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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사회 부조리를 깨가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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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사회 부조리를 깨가는 여성

    [현장] 영화 '비밀은 없다'(감독 이경미, 2015) GV(관객과의 대화)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 여성캐릭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기획의 하나로 영화 '비밀은 없다'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린 가운데 씨네21 이화정 기자(사진 왼쪽)와 이경미 감독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여성'과 '엄마'라는 단어가 갖는 전형성은 생각보다 강하고 일반화되어 있다. 마치 공식처럼 여성과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좀처럼 극복될 수 없는 과제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이러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키는 과정은 험난하고, 이해하기 어렵고, 때로는 과격해 보일 수 있다. 마치 영화 '비밀은 없다'에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나쁜 여자, 이상한 여자, 죽이는 여자: 여성캐릭터로 보는 한국영화 100년' 기획의 하나로 영화 '비밀은 없다' GV(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비밀은 없다'는 국회 입성을 노리는 종찬(김주혁 분)과 그의 아내 연홍(손예진 분)에게 닥친, 선거기간 15일 동안의 사건을 다룬 미스터리 스릴러다. 선거를 15일 앞두고 갑작스럽게 사라진 딸, 하지만 남편은 선거에 더 집중하고 경찰조차 믿을 수 없게 되자 연홍은 홀로 딸의 흔적을 쫓기 시작한다. 선거를 포기할 수 없는 남편과 딸을 포기할 수 없는 아내 사이에 균열이 시작되면서 '비밀은 없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쓰 홍당무'(2008)로 섬세한 연출을 선보인 이경미 감독의 작품인 '비밀은 없다' 각본에는 박찬욱 감독과 '박쥐', '아가씨', '독전' 등의 정서경 작가가 각본에 참여했다.

    영화 '비밀은 없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주인공인 연홍은 '사회적'인 혹은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면모를 보인다. 연홍으로 대표되는 보통의 '여자', '엄마'의 사회적이고 사전적 정의와는 다른 인물이기 때문이다. 연홍을 보며 낯섦을 느끼는 것은 학습된 여성이 갖는 이미지에 대한 낯섦이다.

    GV에 참석한 이경미 감독은 영화에 대해 "착한 여자나 관습에 순응하는 여자는 많이 있으니, 순응하지 않고 자기 욕망에 충실하고 참지 않는 여자를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사회적인 시선이 달라지고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이슈가 되는 날을 상상 못 하고, 강한 여자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썼다. 정형화되어 있고 재미없고 지루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만하고 싶다는 욕망이 '비밀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쓰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관습에 순응하지 않고 정형화되지 않은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 또한 정형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의 진행 방식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여러 상징과 다소 전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연출 시도, 주인공 연홍의 분노와 슬픔, 광기가 뒤엉킨 감정이 표출되는 방식이 관객에게는 독특함으로 전해질 수 있다.

    스릴러라는 장르를 활용해 영화는 여성, 엄마에 대해 가진 전형적인 이미지와 고정관념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걸 보여주는 것은 '연홍'이다. 연홍은 스스로 '연홍'이 되기보다 종찬을 통해 자신을 구현하려 한다. 그러나 딸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어나가며 연홍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 서게 된다. 그리고 종찬이라는 비뚤어진 욕망을 떼어낸다.

    이경미 감독은 "욕망을 가지고 있고, 욕망에 충실한 여자를 좋아하는 편이다. 연홍도 그렇다. 연홍의 스스로 대통령이 아닌 영부인인 힐러리가 되겠다는 비뚤어진 욕망을 가졌다. 남편을 통해서 대리만족하려는 게 연홍의 비뚤어진 욕망의 시작"이라며 "그런 여자가 어떻게 비로소 스스로 일어서게 되는가가 '비밀은 없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영화 '비밀은 없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연홍은 여자다. 그리고 엄마다. 여기에 극 중 경상도 출신 종찬과 달리 연홍은 '전라도' 출신이다. 전라도 출신인 연홍은 선거에 출마한 종찬에게는 일종의 패널티와도 같다. 연홍은 존재나 출신만으로도 '혐오'가 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의 총집합이라 할 수 있다.

    이 감독은 "연홍에게 이 사회의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걸 모두 다 넣었다. 여성 혐오, 지역감정 등 부조리한 것, 평소 살면서 답답하다고 느낀 것 등을 다 넣었다"며 "정말 끝도 없는 나락으로 빠져서도 끝까지 자기를 무너뜨리거나 망가뜨리지 않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고 싶었다. 사회의 부조리를 도장 깨듯이 씩씩하게 깨나가는 여자를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비밀은 없다'가 개봉한 2015년으로부터 4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미투 운동'이 일어나며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여성 문제에 대한 관심이 변화했다. 그렇기에 2019년에 다시 보는 '비밀은 없다'는 조금 더 특별하고 남다른 영화로 다가올지 모른다. 고정관념에 대한 전복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2015년보다 커진 상황에서라면 말이다.

    이경미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는 늘 내가 만든 영화가 보고 금방 잊히는 영화가 아니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만든다"며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라왔다. 생각보다 더 여러분들이 기억해주고 좋아해 주시는 거 같아서 욕심이 생긴다. 더 오래도록 기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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