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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울음이 뚝…농촌 어린이집엔 겨울이 왔다



전북

    아이울음이 뚝…농촌 어린이집엔 겨울이 왔다

    한때 99명 원아→11명으로 줄어
    올해 보조금 지급 마지노선 깨져
    원아감소 등 4년간 폐원 9000곳
    농촌 학부모 "보육 난민, 도미노"

    지난 3일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산서 어린이집. 폐원 위기에 직면한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의 근심이 가득하다. (사진= 남승현 기자)

     

    "제가 급여를 받지 못하는 건 상관없어요. 그런데 우리 어린이집이 폐원하면 미래 아이들의 보육이 사라집니다. 몇 달이나 버틸지 막막하네요."

    농촌 어린이집 원장의 호소는 과언이 아니었다.

    새해를 맞아 희망이 가득 찬 지난 3일, 전북 장수군 산서면 산서어린이집은 어느 때보다 추운 겨울을 보내고 있었다.

    실내 활동은 '믿음반'에서 이뤄진다. 교육을 받고 밥을 먹으며 꿈을 키워나가는 공간이다.

    보일러의 온기는 '믿음반'만 들어왔다. 원장이 머무는 사무실은 입김이 나올 정도로 냉골이었다. 전기요금을 아끼려 전기난로도 평소엔 가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달 기름값 60만 원에 허덕이는 어린이집이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원아가 줄면서 보조금이 중단될 상황이다. 산서어린이집이 받는 연간 보조금은 1억 2000만 원(보건복지부 50%·장수군 50%) 수준이다. 급식비와 인건비, 차량 운행비 등이 포함된다.
    기름이 없어 냉골인 산서어린이집 사무실에서 김영선 원장은 "매일 끼니를 거르는 원아들을 위해 신선한 죽과 과일을 제공하고 있다"며 보조금 지급이 중단되면 급여를 받지 못할 자신보다 아이들을 더 걱정했다. (사진= 남승현 기자)

     



    산서어린이집 김영선 원장(57)은 "해마다 아이들이 줄면서 어린이집 운영의 존폐 위기까지 왔다"며 "원아가 줄면 제 급여가 안 나온다. 조리사와 영아반 교사의 급여는 나오는데, 유아반 교사의 급여는 아이들 보육료에서 충당하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어린이집은 산서면에서 유일한 어린이 보육 시설이다. 사회복지법인 혜화원은 1998년 3월 어린이집을 열어 23년째 산서면의 영·유아를 위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출산율이 높았을 한때 원아가 99명에 달했다. 하지만 저출산으로 신생아가 계속 줄어 현재는 11명으로 떨어졌다.

    봄이 오면 상황은 더 나빠진다. 졸업과 전출, 유치원 전원으로 7명이 빠져나가고 남은 4명과 3명의 입학 예정 원아를 더하면 총 7명이 된다.

    농어촌 지역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에 대한 인건비 지급 기준의 마지노선인 11명이 깨지는 순간이다.

    어린이집은 원장과 보육교사 2명, 조리사 1명 등 총 4명이 근무하고 있다. 영·유아가 합쳐 11명을 넘지 못하면 보육교사에 대한 인건비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전북 장수군 산서면 0~5세 인구수 인포그래픽. (사진 = 남승현 기자)

     

    원인은 농촌에서 듣기 힘든 아이들의 울음소리였다.

    산서면 주민으로 등록된 0~5세 인구는 2016년 52명, 2017년 41명, 2018년 33명, 2019년 32명 등으로 매년 감소하고 있다.

    인구 2000여 명이 사는 산서면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육통합정보시스템의 어린이집 폐원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6년 2184곳, 2017년 1939곳, 2018년 2345곳, 2019년 11월 기준 3005곳 등이다.

    어린이집 폐원의 구체적인 유형은 분류되지 않고 있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원아 감소와 임차계약 만료, 폐쇄처분 등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는 보육 난민"이라는 학부모들은 산서어린이집의 폐원을 반대하며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사진= 남승현 기자)

     

    피해는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몫이다.

    산서어린이집이 사라지면 임실이나 남원으로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학부모 이창환(45)씨는 "어린이집마저 없어지면 귀향·귀농·귀촌 인구가 늘기는 힘들 것"이라며 "아이들이 있어야만 지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말했다.

    학부모 이수연(38)씨는 '농어촌 공공보육 보장을 위한 시민의 모임'을 결성했다. 단순 '산서어린이집 살리기'가 아닌, 전국 농어촌 공공보육을 위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 씨는 "어린이집이 폐원하면 우선 부모들이 제대로 일을 하기 어렵다"며 "아이돌봄서비스가 있지만, 교사가 한 분이라 예약이 밀리기 부지기수여서 보육이 유명무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어 "산서를 시작으로 하나씩 도미노처럼 무너지면 안 된다"며 "누구든 와서 귀농·귀촌을 할 수 있는 마을이어야 하고, 전국의 농촌이 살아날 수 있도록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북 장수군 산서어린이집. (사진= 남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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