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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경 한국당 영입인재 "독립운동 올바르게 계승하는 정치 할 것"



국회/정당

    윤주경 한국당 영입인재 "독립운동 올바르게 계승하는 정치 할 것"

    윤봉길 장손녀란 이름…어릴 때는 부담감
    할아버지 윤봉길 이름에 누가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
    독립 이후 산업화·민주화 과정도 자랑스러운 역사
    독립운동가 후손 대표해서 정치계 입문…고민 많았다
    日 수출규제 당시 한국당 입장 이해해
    혐한·혐일 조장은 한일 갈등 올바른 대응 방법 아냐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20~19:55)
    ■ 방송일 : 2020년 2월 13일 (목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

     


    ◇ 정관용> 주요 정당 영입인사 가운데 화제의 인물 초대해서 이야기 들어보고 있죠. 오늘은 자유한국당에 영입된 분 가운데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이시면서 10대 종립기념관장 지내신 바 있는 매헌 윤봉길 월진회 이사 윤주경 이사를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윤주경> 안녕하세요.

    ◇ 정관용> 매헌 윤봉길 월진회라는, 월진회가 뭐죠?

    ◆ 윤주경> 월진회는 저희 할아버지 윤봉길 의사가 상해로 망명하시기 전에 농촌에서 계몽운동하시면서 만들었던 어떤 청년조직이었었어요. 그래서 1929년에 만들어서 만들어진 걸로 1946년에 다시 부활하면서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고요. 그 당시에 보면 정말 재미있었던 건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은 게으르고 사치스러워서 못 살고 그러니까 일본 사람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돼야 되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일본의 지배를 받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이렇게 할 때.

    ◇ 정관용> 그런 교육을 했죠.

    ◆ 윤주경> 거거에 저항해서 야학도 하시고 또 정말 우리 스스로 힘으로 자급자족해서 우리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자 이런 뜻을 가지고 활동하셨었죠.

    ◇ 정관용> 자국 국민에 대한 계몽운동하려고 만든 조직이 월진회? 그렇군요. 장손녀라면 윤봉길 의사가 슬하에 몇 자제분을 두셨죠?

    ◆ 윤주경> 큰딸 그다음에 아들, 아들 이렇게 둘 두셨는데 큰딸은 윤봉길 의사가 떠나시기 전에 돌아가셨고 이제 둘째아들은 윤봉길 의사가 떠나간 다음에 태어났는데 한 10살쯤에 복막염으로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저희 아버지만, 장남인 저희 아버지만 성장해서 결혼도 하시고 아이도 낳고 그러셨죠.

    ◇ 정관용> 그러니까 손주, 손녀를 두신 자녀는 윤봉길 의사로서는 딱 한 분이네요.

    ◆ 윤주경> 네. 그래서 저를 되게 재미있게 표현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윤봉길 의사가 떠나실 때 한번 안아보고 내려놨던 그 아이가 낳은 아이라고.

    ◇ 정관용> 한번 안아보고 떠나신 그 아이가 아버지군요. 그분의 큰딸.

    ◆ 윤주경> 네.

    ◇ 정관용> 어려서부터 진짜 많이 들으셨겠어요.

    ◆ 윤주경> 할아버지 얘기 많이 안 하셨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으시고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떠나실 때 수줍어서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도 못하고 부엌에서 일하시다가 가신 다음에 큰 길을 향해서 내다보니까 사람은 안 보였다 그래요. 그때 잘 다녀오시라는 말 한마디라도 했으면 하는 그게 늘 가슴에 있으셔서 말씀을 잘 안 하셨어요. 그러신데 막 우리가 조르면 그 말씀하세요. 너무 수줍어서 두 분이 눈도 한번 제대로 못 맞춰봤다고. 그게 정말 열 몇 살.

    ◇ 정관용> 그 할머니는 윤봉길 의사랑 몇 년을 지내셨던 거죠, 결혼하시고.

    ◆ 윤주경> 한 5~6년?

    ◇ 정관용> 5~6년. 그리고 그냥 남편은 가버리고. 그 5~6년 사이에 눈도 제대로 못 맞추고.

    ◆ 윤주경> 그러셨대요. 그리고 대가족제도니까 일하기 바쁘시고 농촌이라는 건. 그리고 할아버지는 또 밖에 생활하시기 바쁘시고. 말씀하시는 게 그러더라고요. 아침에 놋주발 이런 곳에 도시락처럼 밥을 싸주면 그걸 가지고 나가셨다가 밤에 늦게 오면 놋그릇은 왜 이렇게 변색이 잘 되잖아요. 그러면 그 어두운 깜깜한 데서. 짚으로 그걸 닦아서 그다음 날 아침에 도시락을 싸주고 그랬다고.

