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마크. 자료사진
세월호 참사 당시 화물 고박 부실 책임이 있는 항만물류업체 '우련통운'이 손해배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산을 빼돌린다는 의혹이 증폭되면서 관련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수사기관은 이를 방관하는 분위기다.
기업의 책임 회피에 빌미를 줬다는 지적을 받은 법무부와 해양수산부 세월호후속대책추진단 등 관계부처가 대책을 마련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해당 기업이 현직 국회의원의 가족회사인 데다 현 정부의 책임도 있어 수사에 부담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현 정부의 과오‧현직 국회의원 연관 기업 수사에 부담 작용한 듯
연합뉴스
19일 인천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우련통운 자산 빼돌리기 의혹과 관련해 고소 또는 고발이 접수될 경우 수사를 개시할 방침이다. 해당 의혹과 관련한 자료를 제공하는 이가 있을 경우에만 수사하겠다는 의미다. 매우 소극적인 대응이다.
통상적으로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수사당국의 본래 역할과 거리가 먼 행보다.
경찰이 이같은 행보를 선택한 이유는 지난 18일 인천 지역 26개 노동‧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모인 인천지역연대가 낸 논평에서 찾을 수 있다.
인천지역연대는 논평을 통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빠른 피해 회복은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이 세운 '촛불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라며 "7년이 지나도록 진상규명이 제자리고 책임을 져야할 자들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비판했다.
즉 해당 의혹의 가장 큰 책임은 그동안 세월호 참사 구상권 청구 소송을 방치했던 현 정부에 있어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수사다.
의혹이 제기된 기업이 현직 국회의원의 가족회사라는 점도 수사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련통운은 배준영(국민의힘‧인천 옹진군강화군중구) 국회의원의 동생이 대표이사를, 아버지가 회사 지분의 90% 이상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배 의원도 2005~2007년 이 회사의 사내이사를 지냈다.
우련통운의 자산을 빼돌리는 데 이용된 업체로 지목된 우련TLS 역시 배 의원의 동생이 대표이사이자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경찰 입장에서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져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부담이 크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현 정부가 세월호 참사 후속조치에 소홀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사실이 아니라면 현직 야당 국회의원의 가족회사를 수사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인천경찰청 최주원 수사부장은 해당 수사에 대해 "(하명수사와 같은) 위에서 수사 지시가 내려와 수사를 개시하기에는 적절치 않다"며 "고발인과 피고발인이 확실히 구분되고 구체적인 증거들이 있는 상태에서 개시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6천 원대에 팔린 4만원 대 주식…"수사보다 수사 의지가 더 중요한 사건"
일각 타당한 의견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르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안은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우선 우리 정부는 우련통운을 상대로 2015년 세월호 참사 관련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아직 1심도 끝나지 않았다. 이 사이 우련통운의 ‘알짜배기’ 자산으로 평가받는 평택당진항만 주식회사의 우련통운 지분 전체가 2017년 우련TLS로 넘어갔다. 우련통운과 우련TLS의 대표이사는 동일 인물이다. 당시 해당 주식가격은 1주당 4만 원 이상으로 평가됐지만 우련통운은 이를 6천 원 대에 넘겼다.
의혹의 핵심은 우련통운의 평택당진항만 지분이 왜 헐값에 우련TLS로 넘어갔느냐에 있다. 이 행위는 사회적으로 세월호 참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우련통운 기업 내부에서 보면 4만 원대에 팔 수 있는 주식을 6천원 대에 팔았으니 손해를 입은 셈이다.
당시 주식 매입을 통해 우련TLS는 150억 원 상당의 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배임액이 50억원 이상이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형에 처해지는 중범죄이다.
이 때문에 수사는 우련통운 대표이사의 배임 혐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해당 주식 거래를 분석한 참여연대와 경기도는 이 의혹을 아버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주식을 자식들이 헐값에 매입 상속해 수백억 원의 차익을 남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사건'과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우련통운의 최대주주가 대표이사의 아버지고 그 주식을 넘겨받은 회사가 자식의 회사이기 때문이다.
주식 매각 과정도 유사해 수사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이상훈 변호사는 해당 의혹에 대해 "이 정도 사안을 밝혀내는 수사는 이미 과거 여러 차례 있었다"며 "수사 자체가 어렵기보다 수사당국이 수사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인천지역연대도 논평을 통해 "수사당국은 제기된 의혹에 적극적으로 수사해야 한다"며 "관련 정부부처도 (구상권 청구 소송) 재판 결과만 기다릴 게 아니라 모든 조치를 선제적으로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이 이번 사안에 대해 뒷짐을 지고 있는 건 현 정부가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에 의지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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