하여 일반 학부형은 항상 학급연장을 희망하더니…."
동아일보 1935년 9월 19일 기사. 자료: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포두초(옛 포두공립보교)를 졸업한 김고봉(가명·60대)씨는 1960~70년대 재학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나 학교 다닐 땐 애들이 막 바글바글했어. 전교생이 이천 명은 됐을걸. 그랬는데 이게 갈수록 작아져가지고 지금은 저 멀리 분교에서 데려오고, 애들을 다 끌어다가 데려와도 백 명이 안 된다는 거야."
반세기 만에 학생 수는 수십 명 단위로 쪼그라들었습니다. 포두초는 1922년 개교한 이래 3개 분교 통합, 4개 초교 통폐합을 거쳐서 현재 전교생이 80명뿐인 작은 학교가 되었습니다. 비단 포두초에만 국한된 현실이 아닙니다.
지난 13일 전남 고흥군 포두면 포두초등학교. 독자 제공 '우주과학'의 고장 고흥군, 소멸위험지수 전국 3위
고흥군으로 지역을 더 넓혀보겠습니다. 전남교육청에 등록된 고흥군 학교 현황을 살펴보면, 초등학교는 포두초를 비롯해 20곳(분교 포함), 중학교 15곳, 고등학교 5곳입니다. 서울 송파구의 경우 초등학교만 39곳에 달하는 것과 대조적이죠.
대한민국 최초로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린 '우주과학'의 고장 고흥군. 면적이 807㎢로, 규모로만 놓고 보면 서울시 전체 면적(605.24㎢)보다 1.3배 넓은 광활한 지역이지만, 인구는 6만 4336명에 불과합니다.
한국고용정보원 분석에 따르면 전국에서 사라질 위험이 세 번째로 큰 지역이 바로 고흥군입니다. 소멸위험지수는 0.136으로, 5단계 소멸고위험 지역에 해당하죠.
지방소멸은 고흥군 같은 농촌 지역에서만 발생하지 않습니다. 작은 마을부터 지방 소도시에 이르기까지 전 국토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경북 군위·의성군 가장 위험…소멸위험 지역 해마다 증가
지난해 5월 기준, 전국에서 가장
소멸위험이 높은 지역은
전남과
경북이었습니다.
경북 군위군의 소멸위험지수가 0.133으로
1위였고,
경북 의성군 0.135,
전남 고흥군 0.136,
경남 합천군 0.148,
경북 청송군 0.155의 순이었습니다.
지방소멸 위험은 코로나19로 인해 가파르게 상승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 지역은 2019년 5월 93개(40.8%)에서 지난해 5월 105개(46.1%)로 12곳이나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전국 읍면동 소멸위험 지역도 2017년 5월 1483개(전체 3549개)에서 2018년 5월 1554개(전체 3555개), 2019년 5월 1617개(전체 3564개), 지난해 4월 1702개(전체 3545개)로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특히 경기도 여주(0.467)와 충북 제천(0.457), 전남 무안(0.488) 등 '시부'가 새롭게 소멸위험 지역으로 진입했는데요.
이에 대해 고용정보원은 "대부분의 '군부'는 이미 소멸위험단계 진입이 완료됐으며, 이제 '시부'의 소멸위험단계 진입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약 100년 후엔 서울·경기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 100만 명 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최근 감사원이 내놓은 '인구구조변화 대응실태' 감사 보고서에 담긴 내용인데요,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1510만 명으로 쪼그라드는 2117년에는 서울과 경기만 100만 명 이상 인구를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출생자가 늘거나, 인구유출이 없거나, 인구유입이 증가해야 하는데 소멸위험 지역은 모든 요인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흥군의 경우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많은 '데드크로스(인구 자연감소)'를 진작에 넘어섰죠. 통계청에 따르면 2017~2019년 3년간 고흥군에서는 227명 출생(1143명 사망), 219명 출생(1048명 사망), 252명 출생(1019명 사망)의 그래프를 보였습니다.
'블랙홀'처럼 지방 청년 인구 빨아들이는 수도권
지방소멸의 핵심 근원은 청년들이 지방을 떠난다는 것입니다. 수도권이 블랙홀처럼 지방 인구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죠.
고용정보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3~4월 수도권 순유입 인구는 2만 7500명으로, 전년 동기 1만 2800명보다 2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유입인구의 75.5%가 20대 청년들이었죠.
대한민국은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입니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면적(㎢) 대비 인구수가 전국 509.2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인구밀도는 1만 6364명, 경기도 1226.4명, 인천 2755.5명으로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됐습니다.
감사원 자료를 보면 1990년 1834만 명이었던 수도권 인구는 2020년 2596만 명(50.1%)으로 꾸준히 증가했는데요, 인구의 절반이 국토의 12%에 몰려 있는 상황입니다.
