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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된 쿠팡맨이 든 손팻말은 '동료에게 휴식시간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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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된 쿠팡맨이 든 손팻말은 '동료에게 휴식시간을'이었다

    쿠팡물류센터노조-민길수 중부고용노동청장 다음주 중 면담
    '무더위 실내노동자 휴식시간 의무화' 관련 논의 예정
    "밤낮 30도 넘는 작업환경에 노동자 쓰려져도 회사는 잠잠…휴식시간이라도"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인천 서구 쿠팡 물류4센터 앞에서 집회를 하는 모습.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제공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인천 서구 쿠팡 물류4센터 앞에서 집회를 하는 모습.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제공
    "폭염대책 마련하고 휴게시간 보장하라."
     
    12일 오후 인천 서구 쿠팡 인천1센터 앞에서 시위하는 쿠팡 노동자들이 내건 팻말 문구다. 이날 시위에 나선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정성용(32) 쿠팡인천센터 분회장은 "당장 누군가 일하다가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곳에서 동료들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분회장은 1달여 전 계약만료로 해고됐다. 통상 2년 근무한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야 하지만 회사는 그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허락하지 않았다. 회사는 노조 가입이 재계약하지 않은 이유는 아니라고 했지만 중도 퇴사자가 많아 365일 구인광고를 내는 쿠팡물류센터 사정을 감안하면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게 회사 동료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 분회장이 매일 자신의 일터를 향해 든 팻말은 '부당해고 복직'이 아니라 '폭염대책을 마련해 달라'였다. 동료들의 노동 조건을 빨리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종일 실내온도 30도 넘지만 주어진 휴식시간은 20분이 전부"


    정 분회장은 "야간노동이 지배하는 전국의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찌는 더위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창고건물을 개조해 물류센터를 지어 통풍이 잘 안되면서 오히려 야간 실내온도가 낮 시간대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쿠팡물류센터 노조는 최근 매일 물류센터 내부의 온도를 측정해 기록하고 있다. 실제 폭우가 전국을 강타했던 지난 10일 오후 5시쯤 쿠팡 인천 물류4센터의 실내온도는 34도 습도는 49%를 기록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는 의미다. 비가 와도 더위는 사그라들지 않는다. 지난 장마 기간 내내 쿠팡물류센터 실내온도는 30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인천에는 쿠팡물류센터가 1·4·5·11·13·15·17센터 등 7곳이 있다. 센터 규모에 따라 적게는 600명, 많게는 2200명이 근무한다. 이들이 밤낮 2교대로 일하면서 무더위에 버틸 수 있도록 회사가 제공한 건 9시간의 근무시간 중 20분간의 휴식시간이 전부다. 휴게공간도 일하는 공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다녀오면 휴게시간이 끝나버리기 일쑤다.
     
    이같은 노동조건에 쿠팡 동탄센터에서는 지난달에만 3명의 노동자가 온열질환 즉 더위를 먹고 쓰러져 119구급차를 탔다.
     

    지난 10일 오후 5시 쿠팡 인천물류4센터 내 온도습도계(왼쪽)와 11일 자정 쿠팡 고양물류센터 내 설치된 온도습도계. 모두 온도는 34도, 습도는 40도를 넘어섰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제공지난 10일 오후 5시 쿠팡 인천물류4센터 내 온도습도계(왼쪽)와 11일 자정 쿠팡 고양물류센터 내 설치된 온도습도계. 모두 온도는 34도, 습도는 40도를 넘어섰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제공

    노동부장관이 나서 무더위 대책 마련 요구했지만 회사는 '잠잠'


    정 분회장을 비롯한 노조가 사측에 무더위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건 고용노동부가 폭염 때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휴식시간 제공을 의무화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지난 10일 개정·시행했기 때문이다.
     
    기존 규칙은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에만 '적절한 휴식 등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할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과했다. 그러나 개정된 규칙은 '옥외장소' 뿐만 아니라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질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확대했다. 즉 실내에서도 역사병 등 질병 발생 우려가 있다면 폭염 예방조치를 해야한다. 이를 어기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고용노동부는 '적절한 휴식' 기준에 대해서는 규칙 개정 이전 옥외 작업자들을 대상으로 사용되던 '열사병 예방가이드'를 참조해 "체감온도 33℃ 이상의 폭염에서는 노동자가 매 시간 10~15분의 휴식을 취하는 등 노사협의를 통해 적절한 휴게시간을 정하라"고 안내했다. 냉방장치 설치는 권고사항이다.
     
    이에 쿠팡노조는 사측에 무더위 대책을 협의하자고 수차례 교섭을 요청했지만 회사는 아무 응답도 없다. 쿠팡 측은 "규칙 개정 이전부터 체감온도가 높으면 유급휴게시간을 추가 부여하고, 사업장별로 상황에 따라 냉방기기 수만대를 설치했다"는 입장이지만 노동자들은 냉방기기를 구경도 하지 못했다고 항변한다.
     
    노조는 물류센터 노동자의 폭염 대책 등을 요구하며 잠실 쿠팡 본사 앞에서 지난 6월 23일부터 50일째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각 물류센터 앞에서는 출근 시간대인 오전 7시와 오후 5시 두 차례 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이정식 고용노동부장관이 쿠팡 물류센터를 직접 방문해 열사병 예방수칙 이행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기도 했다.
     
    규칙이 개정·시행되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회사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대화 의지도 보이지 않자 노조는 지난 10일 오전 중부고용노동청을 기습 방문했다. 전국 170여개 쿠팡물류센터 가운데 대부분이 경기·인천 지역에 집중돼 중부고용노동청 관할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민길수 중부고용노동청장의 취임일이었다.
     
    민 청장은 다음주 중 쿠팡물류센터 노조와 간담회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간담회 날짜는 아직 미정이다. 정 분회장은 "회사가 나서지 않으니 감독기관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기 위해 면담을 요청했다"며 "동료들의 건강과 생명을 잃지 않도록 민 청장이 관심을 갖고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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