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군인' 머지않다…작아지는 군대 극복하려면?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

편집자 주

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덜 작아지도록, 더딘 속도로 오도록 대비할 수는 있습니다. 초저출생은 여성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녀 모두의 일입니다.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세대의 일입니다. CBS는 연중기획 '초저출생: 미래가 없다'를 통해 저출산 대책의 명암을 짚고, 대한민국의 미래와 공존을 모색합니다. ▶birth.nocutnews.co.kr

     
저출생
에 따른 인구 감소로 인해 군대 갈 사람이 줄면서 대한민국 군대도 작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9월 기준으로 우리나라 병력은 약 55만 5천 명. 군 당국은 앞으로 병력 규모를 50만 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그렇다고 해도 매년 20만 명씩을 징집해야 합니다.
약 20년 뒤인 2039년 징집 대상 병역 의무자는 15만 1천 명. 출산율이 극적으로 반등하지 않는 이상 나머지 5만 명을 채울 도리가 없습니다. 작아지는 대한민국을 피할 수 없다면, 이제는 군대도 다운사이징에 대비해야 합니다. 병력 규모를 축소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한번 군에 들어온 전문인력들이 안정적으로 복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북한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경제력에 비해 비교적 큰 규모 병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는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 어떻게 하면 다운사이징을 하면서도 강군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미 병력 감축에 성공한 미국 등 선진국들 선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軍 "대량획득-대량손실 벗어나야"…여성 징병제의 모순

지난 8월 27일 오전 전북 익산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열린 '21-2기 부사관 임관식'에서 신임 부사관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이날 임관식에서는 여군 402명을 포함해 신임 부사관 487명이 하사 계급장을 달았다. 사진공동취재단지난 8월 27일 오전 전북 익산시 육군부사관학교에서 열린 '21-2기 부사관 임관식'에서 신임 부사관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이날 임관식에서는 여군 402명을 포함해 신임 부사관 487명이 하사 계급장을 달았다. 사진공동취재단
지금까지 우리 군이 병력을 운용해온 방식은 이른바 '대량획득 대량손실'로, 병·부사관·장교들 모두 의무복무를 마친 뒤 장기복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군을 떠나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장기복무자 인원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사소한 징계 기록이라도 있으면 유능한 인재여도 선발 과정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죠.
군 당국도 이런 안타까움을 모르진 않습니다. 육군본부는 2018년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하사를 비롯한 초급간부 선발 비율을 30% 정도 축소하고, 대신 중사·상사 정원을 확대해 숙련된 전투력 발휘 여건을 보장할 계획"이라며 기존 '대량획득-대량손실'이라는 비효율적 피라미드형 인력수급 방식을 '소수획득-장기활용'이라는 항아리형 인력구조로 개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육군은 인력구조 개편 필요성에 대해 "인구절벽 시대 도래에 따른 가용 병력 자원 급감병 복무 기간 단축, 병사 봉급 인상 및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초급 간부 획득 여건이 악화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지금처럼 하사·중사들을 대량으로 뽑았다가 대량으로 전역시키면 미래 환경에 도저히 대처할 수 없다는 얘기죠.
저출생과 군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 이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여성 징병제인데요, 사실 이 제도는 성별만 바뀐 대량획득-대량손실 상황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군에서 운용할 수 있는 예산과 인력 규모는 경제력에 맞춰 정해지게 마련인데, 여기에 현재 남성 병역 자원과 비슷한 규모 '여성'이 추가된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집니다. 징병제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의무를 부여한 뒤, 정해진 복무 기간이 지나면 원칙적으로는 전역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젊은이들이 군대에 많이 가면 그만큼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든다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나라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결국 대량획득-대량손실 구조를 재연할 가능성이 높죠. 군사강국이자 경제력이 발전한 나라들이 굳이 여성 징병제를 하지 않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장교 관문 넓히고', '연령 제한 완화'한 선진국

