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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아베의 오만

국방/외교

    '한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아베의 오만

    독도사랑세계연대 회원들이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 규탄 대회’ 를 갖고 아베 총리의 사진을 밟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3.1 만세가 일어나기 전해의 일이다. 일본 동경에서 시모노세끼(하관)로 가는 연락선 목욕탕에 상인행색과 시골뜨기로 보이는 일본인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눴다.

    염상섭의 소설 '만세전'
    ▶ 시골뜨기 : 그래 촌에 들어가면 위험하지 않나요.
    ▷ 상인 : 생번이라 하여도 요보(일본인인 한국인을 낮춰 부르는 말)는 온순한데다 가는 곳마다 순사요, 헌병인데 꼼짝할 수 있나요. 데라우찌상(1910년대 헌병경찰제도로 무단통치를 한 조선총독)이 참 손아귀힘도 세지만 인물은 인물이라...

    ▶ 시골뜨기 : 자본을 안들이고 그런 벌이가 어디 있어요?
    ▷ 상인 : 왜 한 번 해보시려우. 밑천이 아주 안드는 것은 아니지요 우선 얼마 안되지만 보증금도 들여놓아야 하고 양복이나 한 벌 장만하여야 할터인데... 당신이야 형님이 헌병대에 계시다니까 신분은 염려없을테니 보증금은 없어도 되겠지..

    ▶ 시골뜨기 : 그런 휼륭한 직업이 어디 있단 말이요.
    ▷ 상인 : 실상은 누워 떡먹거지. 나두 이번에 가서 해오면 세번째 되우마는 내지(일본)의 각 회사와 연락해가지고 요보들을 붙들어오는 것인데...
    조선 쿠리(苦力) 말씀요. 농촌 노동자를 빼내오는 것이죠, 근데 그것은 대개 경상남북도나 함경·강원 그 다음에는 평안도에서 모집을 해오는 것인데.. 그 중에도 경상남도가 제일 쉽습넨다 하하하...

    나는 여기서 깜짝 놀랐다. 그 불쌍한 조선 노동자들이 속아서 지상의 지옥같은 일본 각지의 공장과 광산으로 몸이 팔리어 가는 것이 모두 이런 도적놈 같은 협장 부랑배의 술주(술수)에 빠져서...

    ▶ 시골뜨기 : 그래 그렇게 모집을 해가면 얼마나 생기나요?
    ▷ 상인 : 얼마가 뭐요 .일당이 또 있지 .한 사람 모집서부터 이 원이니까. 그건 회사의 일의 종류에 따라서 방직회사의 여직공같은 것은 임금도 싼 데다가 모집원 수수료도 헐하고, 광부 같은 것은 지금 시세로도 일원 오십 전으로 이원 오십 전까지라우. 가령 천명만 맡아가지구 와보려. 이삼삭(두세달) 동안에 여비를 제하고 일천 오백원, 근 이천원은 간데없는 것일테니. 그런 벌이가 이판에 어디있소! 하하하..

    ▶ 시골뜨기 : (일평생내 들어보지 못할하던 천(千) 자가 붙은 돈 액수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런 조선 농군들이 가서 그런 공사일을 잘들 하나요?
    ▷ 상인 : 잘하고 못하는 것은 내가 아랑곳 있겠소마는 여하간 요보는 삯전이 헐하니까 안성맞춤이지. 게가다 빚까지 다 갚아는데야 제 아무런 놈이기로이니 아니 따라 나설놈이 있겠소. 한번 따라나서기만 하면야 전차(미리 빌린 빚)가 있는데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지.굶어뒈진다기루 하는 수 있나 하하하...


    염상섭이 1922년 발표한 소설 <만세전>에서 일부를 발췌해 재구성한 것이다. 소설에서 동경에 있는 유학생은 서울의 아내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길에 오른다. 그는 귀국하는 배에서 일본 경찰에 시달리면서 계속 분노를 느낀다. 나라없는 설움과 압박,곤궁속에서 허덕이는 조국에 대한 연민과 동정에 휩싸인다.

    소설 중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위 장면은 식민지 초반기(19010년대 말)에도 일제가 한반도에서 인력수탈정책을 광범위하게 펼쳤음을 알려준다. 어떤 조건을 내걸고 앞당겨 돈을 빌려준 다음 노동력을 옭아매는 방식은 현대판 인신매매나 별반 차이가 없다.

    물론 일본은 지금도 인력수탈이 아닌 '알선'이나 '모집'이라고 한다. 조선인이 일본행을 자발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인력수탈 정책은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지금 한일사이 문제가 되고 있는 강제징용체제로 변모했다. 전선이 넓어지자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백수십만명이 넘는 조선인을 강제 동원시켰다. 그들은 탄광과 군수공장에서 가혹한 노동에 혹사당해야 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2013년 10월 광주지법에서 열린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 끌려간 경험을 이렇게 증언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 '돈도 벌고 공부도 시켜준다'는 교장의 말에 속아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갔습니다. 아침 8시부터 하루 10시간 맨손으로 시너를 이용해 항공기 부품을 닦는 일을 했는데 비행기에 칠하던 페인트가 눈으로 뚝뚝 떨어졌지요. 닦으려고 잠시 작업을 멈추면 감시반장의 구둣발이 날아왔습니다"

    아베 일본 총리가 21일 참의원 선거가 끝나자마자 "한국이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라"고 말했다. '한국에 정상회담을 요청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아베의 답변은 매우 무례하고 오만하다. 강제징용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 문제로 논란이 해소됐는지 여부와 별개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라는 것은 일본 정부가 한국정부를 깔보지 않으면 내뱉을 수 없는 표현이다.

    나라와 나라사이에 '제대로 된 답변'이라 하는 것은 승패가 갈리는 전쟁터에서나 나올 수 있는 표현이다. 두 나라 문제는 결국 외교문제로 풀어야 한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의 국력차이로는 전승이나 전패가 나올 수 없다.

    이 문법은 작금에 '한국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아베의 오만이다. 일본이 전범국인 것은 변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인데도 가장 피해가 컸던 한국을 '신뢰없는 국가'로 낙인찍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눈뜨고 둔갑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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