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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봉오동 전투' 찍으며 외로웠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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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진, '봉오동 전투' 찍으며 외로웠던 순간

    [노컷 인터뷰] '봉오동 전투' 황해철 역 유해진 ①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봉오동 전투' 황해철 역 배우 유해진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사진=쇼박스 제공)

     

    영화의 맛을 살리는 조연뿐 아니라 극의 중심에 서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연으로도 활약을 보여준 유해진의 최근 2년 동안의 필모그래피는 흥미롭다.

    2017년 이후 개봉작 중 한국 근현대사를 담은 시대극이 절반을 넘기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 '1987', '말모이', '봉오동 전투'. 본인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으로 관객들을 찾게 됐다.

    영화 개봉 일주일 전이었던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해진은 자신의 작품 선택은 '끌림'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한일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 개봉하는 '봉오동 전투'(감독 원신연)에 대해서도 '사명감'이나 '책임감'이라는 말을 쓰기를 조심스러워했다.

    올해가 3·1 운동-임시정부 100주년인 만큼,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애쓴 순국선열을 기억하자는 메시지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 "저는 그냥 연기자예요"

    '봉오동 전투'의 언론 시사회는 지난 29일 열렸다. 영화를 어떻게 봤냐고 물으니 유해진은 "왜 이렇게 되게 오래전 같지?"라고 반문해 인터뷰 초입부터 웃음을 안겼다.

    5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해 왔어도, 시사회는 늘 떨린다는 유해진. 이번 '봉오동 전투' 시사는 "진짜 걱정 많이 하면서" 봤다고 말했다.

    유해진은 "근데 늘 전 이런 마음이다. 왜냐하면 기자간담회(언론 시사회) 때 대부분 (영화를) 처음 보기 때문이다. 저는 기술 시사 안 가니까 그때 처음 보는데 그래서 더 긴장됐다"라고 전했다.

    긴장하고 걱정하며 영화를 봤으나, 다 보고 나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그려졌다는 느낌이 온 덕이다.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 외의 것이 더 강조되면 어떡하나 했어요. 이를테면, 음… '봉오동 전투' 하면 역사적으로 알려졌던 분들 외의 희생자들, 많은 독립군을 그린 영화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분들 중 한 사람 역할을 하는 거고요. 그분들의 희생이 있어서 봉오동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게 그려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뭐 물론 상업영화니까 액션이나 이런 볼거리가 없을 순 없겠지만 그런 게 주가 되면 안 될 텐데 했어요. (영화를) 보고 났더니 '봉오동 전투 액션 기가 막힌다!' 이렇게만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겠는데 볼거리는 없어' 이러는 것도 사실 문제인 것 같고… 그래서 그 '적당히'가 중요한 것 같은데 제 생각에는 적당히 버무려져 있지 않나 싶었어요.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봉오동 전투'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봉오동 전투'라는 작품에 참여하게 된 것에 관해서도 유해진의 답은 신중했다. 그는 "아까 어떤 기사에서 '사명감'이라고 나왔던 것 같은데, 그건 너무 거창한 것 같다. 그래서 아까는 책임감이란 말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임시정부 100주년이지 않나. 그런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걸 되짚어보는 작품으로 잘 그려졌으면 좋겠다는 거지, 사명감 책임감 이러면 제가 뭐 큰 것, 대단한 걸 하는 것처럼 그려지는 것 같아서 그것도 조심스럽더라"라고 전했다.

    유해진의 생각은 단순명료했다. 자신은 '연기자'라는 것. 기술 시사에 가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는 "제가 할 일은 현장에서 끝이라고 본다. 더 자꾸 신경 쓰면 그것도 좀 아닌 것 같아서… 되게 피곤해진다, 저 스스로가"라며 웃었다.

    "그냥 뭐 저는 연기자예요. 작품을 했는데 전달될 게 잘 전달돼서 보는 분들한테 좋은 효과를 일으킨다면 참 좋은 거죠. 그것밖에 좋은 게 없죠."

    ◇ 작품 선택의 기준은 '끌림'

    그래도 궁금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택시운전사'), 87년 민주항쟁(1987), 일제강점기('말모이', '봉오동 전투')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잇따라 출연한 것이 그저 '우연'인 것인지. 연기자이면서 현시대를 사는 시민으로서의 주관과 판단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유해진은 "전체적으로 봤을 땐 '끌림'이다. 어떤 얘기에 제가 끌리느냐 하는 거다. 묵직한 메시지와 어떤 재미, 그게 합쳐져서 '끌림'이라는 건데, 어떨 때는 가벼운 코미디에 끌린다. 요즘은 근현대사 작품을 많이 한다고들 하는데 (제겐) 한 작품으로서의 끌림인 것 같다"라고 답했다.

    유해진은 "어떤 사건이 있었을 때의 민초, 서민 역할을 했다. '택시운전사', '1987', '말모이'도 그렇고 이번 역할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사실 이야기에 대한 끌림이 있어서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 '1987', 올해 개봉한 '말모이' (사진=각 제작사 제공)

     

    오히려 유해진은 자신에게 주어진 캐릭터가 워낙 '좋아서' 본인이 과연 연기해도 되는지 부담될 때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 작품에서 대표적인 민초를 모델로 해서 제게 제안한 건데, 과연 내가 그분들한테 욕 안 먹을 수 있게 할 수 있을지… 어떨 때는 양심에 찔리기도 한다. 과연 내가 그런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가 싶어서"라고 전했다.