    ◇ 정관용> 놋그릇에다 도시락을 싸드렸군요, 그때는. 할머니를 그러면 우리 윤 이사님이 몇 살 때까지 있으셨어요?

    ◆ 윤주경> 할머니가 88년도에 돌아가셨으니까 제가 서른 그 정도까지.

    ◇ 정관용> 그래도 오래 할머니랑 계셨네요.

    ◆ 윤주경> 그렇죠. 할머니가 저희 다 길러주셨어요. 할머니가 자제분이 셋이었는데 하나밖에 못 기르셨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엄마가 자식을 많이 낳았죠. 딸 여섯에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그런데 옛날에는 딸이 많으면 딸을 많이 낳으면 시어머님이 좋은 소리 안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희 할머니는 우리가 건강하게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으셔서 정말 애지중지 길러주셨어요.

    한국당 인재영입,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인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 (사진=연합뉴스 제공)

     


    ◇ 정관용> 1남 6녀의 장녀시네요, 그러니까. 그 할머니도 윤봉길 의사와는 5~6년 지내셨으니 별로 살가운 얘기를 듣기는 그랬을 거고 아버님은 뭐 아무런 기억이 없을 거고. 개인적 인연으로는. 그러나 이 국가가 인정하는 국가가 기억하는 윤봉길 의사에 대한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으셨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남다른 어깨가 무겁다 이런 걸 느끼셨어요?

    ◆ 윤주경> 그랬죠. 늘 아버지나 할머니가 다른 말씀은 없으셨지만 그 말씀은 꼭 했어요. 할아버지가 사람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절대로 할아버지 이름에 누가 되는 사람은 되지 말아라. 너희가 잘난 사람이 되라는 건 아니다. 그 말씀은 항상 하셨기 때문에 제가 좀 뭐랄까. 밖에 나왔을 때 조신해야겠다 이런 생각도 했고 또 학교 다닐 때 선생님도 그러셨어요. 친구들하고 잘못해서 벌을 세우시면 저만 벌을 세우시는데 하시는 말씀이.

    ◇ 정관용> 너는 윤봉길의 손녀인데.

    ◆ 윤주경> 그렇죠. 다른 사람이 다 그래도 너는 그러면 안 된다고. 그래서 알게 모르게 그렇게 되는 거죠.

    ◇ 정관용> 어려서는 되게 싫었었겠다.

    ◆ 윤주경> 싫었죠. 싫었는데 이제 나이 먹어 생각하니까 그래도 그나마 그랬으니까 내가 이 정도지 그렇지 않았으면 얼마나 천방지축이었을까 이런 생각도 하고 그러죠.

    ◇ 정관용> 저희가 관련 기사나 이력사항을 쭉 보니까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과정에 국민대통합위원회 쪽의 일 맡으시고 그 이전에는 전혀 이런 활동을 안 하셨더라고요.

    ◆ 윤주경> 안 했었어요. 그냥 저는 어떻게 보면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그냥 이게 소중한 역사자료지만 보통 사람이 아는 정도밖에 모르고 그랬었죠. 그런데 제가 어떤 계기가 돼서 처음으로 진짜 상해를 갈 일이 있었는데 그게 저희 할아버지 순국일에 맞춰서 가는 거였었는데 그때 거기를 가니까 그 날씨가 정말 음습한데 그때 그걸 느끼겠더라고요. 독립운동하셨던 사람들이 얼마나 독립이 절실했으면 나라를 떠나서 이곳에 와서 이 고생을 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독립운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또 이제 이런 행사가 있으면 시간이 되는 대로 또 제가 참석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면 조금씩 조금씩 그런 활동은 했었죠.

    ◇ 정관용> 그런 활동 외에는 그냥 직장생활하시고 자녀 기르시고 그렇게. 그러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서 요청할 때 오케이 하신 게 어찌보면 정치권에는 첫 발인데, 그렇죠?

    ◆ 윤주경> 그렇죠.

    ◇ 정관용> 그 첫 발의 결심의 계기는 뭐였어요?

