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더 스파이'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TCO㈜더콘텐츠온 제공
※ 스포일러 주의
1960년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 사이 긴장이 극단까지 치달으며 세계는 3차 세계대전의 위기를 겪는다. 핵전쟁이 될 뻔했던 위기를 막은 것은 한 인물의 양심이자, 한 평범한 인물의 용기다. 외화 '더 스파이'는 엄혹한 시대를 용기 있게 맞선 인물과 그의 감정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소련 군사정보국 올레크 대령(메랍 니니트쩨)은 핵전쟁 위기를 막고자 정부의 눈을 피해 미국 중앙정보국 CIA에 중대 기밀을 전하고자 한다. CIA는 영국 비밀정보국 MI6와 협력해 소련의 기밀문서를 입수하기로 한다.
이를 위해 두 정보기관은 평범한 영국 사업가 그레빌 윈(베네딕트 컴버배치)을 스파이로 고용한다. 초반에는 그에게도 자세한 내용은 알려주지 않고 그저 '운반책'으로서 역할에 충실하기만 된다고 말한다.
정체를 감춘 채 런던과 모스크바를 오가게 된 그레빌 윈은 올레크 대령과 만나며 점차 그와 인간적인 관계를 맺어나간다. 그들의 만남이 길어지면서 소련 국가보안위원회 KGB의 의심 역시 점차 커져간다.
외화 '더 스파이'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TCO㈜더콘텐츠온 제공
영화는 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1960년대에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소련군 총참모부 산하 군사정보국 소속 올레크 펜코프스키 대령은 군사, 정치 등 5천여 건에 달하는 기밀자료를 미국에 건넨다. 그중 하나는 우리가 '쿠바 미사일 위기'로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이처럼 영화는 냉전시대 핵전쟁 위기라는 역사적 사건의 순간과 그 사이를 관통하는 첩보 스토리가 관객들을 긴장과 서스펜스로 몰아넣는다.
물론 스파이물 특유의 긴장감이 영화 내내 몰아치는 것은 아니다. 부분적으로 약간의 느슨함이 있다. 또한 이미 모두가 아는 결말을 향해 이야기가 진행되기에 어쩌면 사건 자체에 대한 긴장감은 떨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약점들을 잘 짜인 각본과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로 극복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을 유지하도록 만든다.
어느 정도 느슨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어쩌면 영화가 조명하려는 것이 흔히 흥미롭게 생각하고 접근하는 '첩보' 그 자체가 아닌 '인간'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여타 첩보물이 치밀한 두뇌 싸움 혹은 스케일 큰 액션을 보여줬다면, '더 스파이'는 인간적인 면에 집중한 첩보물이다.
외화 '더 스파이'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TCO㈜더콘텐츠온 제공
'더 스파이'의 원제는 'The Courier', 즉 운반책이다. 첩보 활동도 중요하지만 영화는 운반책 역할을 맡게 된 평범한 시민 그레빌 윈에 초점을 맞춘다.
그레빌은 어쩌다 보니 세계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요한 기밀을 운반하는 중책을 맡는다. 사실상 강요에 의해 떠맡게 된 일이지만, 올레크 대령과의 만남이 길어지며 점차 용기를 갖는다. 이는 올레크 대령과의 우정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서 비롯된다.
그레빌이 여정에서 만난 올레크 대령은 양심과 인류애로 인해 기밀을 적대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 넘긴 스파이다. 그 이전에 평범한 가장이기도 하다. 어느새 그레빌도 올레크 대령처럼 자신의 가족, 그 가족의 세계가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진 고문과 옥살이도 견뎌낸다.
첩보 과정보다 더 빛나는 것은 바로 그레빌과 올레크 대령의 인간적인 면모와 인류애, 그리고 우정이다. 역사적 사건 속 인물들이 마치 현실에 발 디딘 것처럼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배우들 덕분이다. 그들은 스크린 속에서 마치 1960년대 냉전을 가로지르는 인물들처럼 보인다.
외화 '더 스파이' 스틸컷. ㈜제이앤씨미디어그룹·TCO㈜더콘텐츠온 제공
특히 '더 스파이'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가 이끄는 작품이다. 평범한 사업가에서 스파이가 되어가는 그레빌 윈의 복잡한 내면과 불안한 심리, 개인과 가족, 올레크와의 우정, 역사적 위기 앞에서 고뇌하고 흔들리지만, 결국 용기를 내는 모든 모습을 담아낸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를 통해 마침표를 찍는 영화다.
때때로 클로즈업을 통해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얼굴을 담아내며 그가 느끼는 감정을 세세하게 전하며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의심해야 하는 냉전의 한복판에서 그레빌과 올레크 대령을 마치 감시하듯, 새카만 밤 간간히 켜진 가로등 불빛이 비치는 길 끝에 선 두 사람을 비추는 장면에서는 1960년대의 긴장이 느껴진다. 이처럼 카메라 역시 냉혹한 시대의 결을 스크린에 살려낸다.
시대의 큰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국가라는 거대 권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변화와 새로운 흐름을 끌어내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용기임을 그레빌과 올레크 대령을 통해 엿보게 된다.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살고자 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잊지 않는 이들이 용기를 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미닉 쿡 감독은 전작 '체실 비치에서'처럼 이번 작품에서도 각 인물의 감정과 심리를 세세하게 포착해냈다. 감독의 연출에 배우들의 명연기가 만나 1960년대 냉전시대가 2021년 스크린에 되살아났다.
111분 상영, 4월 28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더 스파이' 포스터. ㈜제이앤씨미디어그룹·TCO㈜더콘텐츠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