    이어, "어떨 때는 (그런 배역을) 제시한 감독님한테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서 작품을 못 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약간은 제 양심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양심에 찔릴 때가 많다"라며 웃어 보였다.

    ◇ 금이 가 있는 짱돌, 황해철을 만나다

    유해진은 '봉오동 전투'에서 전설적인 독립군 황해철 역을 맡았다. 평소에는 동료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고 너스레를 떨지만, 전투에 들어가면 항일대도를 들고 적군을 가차 없이 베어버리는 인물이다. 총은 못 쏘지만, 칼솜씨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유해진은 황해철 캐릭터를 보고 '바위'를 떠올렸다. "아주 그냥 짱돌인데, 아픈 금이 가 있는" 황해철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유해진은 "독립자금을 운반하려는 일을 하다가 장하(류준열 분)를 만나서 계획을 다시 변경하지 않나. 인간적인 면도 있다고 봤다. 투박한 짱돌 같은 모습이 좋았다"라고 부연했다.

    황해철은 무리를 이끄는 리더이기도 하다. 권위적이지는 않지만,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판단을 따르게 하는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보였다는 말에 유해진은 "(리더로서) 나쁘진 않다"라고 답했다.

    유해진은 마적 출신의 독립군 마병구(조우진 분), 정규군 이장하를 비롯해 함께하는 무리가 동생인 동시에 '동지'라고 바라봤다.

    그는 "수직 관계라기보다는 약간 수평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날 설 땐 날이 서지만, 가끔 장난치기도 하니까"라며 "늘 (동지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려!' 이랬을까? 밥 먹을 때도? 리더들은, 잘하는 분들은 그러지 않았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감독님들을 보면 조감독한테 하는 것도 다른 것 같다. 잘 이야기해서 밑의 사람들이 따르게 하는 것? 저도 처음에 (저희) 패거리에게 얘기를 많이 했다. 이 사람(황해철)이 맨날 눈에 불을 켜고 다니진 않았을 거라고"라며 "초반부터 맞춰갔는데, 그걸 (다른 배우들이) 너무 잘해줬다. 하나 불만 없이"라고 전했다.

    유해진은 '봉오동 전투'에서 항일대도를 휘두르는 독립군 황해철 역을 맡았다. (사진=㈜빅스톤픽쳐스, ㈜더블유픽처스 제공)

     

    ◇ 비바람 속에서 치열하게 찍었던 전투 장면

    '봉오동 전투'에는 다양한 전투 장면이 나온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배우와 제작진 모두 애쓴 덕에, 지금의 결과가 나왔다. 유해진은 "비바람이 막… 어흐~"라고 고개를 저으면서 "치열하게 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제주도 촬영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했던 까닭이다. 유해진의 표현에 따르면, 방금 전에 비바람 쳤다가 금세 해가 떴다. 말 그대로 정신이 없었다.

    유해진은 "그래도 너무 예쁘게 담기니까…"라고 웃으며 "지금까지 액션 때문에 가장 고생했던 영화가 '무사'였는데, ('봉오동 전투'를 찍으며) 오랜만에 그런 기분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고생하며 찍은 탓일까. 가장 기억에 남는 촬영 장소도 제주도 오름이었다. 거기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보고 시원함과 후련함을 느꼈다는 게 유해진의 설명이다.

    유해진은 '봉오동 전투'에서는 '액션'이라는 말을 안 쓴다고 말했다. 대신 '전투 장면'이나 '검술 할 때'라고 표현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액션이라고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화려함 같아서"라며 "덜 화려하고 기교가 없어야 하고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점을 상당히 강조했던 것 같다. 감독님의 그런 생각에 저도 너무 공감했고"라고 전했다.

    유해진은 "물론 제 느낌에는 전투 씬이 사실 되게 근사하게 나오긴 했다. 저희끼리는 '쾌도난마 씬'이라고 하는데, 그걸 안 끊고 쭉 가는 모습이 좀 외로워 보이기도 하더라. 유골 항아리가 깨진 분노를 갖고 싸우는 거라서 닥치는 대로 베고 되게 여럿을 죽이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밝혔다.

    황해철 역의 무술 대역은 정두홍 무술감독이 맡았다. 유해진은 "저는 진짜 너무 좋았다. 천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두홍이 형이 한다고 했을 때 '정말?' 했다. 너무 좋았다"라면서도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한 것도 많다"라고 답해 주변을 폭소케 했다.

    이어, "정두홍 감독님이니까 그런 게 나오는 것 같다. 기교 부리지 않으면서 힘을 꽉 주는.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고 했다"라며 "효과를 내는 건 그분(대역)들이 했지만, 그렇다 해도 제가 한 번은 (직접 연기)했다. 그냥 뒷짐 지고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라고 부연해 다시 한번 취재진에게 웃음을 안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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