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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한국적이지 않은 '한국형 재정준칙'



경제정책

    전혀 한국적이지 않은 '한국형 재정준칙'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기준…사실상 '확장 재정 포기' 시사

    홍남기(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오른쪽은 기재부 안일환 제2차관(사진=기재부 제공)

     

    정부가 실효성과 적절성 논란에도 결국 '재정준칙' 도입을 밀어붙이고 나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5일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재정준칙은 국가채무와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정 비율 이하로 제한하는 등 재정 운용에 제약을 가하는 제도다. 그런데 그 앞에 '한국형'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전 세계 92개국이 운용 중이고 '선진국 가운데서는 우리나라와 터키만 없다는 재정준칙을 도입하되 '우리 상황에 맞게 설계·운용하겠다'는 설명이다.

    그럼 다른 나라에는 없고 한국형 재정준칙에만 있는 특징은 뭘까.

    기재부 설명에 따르면 재정준칙 준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5일 정부가 발표한 재정준칙 도입 방안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60% 및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3%를 기준으로 재정을 운용하도록 했다.

    ◇"국가채무 비율 60%와 재정적자 비율 3% 통합적 고려"

    재정준칙 준수 여부 판정을 위한 한도 계산식(자료=기재부 제공)

     

    기재부는 "현재 국가채무 그리고 통합재정수지 수준과 중장기 전망과 여건 등을 고려해 기준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재정준칙의 전형으로 거론되는 유럽연합(EU)의 기준 또한 국가채무 비율 60%와 재정적자 3%다.

    지키는 EU 국가는 거의 없지만 준칙상으로는 국가채무 비율 60%와 재정적자 3%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이에 비해 한국형 재정준칙은 국가채무와 재정수지를 통합적으로 고려해 재정준칙 준수 여부를 판정하도록 '한도 계산식'을 설계했다.

    국가채무 비율이 60%를 넘더라도 그에 상응해 재정적자 비율을 낮춘다면 준칙을 준수한 것으로 판정하는 식이다.

    안일환 기재부 제2차관은 "국가채무와 재정수지를 함께 고려하도록 설계한 것이 우리나라 재정준칙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60%와 3%라는 절대 기준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하는 EU 준칙보다는 재정 운용 여지를 넓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내용으로 들어가면 한국형 재정준칙이 과연 우리나라 실정을 제대로 반영했는지 의문이다.

    ◇2025년 재정준칙 적용 시작과 동시에 위반 가능성 농후

    (자료=기재부 제공,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

     

    4차 추경까지 반영한 올해 우리나라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4.4%, 국가채무 비율은 43.9%다.

    기재부는 지난 8월 발표한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2024년 국가채무와 통합재정수지 적자 비율 관리 목표를 각각 58.3%와 3.9%로 제시했다.

    정부는 코로나19 지속 상황 등을 고려해 한국형 재정준칙을 당장 적용하지 않고 준비 기간을 거쳐 2025 회계연도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실정을 고려하면 2025년 재정준칙 적용 시작과 동시에 준칙 위반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부가 애초 목표대로 2024년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비율을 각각 58.3%와 3.9%로 묶었을 때 이듬해 재정준칙을 준수할 수 있는 상황은 대표적으로 두 경우를 들 수 있다.

    한국형 재정준칙 한도 계산식에 의하면 국가채무 비율을 전년보다 늘리지는 않더라도 같은 수준 유지를 위해서는 재정적자 비율을 3.1%로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재정적자를 전년 수준으로 유지한다면 국가채무 비율을 46.2%로 크게 떨어뜨려야 재정준칙을 준수할 수 있다.

    현재 추세를 고려하면 두 경우 모두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은 시나리오다.

    ◇기재부 차관 "확장 재정 지속하면 준칙 달성 쉽지 않아"

    홍남기 부총리도 "한국형 재정준칙 기준이 결코 느슨하지 않으며 달성하기 쉬운 요건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 기재부는 무슨 수로 2025년 재정준칙 준수를 이룬다는 것일까. 답은 '노력'이다.

    홍남기 부총리는 "당장 내년부터 시작해 재정준칙이 적용되기 전 단계에서 '굉장히' 노력을 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안일환 차관은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내로 유지하려면 재정수지 개선 노력을 '엄청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안 차관은 "확장 재정으로 계속 느슨하게 가면 2025년에 재정준칙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라고도 했다.

    재정준칙 준수를 위해 내년 예산안 편성까지 지속됐던 확장 재정 기조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정부의 재정준칙 도입 명분 중 하나가 '선진국에 비해 낮은 복지 성숙도 진전을 위한 재정 여력 확보'인데 정작 복지 성숙도 진전의 바탕인 확장 재정이 포기될 판이다.

    그렇게 굉장하고 엄청난 노력에도 재정준칙을 준수하지 못하면 재정 운용의 핵심인 기재부 등 정부는 어떻게 책임을 지나. 사실상 '지키지 못하면 그만'이다.

    ◇홍남기 부총리 "선진국 재정준칙도 대부분 처벌 조항 없어"

    홍남기 부총리는 "재정준칙은 건전성을 확보하면서 재정 운용을 할 수 있는 기준 제시와 최대한의 준수 노력, 국민적 감시와 압박이 주된 목표"라고 강조했다.

    선진국 재정준칙 대부분은 처벌 조항이 없으며, 처벌보다는 재정건전성을 고려해 나가도록 하는 압박 요인으로 충분히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홍 부총리는 "선진국들 예를 보면 재정 역할이 늘어나면서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경향성을 보임에 따라 재정준칙 계산식을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한국형 재정준칙은 5년마다 계산식 등 수량적 한도를 재검토하도록 했는데 그때마다 국가채무 비율 기준 등이 완화할 수 있음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현재 우리 재정 여건과 복지 수준 등을 고려하면 지키기 힘든데다가 지키지 못해도 사실상 그만인 재정준칙을 기재부가 강행하는 형국이다.

    기재부는 연말까지 재정준칙 도입 근거 규정 마련을 위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홍 부총리는 국가재정법 개정 열쇠를 쥔 더불어민주당 입장에 대해 "일부 개별 의원은 재정준칙 도입에 의견을 달리하지만, 여당과 전체적으로 조율은 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위기 극복에 필요한 적극적인 재정 운용 저해' 등 재정준칙 도입에 반대하는 여당 내 목소리도 크고 뚜렷해 앞으로 입법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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