    
이제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하면 군대에 머무르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나라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군대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도 업무량과 환경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보수와 대우 등을 견디지 못해 전역을 택하는 사례가 상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어떻게 젊은 군인들 마음을 붙잡았을까요? 주간국방논단에 실린 '저출산의 심화와 선진국의 군 인력획득 이슈' 논문에 그 단서가 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각국 병력 규모는 1975년과 2015년을 기준으로 미국63%, 영국 46%, 프랑스 42%, 독일 36% 각각 감축됐습니다. 해당 국가들은 8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보다 합계출산율이 낮았던 국가들입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먼저 미국을 볼까요? 미국은 20대 초반 젊은이들만 병역 자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공군 병 모집연27세에서 39세로 올리는 등 연령 제한을 완화했죠. 군인에게 체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30대까지는 누구나 군에 입대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뿐만 아니라 육군에서 'Green to Gold', 해군에서 'STA(Seaman To Admiral)-21'이라 불리는, 병이나 부사관이 장교가 될 수 있는 제도도 열어 놓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간부사관'이라는 비슷한 제도가 있긴 하지만, 지원하려면 대학교 2학년 이상을 마치거나 전문대를 이미 졸업했어야 한다는 차이점이 있죠. 미군은 프로그램에 선발되면 현역 신분으로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영국도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군대가 민간에 비해 기회와 임금이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른바 '핀치포인트'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분야에서 얼마나 '능력 부족(필요한 인력 대비 가용인력이 부족해 임무를 적절히 수행할 수 없는 상태)'이 발생하는지를 파악해 이에 특화된 정책을 펴겠다는 의도입니다.
영국군은 이 제도를 통해 대표적으로 엔지니어가 부족하다는 점을 깨닫고, 급여 체계 개선방안을 연구하는 한편, 대학과 연계해 공학 학위를 가진 졸업생들이 군에 지원하도록 독려하기도 했습니다.

"투잡 예비군 많아져야"

    
예비군 제도탄력적으로 운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미군은 현역으로 입대할 때 처음부터 몇 년 동안만 복무하기로 계약하고 입대한 뒤 해당 기간이 끝나면 전역할 수도 있고, 본인 의사에 따라 계약을 추가로 맺기도 합니다. 그런데 군을 떠나 다른 직업을 가지더라도 여전히 예비군으로 복무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6년 12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회 연설에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에서 예비군은 '군 복무 다 끝났는데 또 불러 훈련시킨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데요, 미군은 이런 방식이 아니고 상당히 탄력적으로 예비군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미국 예비군은 종류에 따라 1년에 14일, 39일, 180일 등 특정 기간에 동원돼 훈련을 받고 기량을 유지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예비군으로 입대할 수도 있으며 현역에서 전역하고 난 뒤 예비역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전시 상황이 되면 단계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예비군을 동원할지가 정해져 있죠.
이렇게 하면 전투력을 유지하면서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고, 유사시에는 다시 군으로 복귀해 임무를 수행할 수 있어 합리적입니다. 본인 선택에 따라 계급을 그대로 유지하다가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는 일도 가능합니다.
우리 군은 2013년부터 '예비역의 현역 재임용'이라는 제도가 생겨, 대위·중사 이하 장교·부사관은 전역한 지 3년 이내라면 다시 현역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기는 했습니다. 재임용되면 장기복무 지원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한편으론 예비군 그 자체와 관련된 제도도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교와 부사관 출신 예비역들이 자원에 의해 편입되는 '비상근 복무 예비군'이라는 제도인데요. 현재는 1년에 15일 동안 소집돼 예비군 부대에서 개인·직책 수행 훈련 등을 받습니다. 일반 병 출신 예비군 동원훈련도 준비합니다.
지난  13일 오전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남영신 육군 참모총장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13일 오전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남영신 육군 참모총장이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육군본부는 올해 국정감사 업무보고 자료에서 비상근 복무 예비군 제도를 확대 시행하겠다며 현행법상 연간 30일 이내여야 하는 소집 기간180일로 늘리고, 대상도 병에서 예비역 중령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내년에는 미군처럼 장기 비상근 예비군도 시험운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군이 추진하는 방안엔 허점도 있습니다. 원래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발의한 '투잡 예비군법'은 당초 소령, 상사급 이상 예비군을 계급별 나이 정년(소령 45세, 상사 53세) 제한을 두지 않고 만 60세, 매년 180일까지 복무시키자는 계획이었는데요.
육군은 해당 입법안이 시행되더라도 계급별 나이 정년에 도달하는 시점에서 복무를 중단시키는 쪽으로 운영 지침을 수정했다고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예비군으로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숙련된 군인들이 많은데 이들을 원래 정해진 정년까지만 복무시키겠다는 얘깁니다. 예비군 제도가 왜 존재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참모총장 관사에도 녹물 나오는 軍…"삶의 질 고려해야"

