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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에게 한석규란? "오래 랠리 하는 재미가 있는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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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식에게 한석규란? "오래 랠리 하는 재미가 있는 파트너"

    [노컷 인터뷰] '천문' 장영실 역 최민식 ②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장영실 역을 연기한 배우 최민식을 만났다.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내용이 나옵니다.

    '천문'(감독 허진호)에서 각각 장영실, 세종 역을 연기한 최민식과 한석규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동문이다.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부터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고 무대를 올리며 호흡을 맞춰 온 사이다.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지 30년이 훌쩍 지난 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 '척하면 척'하는 사이인 점은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됐다.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은 한석규와 연기하면서 "바로 본론으로, 바로 디테일로 들어가는 장점이 있더라"라고 밝혔다. 축적된 시간 덕분에 열 마디 할 걸 두세 마디만 해도 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안다고. 최민식은 '쉬리'(1999) 이후 20년 만에 한 작품에서 만난 한석규를 두고 "아주 오랫동안 랠리 하는 재미가 있는 파트너"라고 표현했다.

    ◇ 연주하듯 서로의 연기를 오롯이 받아내는 관계

    모처럼 한석규와 연기해 보니 어땠냐는 질문에 최민식은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대학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석규를 스무 살 때부터 봐서 작품도 여러 편 같이했고 같이 졸업했다고. 최민식은 "제가 감히 이건 하늘을 우러러 정말 석규하고 저하고 김상중하고, 정말 우리는 미팅할 시간도 없이 열심히 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사람들이 안 믿는다. 근데 그땐 (외모가) 괜찮았다, 저도 그렇고. 지금 같은 얼굴이 아니라 예뻤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학생극에 참여하다 보니 모든 걸 직접 해야 했다. 당시 선생님의 교육 방침이 그랬다. '연기 전공이니 연기만 한다, 이게 아니라 연극의 메커니즘을 통으로, 몸으로 다 체험해야 한다'는 주문 아래, 다 해냈다. 선배들 연극 셋업을 도왔고, 후배들 작품에서는 대도구, 소도구를 만들기도 했다. 최민식은 본인이 1학년 때 '소'라는 작품을 할 적에 연출을 맡은 선배가 장독대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불쑥 집에 찾아가 작은 장독을 들고나온 경험도 있었다며 웃었다.

    최민식은 "석규하고는 작품도 많이 했다. 그 시간이 작품 하는 데 도움이 되긴 되더라. 열 마디 굳이 다 안 해도 두세 마디 하면 다 알겠더라. 워낙 많은 작품을 두고 토론했던 게 있어서"라고 말했다. 최민식은 '천문'을 어떻게 봤냐고 물었을 때 한석규가 한 대답을 한석규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를 따라 하며 전했다. "좋아요, 형. 많이 비어있어요. 할 게 많아요, 우리가"

    한석규 말투를 천연덕스럽게 따라 해 폭소가 터진 가운데, 최민식은 "'비어 있는 게 많다'고 하면 대번에 (느낌이) 오지 않나. 우리가 그동안 세종과 장영실의 업적은 방송, 다큐멘터리, 책을 통해서도 봤다. (우리는) 업적을 이루기까지 두 사람의 관계에 집중해야겠다는 결론을 얻게 된 거다"라고 설명했다. 한석규와 자신은 '도입부'나 '예열 과정'이 필요 없기에 "바로 본론으로, 디테일로 들어가는 장점이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런 비유를 하고 싶어요. 탁구 치면 서브를 넣잖아요. 리시브해서 넘어오죠, 우리 쪽 네트로. 그게 어떨 땐 스핀으로, 어떨 땐 직구로 넘어오는데 그 랠리를 하는 맛이 있어요. 장시간 (촬영에) 막 지쳐가면서도 탁-탁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그 재미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스매싱을 했을 때 그쪽에서 못 받는다든지, 그쪽 스매싱을 제가 미처 못 받든지 하면 안 되는데 (한석규하고는) 아주 오랫동안 랠리 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그런 파트너였어요."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선후배로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배우 최민식과 한석규. 최민식은 한석규에 관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이라고 밝혔다.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핑퐁 게임을 하는 즐거움을 느낀 지점을 구체적으로 묻자 최민식은 "전반적으로 그런 걸 느끼긴 했는데 후반부에 제가 옥사에 있다가 이천 장군(김홍파 분)이 저를 끄집어내서 전하한테 가지 않나. 나중에 서로 울면서 부둥켜안는 장면이 있는데 지문에는 '운다' 이런 게 없었다"라고 답했다. 연기하다가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왔는데, 자기가 우니 한석규도 울었다고 부연했다.

    최민식은 "세종도 여태까지 켜켜이 쌓아온 장영실에 대한 마음이 있지 않았겠나. 세종에 대한 (영실의) 애정, 연민, 애틋함이 저도 모르게 나오니까 바로 석규가 울고, 둘이 부둥켜안고 울게 된 거다. '왜 그런 어려운 길을 가려 하십니까?' 하니,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리야. 자네 같은 벗이 있는데' 하지 않나. 그게 호흡인 거다. 여기서 왜 울지? 울라는 소리 없는데? 라고 하면 아주 피곤해지는 것"이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그러면서 "뭐랄까 같이 연주하듯, 군소리 안 하고 그걸(연기를) 그대로 오롯이 받아내는 것, 그래서 리액션으로 돌려주고 같이 어우러지는 것, 이럴 때 아주 쾌감을 느낀다"라며 한석규는 그런 호흡이 가능한 파트너라고 치켜세웠다.

