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北 음악정치의 변화 '이제 짧은 치마는 없다'

  • 0
  • 폰트사이즈
    - +
    인쇄
  • 요약


통일/북한

    北 음악정치의 변화 '이제 짧은 치마는 없다'

    핵심요약

    北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 이후 한 달째 '음악정치' 진행, 이선희와 'J에게' 부른 김옥주가 신곡 소개하고 뮤직비디오도 공개, "노래 따라 배우기, 노래 함께 부르기를 통해 인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충성심을 고취하는 감성정치"로 해석, 파격적인 의상과 율동의 모란봉 악단과는 대조, 3중고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 전반의 보수화 반영

    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북한 여성 관객들이 공연을 관람하며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쓴 북한 여성 관객들이 공연을 관람하며 춤을 추고 있다. 연합뉴스

    "어디서나 울리고 누구나 부른다. 일손을 잡으면서도 부르고 짤막한 휴식 참에도 부르며 깊은 밤, 이른 아침 불 밝은 집집의 창가들에서도 울려 나온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맑은 소리로 가슴에 넘치는 환희를 노래하고(후략)" (노동신문 13일 1면 전면 게재 기사 중에서)
     
    북한 전역에서 모든 인민들이 듣고 부른다고 한다. 신곡 '우리 어머니'와 '그 정을 따르네' 말이다. 벌써 한 달째이다. 
     
    노래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이른바 '음악정치'이다. 제재와 코로나19, 무역단절 등 위기 속에 고위층을 상대로 한 간부혁명과 인민 중심의 비사회주의 투쟁을 본격화면서도, 한편에서는 음악을 통해 충성의 마음을 만들어내고 체제 결속을 꾀하는 감성통치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시작은 지난 달 18일 3차 당 전원회의 폐막 이후 열린 국무위원회 연주단 공연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관람한 이 공연에서 국무위원회연주단 성악배우 김옥주가 신곡 '우리 어머니'와 '그 정을 따르네'를 부르며 첫 소개를 했다. 김옥주는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방남 공연과 평양 답방공연 때 가수 이선희와 'J에게'를 불러 우리에게도 낯익은 가수이다. 
     
    지난달 국무위원회연주단 공연에서 열창하는 김옥주. 조선중앙TV 화면 캡처지난달 국무위원회연주단 공연에서 열창하는 김옥주.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신곡의 가사 내용은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모진 풍파를 다 막아주며 보살펴 주시는 원수님. 뜨거운 정이 뜨거운 정이 사무쳐와 눈굽젓네", "이 세상에 우리 어머니처럼 자식 많은 어머니 어데 있던가…어머니,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 조선노동당이여" 등등처럼 수령 김정은과 노동당을 중심으로 한 단결과 충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공연에서는 아울러 남성 가수를 대표하는 김태룡이 공연 시작 곡으로 북한의 '애국가'를 불러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특히 1시간 넘는 공연 2부가 군가 메들리와 8차 당 대회 열병식 등장곡 등으로 채워져 눈길을 끌었다. 
     
    두 노래의 가사와 악보는 이후 23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실렸고, 26일에는 청진철도국과 김정숙 평양제사공장, 은파군 대청리 등 이 노래에 대한 각계각층의 반향이 신문에 게재됐다. 특히 7월 13일에는 이 두 노래의 의미를 해설하는 9천여자의 기사가 노동신문 1면 전면에 실렸다. 
     
    신문만이 아니라 조선중앙TV를 통해서도 적극적인 선전이 이뤄졌다. 1부와 2부로 나눠 2시간 넘게 진행된 국무위원회연주단의 공연이 TV를 통해 녹화 방송됐고, 같은 공연이 지난 2일부터 삼지연 극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두 노래의 음악편집물, 즉 뮤직 비디오도 만들어져 연일 방송을 타고 있다. '어디서나 울리고 누구나 부른다', '어제도 부르고 오늘도 부른다'는 노동신문 기사가 과장은 아닌 것이다. 
     
