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거론한 이후 북·미간 기싸움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금주초 워싱턴에서 한·미·일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주재'하며 북한에 추가도발을 자제하라는 경고메시지를 보낼 태세이지만 북한은 오히려 4차 핵실험 가능성을 보다 강력히 시사하며 위협의 수위를 높여갈 조짐이다.
이 같은 기싸움은 4월의 민감한 정치·외교 일정과 맞물리며 한반도에 새로운 위기국면을 초래할 수 있다는 관망이 제기되고 있다.
오는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국무부에서 열리는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은 모처럼 3국이 북한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는 무대다.
관련 기사
특히 과거사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던 한국과 일본은 북핵을 고리로 다시 '안보적 결속'을 꾀하는 흐름이다. 한·일 6자회담 수석대표간 회동도 이런 맥락에서 열린다.
3국이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에 보낼 메시지는 지난달 25일 3국 정상회담의 연장선에 있다. 북한이 추가로 도발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기존보다 훨씬 강도높은 제재를 가하겠다는 내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황준국 신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6일(이하 현지시간) 방미 직후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에 대해 3국간 긴밀한 공조를 확인하고 도발을 저지하기 위한 대응책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일의 이 같은 공동대응이 어느 정도 대북 억지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리동일 북한 유엔대표부 차석대사는 지난 4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미국이 북한 정권 교체를 노리고 미사일과 비핵화, 인권 문제로 압박하면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다"고 일종의 '통첩성' 발언을 했다.
인권문제와 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의 강경대응을 명분삼아 사실상의 도발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물론 북한의 이 같은 도발 위협은 6자회담 재개 조건과 협상의 환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조성하려는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북한의 사전조치 이행을 강력히 주문해온 한·미·일이 북한의 위협에 '굴복'해 회담 재개의 문턱을 낮출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번 달에는 양측의 기싸움을 촉발할 정치·외교 이벤트들이 줄줄이 예정돼있어 정세의 불안정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4월15일은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인데다 열흘 뒤인 25일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돼있다. 북한이 도발의 빌미로 삼고 있는 한·미 합동군사훈련도 18일에야 끝난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당장 한·미·일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겨냥한 추가 도발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25일 네덜란드 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을 겨냥해 노동미사일을 발사한 바 있다. 이번에도 한·미·일의 공동대응에 밀리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보다 민감한 일정은 북한의 최근 탄도미사일 발사에 따른 유엔 안보리의 정식 조치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지난달 28일 안보리 의장 명의의 '구두 언론성명(press statement)'을 발표했으나 이번에는 안보리 차원의 조치가 내려질 것이라고 소식통들이 전했다.
주목할 대목은 가장 낮은 수준의 의장성명이 나오더라도 북한이 이를 빌미로 추가도발을 꾀할 가능성이다. 북한이 이번에 4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등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어서는 추가도발을 할 경우 한반도 정세가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해 3월 채택된 안보리 결의 2094호는 북한의 추가 도발시 곧바로 안보리 회부 등의 중대조치를 취한다는 '트리거 조항'을 담고 있다. 안보리의 중대조치가 나오면 북한은 이를 빌미삼아 또다른 형태의 도발을 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번에 북한이 추가도발을 하면 서로 대응과 맞대응, 도발과 압박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긴장의 수위가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으로서는 추가 도발에 따른 '후폭풍'이 워낙 거셀 것이라는 점에서 섣불리 행동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4차 핵실험에 나설 경우 '최대 우군'인 중국도 외교적 선택의 폭이 크게 좁아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일로서도 조심스럽게 '출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제재와 압박을 유지하는 한편으로 현재의 긴장국면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쪽으로 외교력을 모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황 본부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거론된 대화재개 부분에 대해서도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도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할 가능성을 놓고 관측이 엇갈리고 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사무총장 등은 "북한이 추가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는 반면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이번 위협을 '서울 불바다 발언'에 비유하며 "공허한 주장"이라고 폄하했다.
앞으로의 변수는 중국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에 가장 큰 '지렛대'를 가진 중국이 어떤 태도와 역할을 취하느냐가 북한의 추가도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과 다소 냉랭해진 중국이지만 여전히 대북 제재와 압박에는 적극성이 떨어진다는게 워싱턴의 대체적 평가다. 중국은 지난해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에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한·미·일에 대해서도 냉정을 촉구하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