    ◆ 윤주경> 그러니까 우리가 갈등이 굉장히 심하다, 심하다 하는 얘기가 나오는 어떤 갈등을 해소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제 생각은 그랬어요. 우리가 정말 독립운동의 역사도 정말 중요하지만 독립한 이후에 산업화, 민주화를 이룬 이것도 굉장히 정말 자랑스러운 역사인데. 그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시각이 있으니까 그런 거에 있어서 좀 뭐랄까.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길은 없을까.

    ◇ 정관용> 우리 내부가.

    ◆ 윤주경> 그래서 그런 거에.

    ◇ 정관용> 그게 바로 국민대통합위원회 그 이름 아닙니까?

    ◆ 윤주경> 네. 그래서 좀 저는 그랬어요. 우리 역사를 좀 소중하고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 국민 모두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런 생각이 컸죠, 저는. 그래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거고.

    ◇ 정관용> 그랬는데 그로부터 벌써 근 10년 가까이 흘렀는데 우리 내부의 갈등은 더 심해진 거 아니에요?

    ◆ 윤주경> 그래서 많이 속상했고. 정말 우리가 독립운동 정신을 올바로 이어받고 있다면 이럴까, 이럴 수 있을까. 그래서 어떻게 보면 저는 다시 어르신들이 대한민국의 임시정부를 세울 때 그때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는 이런 말씀드리고 싶고 그렇습니다.

    윤주경 자유한국당 영입인재, 전 독립기념관장 (사진=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제작진 제공)

     


    ◇ 정관용> 독립기념관장을 첫 여성 독립기념관장 지내셨고 그렇죠? 그만두시는 과정에서 조금 논란이 있었어요. 그때 피우진 보훈처장이 외압을 넣어서 그만두게, 사표를 내도록 했느냐. 반대로 또 청와대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말렸다. 그래서 임기를 마치고 나온 거다 이런 얘기가 있었는데 진실이 뭐예요?

    ◆ 윤주경> 피우진 처장이 사표를 낼 걸 이제 저한테 요구를 했는데 제가 그때 사실은 독립기념관장을 뽑으려면 한 3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그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그런 요청을 해서 제가 그냥 정상적으로 과정을 밟으면 안 되겠느냐라고.

    ◇ 정관용> 임기 마치는 거랑 거의 똑같으니.

    ◆ 윤주경> 그랬는데도 굳이 사표를 내라는 말을 해서 제가 생각하니까 내가 이런 선례를 남기면 다른 독립운동가 후손들도 또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되는데 안 되겠어서 이런 분 저런 분한테 상의를 했죠. 그랬는데 피우진 처장이 전화를 했더라고요. 여러 분들이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으니까 사표를 안 내도 된다고 저에 대해서는. 그래서 사표를 안 내고 정상적으로.

    ◇ 정관용> 알겠습니다. 전반 과정이 정리가 됐고요. 이번에 자유한국당은 언제 영입제안을 받으셨어요?

    ◆ 윤주경> 지난 여름.

    ◇ 정관용> 작년 여름? 일찌감치 받으셨네요.

    ◆ 윤주경> 네.

    ◇ 정관용> 받자마자 오케이 하셨습니까?

    ◆ 윤주경> 아니, 저에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다고.

    ◇ 정관용> 어떤 고민을 하셨고 어떻게 결심하셨어요?

    ◆ 윤주경> 우선 저는 정치라는 영역에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는 건데. 과연 내가 이런 새로운 영역에서 뭘 할 수 있을까 또는 잘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독립운동한 후손들 어떻게 보면 대표해서 가는 길인데 내가 그들한테 또 어떤 누를 끼치는 건 아닐까 이런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죠.

    ◇ 정관용> 결심하시게 된 배경은?

    ◆ 윤주경> 저는 이제 저희 어머님한테 말씀드렸더니 네가 독립기념관장 잘해냈으니까 또 새로운 길에서 잘해내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말씀해 주셔서 조금 용기를 얻고 그리고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이제 고민하다 보니까 그래도 저라면 그래도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자는 말을 할 때 공감해 주시는 분들이 많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제 결심하게 됐죠.

    ◇ 정관용> 상대적으로 이건 국민 여론의 분포도 물론 좀 다르기는 합니다마는 상대적으로 지금 입당하신 자유한국당이 다른 당에 비해서는 좀 일본과 가까운 정당이다라는 식의 국민적 인식이 있는 건 느끼고 계시죠?

    ◆ 윤주경> 그렇죠.