    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북한 인민들이 같은 노래를 함께 듣고 부름으로써 위로부터 인민들의 마음을 주조하는 감성정치"라며, "국가가 체제 결속을 위해 인민들의 다양한 감성을 단순화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사실 노동신문과 TV방송 등 모든 매체를 동원해 노래를 띄우고, 가정과 직업 현장 등 북한 전역에서 '노래 부르기' 열풍을 이어가는 것은 앞서도 많이 본 장면이다. 바로 10년 전 모란봉 악단이 그랬다. 
     
    북한 국무위원회연주단 공연이 2일 삼지연극장에서 성황리에 시작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북한 국무위원회연주단 공연이 2일 삼지연극장에서 성황리에 시작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캡처

    2012년 김정은의 권력승계 이후 결성된 모란봉 악단의 신곡은 노동신문에 실렸고, 북한 전역에서 노래 따라 배우기 운동이 벌어졌다. 한 달 동안 연속으로 평양 공연을 하고 전국 순회 공연은 물론 군부대 화선 공연까지 이어졌다. 걸 그룹을 연상시키는 짧은 치마(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성가수들이 보여준 파격적인 율동과 노래는 김정은의 젊은 지도자 이미지, 이전의 북한과는 다른 새 시대 이미지를 표상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동아대 강동완 교수는 "당시 모란봉 악단이 김정은의 젊은 지도자 이미지, 세계적 추세를 반영한 새로움 등을 주제로 한 공연 활동을 이어가고, 북한의 전 단위 조직에서 모란봉 악단의 창조기풍을 따라 배우라는 지시가 있었다"며, "모란봉 악단 단원 중 일부는 당시 20대의 나이에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신곡을 소개한 김옥주는 30대의 나이에 이례적으로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고, 국무위원회연주단 단원 중 일부는 국가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모란봉악단과 국무위원회연주단의 공연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일단 김옥주가 등장한 신곡 뮤직 비디오는 인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목적 하에 매우 세련된 방식이 도입됐다. 과거 북한의 노래 화면이 대개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하거나 선전성이 너무 강해 조잡스런 느낌을 줬다면, 이번 비디오는 수령에 대한 충성과 단결을 주제로 하면서도 녹음실에서 오디오 믹싱을 하는 장면, 연주단원들이 자연스럽게 웃고 대화하는 장면 등 드라마적 요소를 가미하고, 영상의 구도와 색감도 상당히 고급스런 연출을 했다. 
     
    그러나 모란봉 악단처럼 파격적인 의상과 역동적인 율동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김옥주와 김태룡 등 연주단 대표가수들의 의상은 롱 드레스와 양복 등으로 전반적으로 보수화된 양상이다. 이는 3중고의 위기 극복을 위해 반동문화 배격법 등 사상통제를 강화하면서 고난의 행군까지 거론해야 하는 현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세대의 옷 차림과 머리 스타일, 말투 등 모든 영역에서 이른바 '외부 날라리 풍'을 배격하고 사회주의 생활양식을 따를 것을 촉구하는 마당이다.
     
    강동완 교수는 "8차 당 대회에서 제시한 5개년 경제계획 과업의 관철을 강조하는 지금은 모란봉 악단이 아닌 국무위원회 연주단의 공연처럼 대형공연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오케스트라 중심의 장엄한 연주곡과 대형공연을 통해 사상 강화와 충성심 고취를 도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과정에서 지난 2016년 5월 7차 당 대회 때까지만 해도 정력적 활동을 했던 모란봉 악단은 어느 순간부터 공연활동을 멈추고 자취를 감췄다. 결국 북한에서 필요로 하는 모란봉 악단의 쓰임이 다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변화에 대해 김혁 농어촌공사 전임연구원은 "북한이 경제적 위기 극복을 위해 음악과 문학 등 문화 영역에서 과거로 회귀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라며, "그렇다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고 지난 10년 간 시장화 속에 변화된 인민들의 눈높이를 반영해 매우 절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특히 "최근 음악정치의 시발이 된 국무위원회연주단 공연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김옥주가 부른 신곡도 신곡이지만 2시간 공연 중 절반을 군가와 8차 당 대회 열병식 등장곡으로 채운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선군정치 대신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정치노선으로 천명하면서도, 현실에서는 다시 군대를 앞세울 수밖에 없는 엄혹한 위기 상황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