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5·18 피해자 일부, 수개월간의 불법 구금 피해 인정 못받아



대구

    5·18 피해자 일부, 수개월간의 불법 구금 피해 인정 못받아

    피해자 9명 형사보상 청구 신청 준비
    불법 구금으로 인한 국가의 기본권 침해 인정과 보상 요구

    5.18 기념재단 제공5.18 기념재단 제공
    최근 5·18 민주화운동의 실상을 대구에 알렸다가 실형을 선고받은 '두레 사건' 피해자 김영석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받고 형사보상까지 받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던 5·18 유공자가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까지 받아낼 수 있게 된 사례로,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와 달리 일부 5·18 피해자들은 장기간 불법 구금을 당하고도 아직까지 그 사실을 인정받거나 관련 보상을 받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80년 5월. 친구 집에 있던 A씨는 급하게 자신을 찾는 군인들의 손에 끌려 군 검찰로 향했다. '잠시 조사할 것이 있다'던 군인들의 말과 달리 박찬수(63)씨는 약 103일간 그곳에 붙잡혀 있었다.

    박씨는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엎드려서 바닥을 기었다고 했다. 고개를 들면 몽둥이로 때린 기억이 생생하다고 전했다. 또 폭행을 당하기 일쑤였고 원산폭격 등 각종 가혹행위가 이어졌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조사 받는 과정에서 책으로 맞다가 청각 장애까지 생겼다.

    박씨는 당시 자신은 5·18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보다 1년 앞선 1979년 10월 계명대학교에서 박정희 퇴진 집회를 주도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 직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박씨는 외부 활동을 중단했다. 박씨는 "제가 관여하지 않았다 해도 위험 인물 리스트에 있었기 때문에 군부에서 사전 위험 요소를 차단하기 위해 예비적으로 다 잡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무려 103일간 모진 고문을 당한 박씨. 하지만 박씨는 김영석씨와 달리 불법 구금에 대한 형사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다.

    재심이 진행돼 무죄 판결을 받거나 재기수사가 이뤄져야 그에 따른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박씨의 경우 두 가지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심 개시와 재기수사는 모두 기존 수사의 '결과'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즉 이미 재판에서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검찰이 수사 끝에 불기소했거나 기소유예 처분을 한 자만 재심 또는 재기수사의 대상이 된다.

    박씨는 당시 검찰에서 공소를 제기했다가 결정을 번복해 공소를 기각하기로 한 사례다. 즉 수사를 받았지만 불기소나 기소유예 같은 수사의 결과를 받아보지는 못했다. 당연히 재판정까지도 갈 수 없었다.

    법무법인 맑은뜻의 김무락 변호사는 "현재 법제도상 이런 경우는 그동안 억울하게 구금 상태에서 수사 받은 부분에 대해 불복하거나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5.18 기념재단 제공5.18 기념재단 제공경찰에 끌려가 87일간 붙잡혀 있었던 최해룡(68)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시 계명대학교 4학년이었던 최씨는 서울에서 열린 대학생 대표 회의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최씨는 약 세 달 가까이 구금돼 있으면서 잦은 구타를 당했다. 최씨는 당시 폭행을 당한 기억이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최씨는 공소 제기 없이 87일 뒤 '훈방' 조치됐다. 실제로 그가 포고령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가 훈방됐다는 경찰의 사실확인원도 남아있다. 하지만 최씨 역시 정식 수사 결과를 받지는 못했다.

    최씨는 형사보상 절차가 까다로운 데 대한 불만도 있지만, 마치 자신에게 죄가 있지만 봐준다는 듯이 군부가 '훈방' 결정을 한 것에 문제를 제기했다. 훈방은 '일상생활에서 가벼운 죄를 범한 사람을 훈계하고 놓아준다'는 의미다.

    또 불법 구금을 당한 뒤 기소유예 판결을 받았지만, 본인에 대한 관련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형사보상 청구가 어려운 다른 피해자도 있다.

    김무락 변호사는 박씨와 최씨 등 피해자 9명의 의뢰로 형사보상 청구 신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들 모두 재심 또는 재기수사의 대상이 아니어서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례에 해당할 지는 불확실하다.

    김 변호사는 만약 이들이 형사보상을 못받을 경우 입법 미비를 지적하는 위헌법률심판 제청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들 중 일부는 5·18민주화 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한 차례 보상을 받았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진행 중인 이들도 있다. 하지만 김 변호사는 이번에 준비 중인 형사보상 청구는 특별법에 따른 보상, 손해배상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특별법에 따른 보상은 피해자들의 명예훼손과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생긴 장해에 대한 것이고 손해배상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것이다. 이번에 청구하려는 형사보상은 죄가 없는 사람을 불법적으로 장기간 구금한 '기본권 침해'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실제 보상액은 크지 않을 수 있으나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하는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