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영상]총탄 품은채 73년만에…아산 부역혐의 희생자들 세상 밖으로



대전

    [영상]총탄 품은채 73년만에…아산 부역혐의 희생자들 세상 밖으로

    2기 진실화해위 충남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첫 유해발굴 현장서 유해 40구 발견
    삐삐선으로 손과 발 묶인채 웅크린채로 숨져…유족들 "발견 장소 추모탑 등 건립해야"



    "아버지 얼굴 기억도 못하지만 70년을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부역혐의로 아버지를 잃은 김광욱(78)씨는 아산 성재산에서 부역혐의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김 씨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은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며 "성재산에서 유해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기쁘면서도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첫 유해 발굴지인 충남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에서 73년전 당시 집단학살 정황을 보여주는 온전한 형태의 유골과 유품이 28일 공개됐다.
     
    진실화해위가 공개한 충남 아산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에는 최소 40구의 유해가 확인됐다. 이들은 대부분 건장한 남성으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추정됐다.
     
    이번에 발견된 유해들은 1950년 10월 4일 온양경찰서 업무가 정상화되면서 좌익부역혐의 관련자와 그 가족들을 매일 밤 1~2차례에 걸쳐 40~50명씩 트럭에 실어 성재산 일대와 온양천변에서 학살한 다음 시신을 유기한 곳이다.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 인상준 기자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 인상준 기자
    40구의 유해는 폭 3m, 길이 14m의 방공호를 따라 빽빽한 상태로 드러나 방공호에서 집단 학살당한 것으로 발굴단은 추정했다.
     
    이날 공개된 현장에서는 온전한 상태로 누워있는 유골이 방공호에 매장된 채 자리하고 있었다. 손발이 전화선으로 묶인 이들은 그날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품어 온 듯 가슴과 머리 쪽에 파랗게 녹슨 탄피가 고스란히 얹혀 있었다. 대부분의 유해들은 무릎을 구부리고 앉은 자세로 놓여 있어 학살당한 후 좁은 방공호에 바로 매장된 것으로 보였다.
     
    유해 발굴 현장에서는 학살 도구로 사용한 A1소총 탄피 57개와 소총탄두 3개, 카빈 탄피 15개,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사용한 소총인 99식 소총 탄피 등도 다량 발굴됐다.
     
    유품으로는 단추와 벨트, 신발 99개가 발견됐으며 군용 전화선인 삐삐선 등이 다량 발견됐다.
     
    어머니 등 가족 9명이 부역혐의를 받아 학살된 맹억호 아산유족회장은 발굴된 유해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맹 회장은 "어머니를 포함해 9명의 식구들이 희생됐는데 이제 유골이 발견되면서 평생 불러보지 못한 엄마를 부둥켜 안고 엄마라고 불러보고 싶은 심정"이라며 "70년 동안 이렇게 파묻혀 있던 유해를 빛을 보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 마음과 말할 수 없는 심정이 북받쳐 올라온다"고 말했다.
     
    맹 회장은 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발견된 장소를 잘 보존할 수 있도록 추모공원이나 추모탑을 만들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하루빨리 유해 DNA감식을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 인상준 기자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 유해발굴 현장. 인상준 기자
    진실화해위는 지난해 5월 아산시와 아산유족회의 시굴조사 결과 유해 일부와 탄피가 확인되면서 발굴가능지역으로 선정하고 지난 7일부터 유해발굴을 진행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된 유해들은 세척 등을 통해 4월 중순까지 수습 작업을 하게 된다"며 "이어 인근 염치읍 백암리 새지기 2지점에서 유해발굴 작업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1기 진실화해위는 2009년 5월 '아산 부역혐의 희생사건'을 1950년 9월에서 11월 사이 온양경찰서 소속 경찰과 치안대가 지역주민들을 인민군 점령당시 부역혐의로 몰아 성재산 방공호와 수철리 금광굴, 염치리, 대동리 일대에서 집단 학살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참고인 진술에 따라 희생자는 800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