이는 일본 28%, 프랑스 18.8%, 영국 12.5% 등 다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의 수도권 집중도를 압도적으로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특히 청년층(15~34세)의 수도권 거주비율은 2000년 48.5%에서 2019년 52.7%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는데요, 다른 연령층에 비해 최대 4.1%포인트 높은 실정이라고 감사원은 전했습니다.
수도권으로의 인구 쏠림 현상은 출산율 문제와도 직결될 수 있습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저서 '인구미래공존'에서 "안 그래도 인구밀도가 높은 국가인데, 거기에서도 서울 땅에서만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한 한국의 초저출산 현상이 반등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진단했습니다.
안정적인 일자리 찾아 서울로, 서울로
청년들의 '인서울' 심리에는 사실 이유가 있습니다.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더 나은 주거환경을 위해, 더 나은 여가생활 등등을 위해 인프라가 구축된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것이죠.
2019 청년 사회생활 실태조사. 자료:한국고용정보원 고용정보원이 2019년 만 19~34세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 사회생활 실태조사'를 했더니 취업자와 대학생, 구직자 모두 비수도권 이주·정착을 위해선 '안정적인 일자리'가 필수라고 답했습니다.
취업자는 안정적인 일자리(44.6%), 낮은 주거생활비(23.8%), 정착지원금 등 금전적 지원(19%)을 꼽았습니다.
대학생은 안정적인 일자리(32.8%), 문화·여가시설(24%), 수도권·대도시로의 교통 연결성(21.2%)을, 구직자는 안정적인 일자리(46.4%), 문화·여가시설(25.2%), 수도권·대도시로의 교통 연결성(21.6%)을 각각 필수 요소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이 원하는 안정적 일자리는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감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자산총액 합계액이 5조 원 이상인 공시대상 기업집단 소속회사 2278개의 소재지는 서울 1179개, 경기 418개, 인천 64개로 총 1661개(72.9%) 기업이 수도권에 쏠려 있었습니다.
1천대 기업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2019년 매출액 기준 1천대 기업을 분석했더니 754개 본사가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 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들 수도권 회사가 차지하는 매출액도 전체의 86.1%에 달했고요.
부산상공회의소는 보고서에서 "산업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공항, 항만 등의 인프라 구축이 가장 필요하며, 산업을 선도하는 대기업 유치 및 산업 집적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지방을 사수하기 위해 애쓰는 지역 담당자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감사원이 전국 지자체 인구담당자 245명을 상대로 청년들이 왜 지방을 떠나는지 물었더니 95.2%가 '양질의 일자리 부족' 때문이라고 응답했습니다.
지방의 위기를 넘어 지방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 조 교수는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부산에서조차 청년들이 서울로 오고 있다"며 "청년들을 수용할 수 있는 다른 도시들이 없어진다면 서울은 앞으로도 젊은 인구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감사원은 "초저출산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청년층이 양질의 교육기회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고, 수도권 청년들은 과도한 경쟁과 미래에 대한 불안 등으로 비혼·만혼을 선택하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 마련을 촉구했습니다.
발등에 불 떨어진 정부, 지방소멸 대책 고심
지방소멸이 가시화되자 정부도 바빠졌습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 4월부터 지방소멸 위기지역 지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는 '지방소멸 위기지역 지원 특별법'을 통과시키기로 했습니다.
지자체들도 자구책을 마련 중입니다. 부산시는 지난 7월 일자리와 청년, 가족 등 인구문제 해결을 위해 향후 5년간 예산 3조 5600억 원을 투입하는 내용의 '제1차 부산광역시 인구정책 기본계획'을 내놨습니다.
울산시도 지난 7월 2030년 인구 130만 명 달성을 목표로 '인구증가 대책 추진본부'를 꾸렸고, 전남도는 인구문제 극복을 위해 청년 취업 및 창업 인큐베이팅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소멸위험 3순위인 고흥군은 지자체 최초로 인구정책과를 신설했습니다. 청년유턴, 아이행복, 귀향귀촌 등 3대 전략을 담은 시책을 펴고 있다는데요. 현장에선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요? 고흥군 포두면 주민 한씨에게 물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은근히 많아. 우리 애들이 마지막이었거든. 근데 지금 초등학생 2~3학년 될까? 두세 명이 줄레줄레 내려가는데 엄청 신기한 거야. 보면 인사하고. 어머, 우리 동네에 애들 목소리가 난다 그랬더라니까!"
지방에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이 사회 전반에 더 넓고, 더 깊게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 참고문헌
- 인구미래공존 (조영태, 2021)
- 포스트 코로나19와 지역의 기회(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2020)
- 2019 청년 사회생활 실태조사(한국고용정보원, 2020)
- 2019년도 매출액 기준 전국 1000대 기업 중 부산기업 현황 조사(부산상공회의소, 2020)
-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과분석 감사 보고서 (감사원, 2021)
- 인구구조변화 대응실태Ⅰ(지역) 감사 보고서 (감사원,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