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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B컷]'떼법'에 무기력한 法, 11년째 끝나지 않는 1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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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법정B컷]'떼법'에 무기력한 法, 11년째 끝나지 않는 1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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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 시위' 피고인들, 기피신청만 10번
    기피제도 개선, 적극적 소송지휘 없이 방관

    ※ 수사보다는 재판을, 법률가들의 자극적인 한 마디보다 법정 안의 공기를 읽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드립니다. '법정B컷'은 매일 쏟아지는 'A컷' 기사에 다 담지 못한 법정의 장면을 생생히 전달하는 공간입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중요한 재판, 모두가 주목하지만 누구도 포착하지 못한 재판의 하이라이트들을 충실히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주]

    2020.6.10.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공판 중
    D씨 "문을 폐쇄해가지고 찾느라고 아휴. 이 재판이 아주 사람을 골병 들인다 카이. 법이 잘못 한 것을 가지고 국민을 힘들게 하고 있어."
    재판부 "자 D피고인 오셨으니 다시…."

    D씨 "국가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해야지!"
    재판부 "판사가 바뀌어서 공판절차 갱신하고 있는데요. 피고인 생년월일이랑 직업이 어떻게 되나요."
    D씨 "48년 0월 0일. 나이 70넘어 놀고 있지 뭐. 원래 장사하는데 코로나 때문에 하지도 못한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0일 오후 3시 피고인 A·B·C·D에 대한 재판이 시작된 후 한참 지난 시각. 140㎝가 채 안되어 보이는 키에 깡마르고 허리가 굽은 여성(D씨)이 법정 문을 열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피고인석에 앉았습니다. 앞서 재판부에 언성을 높이고 있던 다른 피고인들은 D씨의 카랑카랑한 투덜거림에 반가운 듯 웃었습니다.

    햇수로 11년째, 만으로도 10년 3개월간 진행 중인 1심 형사재판의 한 장면입니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 법원은 할 수 있는 한 가장 신속하게 재판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피고인의 자유를 제한할 소지가 큰 형사재판은 더욱 그러할 텐데, 무려 11년이라니. 2010년 3월에 기소된 사건이 어쩌다 2020년 6월까지 계속되고 있는 걸까요.

    피고인 A·B·C·D의 혐의는 공무집행방해, 옥외광고물등관리법 위반, 명예훼손, 도로교통법 위반 등입니다. 2008년 9월부터 2010년 10월까지 3년간 주기적으로 대검찰청 정문 앞이나 서울중앙지검 서문 앞 인도에서 확성기를 매달고 매우 큰 소리로 가곡을 틀어놓고 시위를 했습니다. '특정 대법관이 법무부 장관과의 학연으로 A씨 사건의 증거를 조작했다'는 식으로 사법기관의 잘못된 수사·판결로 피해를 봤다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습니다.

    서초동 법원·검찰청 인근을 지나가본 분들이라면 한번 쯤 보았을 풍경입니다. 지금도 이 일대에서는 매일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당시 검찰은 이들이 한번 집회를 시작하면 하루 종일 3회 이상, 1회당 1시간 이상 70데시벨 이상의 '음향폭력'을 행했다고 기소했습니다.

    공권력에 맞설 방법을 알지 못하는 소시민이 해당 기관 앞에서 시위하는 것을 모두 불법이라 하거나 부담스럽게만 여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날 법정에서도 '음향폭력'에 준하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B씨는 재판이 시작하기 전부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10년째 재판을 하는 게 말이나 되냐", "도대체 어느 나라가 이따위로 하냐" 등 간간히 욕설도 섞여있었습니다. 법원 경위들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사이 B씨만큼 지긋한 연배의 경위가 나서서 "형님이 참으시라"며 가까스로 진정시켰습니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자 B씨는 좀 전까지 흥분한 상태와 달리 각종 법률용어를 익숙하게 쓰며 본인의 변론을 직접 진행했습니다.

    2020.6.12.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 공판 중
    B씨 "…법률에 따르면 결론적으로 폭행 및 협박을 해야 공무집행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검찰 증거목록에 있는 집회 신고서와 접수증을 제시합니다.(합법적 집회였다는 취지) 오히려 헌법에서 보장된 집회를 하는데 검사가 직권을 남용해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 상황입니다"

    (사진=연합뉴스)
    법정 안에서는 '고성방가 시위'가 통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B씨는 법정 안 소란으로 2010년 5월 한 차례 감치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피고인들이 내린 결정은 재판부 기피였습니다. A·B·C씨가 돌아가며 무려 10차례에 걸쳐 재판부 '기피'와 '기피 기각결정에 대한 즉시항고', '재항고'(대법원)를 진행한 겁니다.

    형사소송법 제18조는 법관이 피고인과 친족 관계이거나 사건 관계가 있어 불공평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는 때 검사나 피고인이 법관을 기피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기피신청이 들어오면 결정이 나올 때까지 소송 진행이 정지됩니다.

    이들의 경우에도 기피신청이 접수될 때마다 길게는 반년 이상 재판이 멈췄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두 기각됐지만, 신청이 들어올 때마다 서울중앙지법의 형사합의 재판부 한 곳이 반복적으로 기피신청 사유가 타당한지 심리해야 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중앙지법 판사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사건"이라며 "기피신청을 몇 번까지 할 수 있다는 제한이 없으니 피고인들을 막을 수도 없어서 판사들도 답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10년간 거쳐 간 담당 판사 수만 10명 가까이 되고, 공판도 이미 58회 열렸지만 매번 정기인사 때 새 판사가 다시 사건을 맡아 갱신절차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피신청이 일종의 '떼법'으로 이용되고 있는 겁니다.

    법원 역시 속수무책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 사법 불신이 커지며 재판 당사자들의 기피신청은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응책이 10년 이상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제도 외에 개별 판사들에 대해서도 '불편한 사건'에 대한 소송지휘를 다소 소극적으로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피고인들이 법원의 권위를 무시하기 일쑤였지만 고령이라는 점이 껄끄러웠을 것이고 그렇게 세간의 주목을 받는 사건도 아니니 이런 골치 아픈 사건이 자꾸자꾸 뒤로 밀렸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10번의 기피신청 중 담당 재판부인 형사4단독 판사가 '소송 지연 목적의 기피'로 보고 직접 기각결정을 내린 경우는 3번뿐이었습니다.

    '소송 지연 목적의 기피'여서 담당판사가 직접 기각한 경우는 신청인이 항고를 하더라도 재판을 계속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적극적으로 변론절차를 마무리 짓고 선고까지 가려고 노력한 담당 판사가 없었던 겁니다.

    재판, 특히 개인의 자유까지 구속시킬 수 있는 형사 재판이 신중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대원칙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피고인들이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고의적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음이 분명한데도 제도의 미비만을 내세우며 10년 가까이 1심조차 마무리 짓지 않는 법원의 무사안일한 태도는 아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사법 시스템 역시 국민들의 혈세로 운영되고 있기에 신중함 만큼이나 효율성을 중시 여겨야 한다는 점은 잊은 것일까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4단독을 거쳐간 10명의 판사 중 누군가 책임감을 갖고 이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면 후임 판사는 보다 더 시급한 사건들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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