    ◇ 정관용> 그렇죠? 그건 혹시 부담되지 않았어요?

    ◆ 윤주경> 그건 별로 생각 안 했어요. 생각 안 하고.

    ◇ 정관용> 조금 더 직설적 표현을 쓰면 일각에서는 네티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지만 토착왜구 뭐 이런 용어까지 있는 건 알고 계시죠?

    ◆ 윤주경> 그렇죠. 그런데.

    ◇ 정관용> 그런 얘기를 듣는 정당에 내가 간다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 윤주경> 저는 오히려 그 말 속에서 만약에 정말 그렇다면 자유한국당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그 정신을 이어받는 정당이 된다면 그러면 대한민국 100% 통합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 여당의 경우는 그것을 다 이어받고 있다고 그렇게.

    ◇ 정관용> 외치고 있죠.

    ◆ 윤주경> 왜냐하면 이분법으로 할 때 딱 그렇게 보는 거잖아요. 그랬을 때 보면 자유한국당마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정말 국민이 모두 원하는 대한민국이 되는 길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 말씀은 우리 윤주경 이사가 그 당에 들어가서 그 당을 그렇게 독립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그런 당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그런 건가요?

    ◆ 윤주경> 어떻게 보면 오해받는 면도 많잖아요. 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보면 그런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예우 이런 이야기들이 나왔을 때 그들도 한 번도 제가 정례위에 있을 때는 양당이 모두 똑같은 말씀을 했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제가 개조시킨다 이건 아니고 어떻게 보면...

    ◇ 정관용> 아니, 독립운동 후손에 대한 예우 이런 정책적 쟁점에 대해서는 여야 간 견해가 별로 없었으나 지난 최근에 특히 한일관계가 굉장히 좀 갈등 악화하고 이런 양상 보이잖아요. 그런데 지소미아 파기를 할 거냐 말 거냐 등등의 논쟁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이 취한 정책적 노선은 어찌보면 일본과 너무 갈등하면 안 돼 이런 쪽이었단 말이에요.

    ◆ 윤주경> 그런 건 미래를 생각해서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일본을 제껴놓고 살 수는 없잖아요. 조화를, 그러니까 안중근 의사도 하시는 말씀이 한국과 일본과 중국이 공존할 때 비로소 평화의 세상이 온다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어찌됐든 간에 사실은 일본에서도 역사문제를 가지고 경제문제로 풀어가려고 하고 이 혐한을 부추기는 건 일본이 잘못이죠. 그건 분명히 잘못이에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만으로는 두 나라가 치닫는다면.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잇따른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반말하며 범국민적으로 진행 중인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에 동참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기자)

     


    ◇ 정관용> 아니, 그러니까 그쪽이 먼저 우리한테 자극을 한 거잖아요, 도발을 한 거잖아요. 경제보복 조치를.

    ◆ 윤주경> 그렇죠.

    ◇ 정관용> 우리가 맞대응하는 게 당연히 맞는 거 아닌가요?

    ◆ 윤주경> 그렇죠, 그건. 그런데 그 맞대응이라는 것을 꼭 혐한이라든지 우리가 혐일이라고 해야 되나요? 일본을 우리가 일본 국민을 미워하는 게 아니잖아요.

    ◇ 정관용> 물론이죠.

    ◆ 윤주경> 그런데 이제 이렇게 된다면 결국은 거기까지 치닫을 수밖에 없는데 그 전에 현명한 어떤 외교적인 노력들이 필요한 거죠.

    ◇ 정관용> 정치권에 가시면 여야를 다 아우르는 모두가 통합되는 또 한일관계도 좋아지는 그런 역할하시겠네요. 그렇죠?

    ◆ 윤주경>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 정관용> 제일 하고 싶은 거 딱 한 가지만 짧게 말씀하시면.

    ◆ 윤주경> 저는 독립운동 정신 올바르게 계승하는 역할을 하고 싶고요. 그렇게 된다면 독립운동 정신이라는 건 정의, 자유, 평화를 추구하는 거였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런 정신으로 돌아가서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는 것에 제가 한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정관용> 지역구 출마하시나요? 아니면 비례대표로 가시나요?

    ◆ 윤주경> 지역구는 아닙니다.

    ◇ 정관용> 비례는 그럼 약속을?

    ◆ 윤주경> 그렇게 말씀들을 하시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앞으로의 활약 기대하면서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매헌 윤봉길 월진회의 윤주경 이사였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 윤주경>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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