    작품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하다가 나온 아이디어가 반영된 장면도 있다. 영실을 근정전 앞으로 부른 세종이 별 얘기하다가 눕자고 하는 장면이다. 한석규가 "형, 우리 둘이 벌러덩 누워서 합시다"라고 했을 때 최민식은 "누워? 넌 왕이잖아. 내가 네 옆에 벌러덩 누웠다가 참수당하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고 들려줘 폭소가 나왔다.

    최민식은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회의를 한다며, 한석규의 그 제안을 듣자마자 대번에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형식과 권위를 타파하는 것도 세종의 한 모습이라는 것. 최민식은 "왕의 배려가 너무 감동적이지 않나. 거기서 조선의 간의를 만들라고 하고, 장영실은 반드시 그러겠다고 한다. 눕는 건 석규가 제안한 건데 너무 파격적이고 좋았다. 세종의 캐릭터를 한 방에 보여주니까"라고 부연했다.

    ◇ 캐릭터, 상황, 사건을 더 촘촘히 만드는 재미

    촬영 현장에 가기 전, 대본을 읽고 각자의 의견을 교환할 때 가장 재미있다는 최민식. "대본상에 묘사된 캐릭터, 상황, 사건들을 좀 더 촘촘히 한다고 할까. 아니면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이런 방향으로 갖고 가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나 하는 작업을 한다"라는 그는 "그 재미가 쏠쏠하고, 저는 그런 재미로 하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막상 현장에서 카메라 돌아갈 때는 찍기 바빠요. 빨리 진도 나가야 하고, 하루하루가 다 돈이고, 갖고 나간 분량은 그날 다 찍고 들어와야 해요. 옛말에 콘티를 많이 버리라는 말이 있어요. 필름을 버리지 말고 콘티를 많이 버리라고. 그만큼 테이블에서 온갖 시뮬레이션을 다 하는 거예요. 이렇게도 가 보고 저렇게도 가 보고. 요 과정이 재미있어요. 자유롭잖아요, 일단."

    최민식은 '천문: 하늘에 묻는다'로 허진호 감독과 처음 작업했다. (사진=㈜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테이블에서 막 얘기하던 게 결국엔 구체화되잖아요. 무수하게 날려버린 것도 많고 담아낸 것도 많았지만 요번 결과물은 이렇게 나온 거죠. '저 사이에 저걸 집어넣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만족해요. 재미있으면서 힘든 게 뭐냐면, 저희는 항상 비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얘기하는 게 다 관철되길 바라는 것도 말이 안 돼요. 남의 것을 담는 그릇을 요렇게 만들어 놓고 있어야 해요. 그게 참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타협점을 찾아서 구체화된 완성품을 볼 때 그 재미가 아주 쏠쏠해요."

    물론 최민식은 그 모든 토론 후 최종 결정권자가 감독임을 잊지 않는 사람이다. 허 감독과 처음 작업해 본 소감을 묻자, "천상 한량이다.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글깨나 읽었을, 느긋한 사람. 천상 한량"이라며 웃었다. 이어, "'8월의 크리스마스', '봄날은 간다'에서 보였듯,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따뜻하다. 참 섬세하고. 그러니까 (허 감독이 그린) 이런 사극의 세종-장영실 관계에도 동의한 것"이라고 답했다.

    '천문' 관객 반응에 관해 질문하자 최민식은 "일단 핸드폰을 안 보시는 것 같았다. 핸드폰 불빛이 안 보이는 건 좋지 않나"라며 "저도 영화를 많이 봤는데 그 공기가 있다. 관객들의 호흡이나 느낌이 있다. 영화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과연 이 사람들이 이야기에 같이 공감하면서 가고 있나, 했을 때 그러면 보람을 확 느낀다"라고 부연했다.

    1989년에 데뷔해 2019년 기준 데뷔 경력 30년을 맞은 최민식.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판 그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일까. 질문을 듣자마자 그는 "어렵다"라며 웃었다. 그러고는 "얼핏 생각나는 게 밥벌이다. 아주 일차원적이지만 먹고 사는 수단이 이것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또, 공부죠 공부. 다른 걸 할 수 없으니까. 저(에게)는 공부에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좀 뭐하지만, 저는 대중들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냥 저 스스로의 공부, 저 스스로 뻑이 가서, 제가 이 일에 미쳐서 그냥 하는데 그 행위를 관객분들이 보시고 때로 소통해요. 그러니까 (제가) 화자예요. 저는 이걸 이렇게 만들어서 '천문'이라는 영화에서 이렇게 표현해봤습니다, 하고 툭 던지는 거죠. 그쪽(관객)에서 답이 있을 거 아니에요. '난 그거 싫어' 하는 사람도 있죠. 제가 얘기한다고 다 100% 동의하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저는 이야기를 거는 사람이에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연기)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가공의 작품, 때론 역사 속 팩트를 가진 모든 이야기에서 살아있는 캐릭터 연기하면서 스스로 매번 배워요. 제가 미처 몰랐던 제 인생을. 이게 죽어야 끝나는 공부겠지만, 모르는 걸 자꾸 알아나가는, 저 스스로를 위한 하나의 행위고 몸짓이에요. 되게 이기적인 작업을 하는 거죠, 사실은. 근데 재미없을 때도 많고 힘들 때도 많고 이게 뭐가 밑도 끝도 없는 작업이고. 이를테면 신구 선생님처럼 40~50년 해 오신 분들도 같이 술자리에서 여쭤보면 이건 죽어야 끝나는 작업이라고 하세요. 그러니 딱 보니까 공부인 것 같아요. 공부하는 거죠.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계속 알아가고, 다 안 것 같았는데도 또 모르는 게 많이 보이면 그럼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고요." <끝>

    배우 최민식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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