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23일 국회에서 당 대표 출마선언을 마치고 소통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국민의힘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23일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 출사표를 던졌다. 한 전 위원장은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제가 나섰을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며 대표직 수행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 수평적 당정관계 수립과 채 상병 특검법 수용 의사 등을 내세워 나경원·원희룡 등 타 후보와의 차별점을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소통관을 찾으면서 4·10 총선 후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한 전 위원장은 "주권자 국민의 민심은 절묘하고 준엄하다. 그토록 염원했던 총선 승리였지만 결과는 너무도 뼈아팠다"고 운을 떼면서 가장 먼저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오로지 저의 책임이다. 어떻게든 제가 더 잘했어야 했다"면서도 "지난 두 달간 복기와 성찰의 시간을 보내면서 국민의 준엄한 요구를 생각했다. 고심 끝에 오랫동안 정치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바꿨다"고 결심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지금 시기의 국민의힘 당 대표는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죽기 딱 좋은 위험하기만 한 자리라고들 한다. 용기 내어 헌신하기로 결심했고 결심했으니 주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 전 위원장은 당대표가 되면 첫 번째로 당정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며 친윤(친윤석열)계 후보들과의 차별화에 나섰다. 그는 "당정관계를 수평적으로 재정립하고, 실용적으로 쇄신하겠다"며 "지금 우리가 눈치 봐야 할 대상은 오로지 국민"이라고 했다. 이어 "당이 정부의 정책 방향 혹은 정무적인 결정에 대해 합리적인 비판이나 수정 제안을 해야 할 때, 그럴 엄두조차 못 내는 상황들이 반복됐다"며 대통령 중심인 수직적 당정관계의 병폐를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이 정부와 충실히 협력하지만 꼭 필요할 땐 합리적인 견제와 비판, 수정 제안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돌아온 한동훈. 연합뉴스출마선언 기자회견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난 한 전 위원장은 대권 도전에 관한 질문에 "저는 지금 상황에서 제가 나서는 게 당에, 우리 진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냐, 아니냐 그것만 생각했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지지층과 당원들은 이길 수 있는 대선후보를 갖는 걸 열망하고 있다"며 "누가 되든 간에 그 시점에, 그 사람이 가장 강력하게 우리를, 우리 지지자들을 대변해서 대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저는 누구라도 대선후보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한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그런 후보로 평가를 받는다면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되는데, 앞서 당 대표가 되면 대권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나경원 의원의 입장과는 대조적이다.
'원외 당 대표의 한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우리는 108석 소수 정당이다. 원내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돼 있다"며 "대신 168명의 훌륭한 원외 위원장들과 한데 뭉쳐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윤심(尹心)'이 다른 후보에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한 전 위원장은 "어떤 친소관계가 공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돼선 안 된다는 강한 생각을 갖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윤 대통령과 저는 지금까지 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답했다.
이밖에 한 전 위원장은 보수정치 혁신을 위해 지역현장중심의 풀뿌리 정치를 위한 지구당 부활, 여의도연구원 등 정책기능 강화, 외연 확장 등을 통한 정치저변 확대 등을 제시했다.
그는 채 상병 특검법과 관련해 다른 당권주자들과 달리 국민의힘 주도로 특검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논리적으로는 특검을 반대할 수 있지만 "국민들의 의구심을 풀어드릴 만한 여러 번의 기회를 아쉽게도 실기했다"는 것이다. 반면 이른바 '김건희 특검법'으로 불리는 특검법안들에 대해서는 "법리 판단만 남은 문제여서 지금 단계에서 특검을 도입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대신 당대표가 될 경우 특별감찰관 추천과 제2부속실 설치를 요구하겠다고 덧붙였다.
한 전 위원장이 출마 기자회견을 연 국회 소통관 앞은 이날 오전부터 지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후 1시 50분쯤 한 전 위원장이 등장하자 수백 명의 지지자들은 "새로운 보수의 아이콘 한동훈", "기다렸다 한동훈" 등이 적힌 빨간 피켓을 들고 '한동훈'을 연호했다. 한 위원장이 소통관 내부로 들어오자 그의 주변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수준의 인파가 몰리는 등 뜨거운 열기가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