    
군인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가족친화적인 근무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도 중요합니다.
최근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장병들의 기본적인 의식주는 해결해 줘야 한다""간부 숙소 72%가 노후화돼 있다"고 지적하자,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제 관사에도 녹물이 나온다"고 답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요. 참모총장 관사에 녹물이 나올 정도면 일선 야전부대 상황은 안 봐도 뻔합니다.
특히 인적이 드문 곳에 있는 군부대 특성상 현역 군인들은 노후화된 숙소 말고도 생활 인프라,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이는 가정을 꾸린 수많은 군인들이 전역을 택하는 이유가 되어 왔습니다.
전 세계에 군대를 파병하는 미군은 군인으로서 주어지는 임무가 가족관계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일찌감치 깨달았습니다. 부상과 사망 위험도 있고, 가족을 데려갈 수 없는 위험한 곳으로 파병을 가기도 하며, 임무를 위해 평생 동안 대기하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죠.
미군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삶의 질, 가족의 환경 적응, 정신적 건강, 스트레스, 배우자 취업, 재정 문제 등 여러 방면에서 해결책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영국군은 장병들과 그 가족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주택 구매임대보증금에 대해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고, 보직과 근무지를 배정할 때 당사자 편의와 라이프 스타일 등을 최대한 고려하도록 했습니다.
최근 우리 군도 기혼 군인들에게 난임치료와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을 지원하는 등 군인 가족들 생활에 신경 써야 한다는 기류가 점점 커져가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일이 바쁘거나 눈치가 보여 지난해 연차를 하루도 쓰지 않았다"는 해괴한 이야기가 심심찮게 취재기자들에게 들리는 현실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듯합니다.

'귀한' 군 전문인력…"뭐라도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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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병제를 중심으로 운영돼 온 우리 군은 그동안 한창 젊을 때 입대한 이들을 짧은 기간 동안 활용하고, 그다음엔 전역시켜 사회로 내보내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군인 개개인에 대한 존중과 대우도 낮을 수밖에 없었죠.
인구가 넘쳐 제발 군대 좀 오지 말라고 하던 시절에는 이 방법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인구가 갈수록 줄어 제발 군대 좀 와달라고 애걸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설사 징병제를 폐지할 수 없다고 해도, '의무' 징병은 되도록 짧게 하되 '직장'으로 선택한 모병은 전문 인력으로 오래 남아 있어야 초저출생에 따른 병역 자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 시리즈 D.P.에 나온 대사를 인용하자면, 우리나라 군은 인력구조 개편을 위해 당장 "뭐라도" 해야만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 군이 부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인구 절벽에 철저히 대비할 수 있기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 참고문헌
- 저출산의 심화와 선진국의 군 인력획득 이슈 (한국국방연구원 독고순·김푸름, 2017)
- 국방인력 확보의 어려움, 영국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 (한국국방연구원 이현지·박민섭, 2020)
- 미 육군의 가족 웰빙(Family Well-being)에 대한 접근과 시사점(한국국방연구원 문채봉, 2021)
- 저출산·고령화 대책 성과분석 감사 보고서 (감사원,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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