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우린 왜 죽어야 하나요? 20대 눈에 비친 故이선호" [뉴스업]



사회 일반

    "우린 왜 죽어야 하나요? 20대 눈에 비친 故이선호" [뉴스업]

    故이선호의 노트북, 故김용균의 컵라면..
    2030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의 현실
    '삶의 희망' 사라진 산재 유가족들의 투쟁
    대국민사과한 원청, 유가족 사과는 언제?

    ■ 방송 : CBS 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 FM 98.1 (18:25~20:00)
    ■ 진행 : 김종대 (연세대 객원교수)
    ■ 대담 :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운동연대 정책국장)


    ◇ 김종대> 한 주 동안 수많은 글들 쏟아집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칼럼을 함께 읽어보는 시간이죠. 오늘은 변 칼럼 시간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운동연대 전장연의 변재원 정책국장, 전화로 연결돼 있습니다. 전 국장님 안녕하세요.

    ◆ 변재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김종대> 변 국장님. 뉴스업에는 저희가 오늘 처음 모시는데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잠깐 변 국장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생후 10개월부터 신체장애를 얻으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장애를 갖고 계십니까?

    ◆ 변재원> 사실 오늘 스튜디오에 나왔다면 더 많은 분들이 이렇게 시각적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 아쉽고요. 저의 장애는 쉽게 생각하시면 목발을 짚고 다니는 지체장애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고요. 생후 10개월에 의료 사고로 인해서 척수공동증, 더 쉽게 얘기하면 척수에 구멍이 나서 신경이 마비되는 그런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 김종대> 그런데 이력이 굉장히 화려해요. 이전에는 서울대 행정학에서 석사 과정 밟으셨고요. 또 구글코리아에서 일도 하셨어요. 구글에서는 어떤 일 하셨습니까?

    ◆ 변재원> 사실 구글코리아에서는 제가 첫 장애인 사원이었고요. 저는 일단 비즈니스 인턴으로 있으면서 조금 말이 어려울 수도 있는데 유튜브라는 소셜미디어에서 마케팅 업무를 주로 담당했습니다. 그래서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유튜브를 많이 이용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을 고민하기도 했고 유튜브의 본사가 사실 미국에 있어요. 그래서 이 유튜브의 본사가 갖고 있는 어떤 메시지들을 어떻게 국내에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현지화 업무들을 진행했습니다.

    변재원 전장연 정책국장

     


    ◇ 김종대> 알겠습니다. 명문대 출신의 어떤 글로벌 기업에도 근무를 하셨던 분이 갑자기 장애운동에 뛰어드신 이유 궁금하네요.

    ◆ 변재원> 그렇죠. 사연이 사실 좀 이래저래 길긴 하지만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자면 구글을 그만두고 바로 갑자기 장애운동 하겠어 이랬던 건 아니고요. 연구를 사실 저는 계속하고 싶어서 연구자의 길을 걸으려고 서울대학교로 돌아가서 학업을 계속하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석사 후에 유학준비를 하다가 이 석사 논문 인터뷰로 왜 이렇게 장애인들은, 제가 행정학을 하다 보니까, 정부 정책에 있어서 자꾸 이렇게 집회나 시위를 많이 할까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장애운동가이신 박경석 대표님을 만나서 인터뷰를 하다가.

    ◇ 김종대> 저희 방송에서도 인터뷰 했던 분입니다.

    ◆ 변재원> 그렇군요. 그래서 박경석 대표님께서 설득을 해서 같이 인권운동하자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졸지에 코로나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만 장애인권운동 할게요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 김종대> 설득한 분도 놀랍고 설득되시는 분도 더더욱 놀라운 아주 참 기념비적인 인연이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오늘 골라온 칼럼 어떤 겁니까?

    ◆ 변재원> 제가 오늘 소개해 드릴 칼럼은요. 5월 6일날 발표된 한글의 사설 또 김용균 닮은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죽음이라는 칼럼입니다.

    ◇ 김종대> 벌써 제목만 들어도 굉장히 가슴 아픈 사연이 많이 나올 것 같은데요. 어떤 글인지 좀 설명을 해 주시겠어요.

    ◆ 변재원> 맞아요. 사실 비정규직 청년노동자의 죽음이 슬프게도 많이 익숙하면서도 잘 안 와닿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사설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들이 죽는 상황들은 너무나도 낯익기에 비통함이 더하다. 2018년 입사 3개월 만에 홀로 위험한 업무를 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 씨. 2017년도에 특성화고 현장실습 도중 프레스에 눌려 숨진 이민호 군. 2016년 지하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어 숨진 김 아무개군. 언제까지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어야 한단 말인가." 이러한 맥락이 있어서 굉장히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 김종대> 참 꽃다운 청년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청년들이었어요. 이 글을 보면서 떠오른 청년노동자 어떤 노동자가 있었습니까?

    ◆ 변재원> 사실 저는 지금 장애인권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많은 분들은 장애인권운동 이렇게 들으면 저상버스나 엘리베이터 운동 이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장애인의 노동권도 굉장히 열악한 현실에서 그 중에서 제가 작년에 스러져간 한 노동자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광주의 지적장애인 청년노동자인 고 김재순 노동자인데요. 수지 파쇄 업무를 진행하시다가 안전 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고 2인 1조. 2명이서 일해야 되는 업무였음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업무를 하시다가 파쇄기 위에서 스러진, 산업재해를 겪은 사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 말고도 제가 사실은 구글에서 일할 때 들었던 고 김용균 청년노동자 사례도 꼭 얘기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당시에 제가 글로벌 기업에서 안락한 사무직으로 일할 때 주차타워에 들어갔는데 제 또래의 비정규직 청년노동자들이 제 자동차를 향해 어서 오십시오 이러고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데 제가 그때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왜냐하면 그 인사를 받을 때 제가 그 자동차 안에서 김용균 님 사망사고를 접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왜 우리 세대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계 위에서 스러지고 기계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할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게 있습니다. 두 분 다 사실 94년생으로 지금까지 살아계셨다면 28살이셨겠죠.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평택=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지난달 평택항에서 일하다 숨진 청년 노동자 고(故) 이선호 씨의 빈소를 12일 찾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고인의 영정 앞에 분향하고 있다. 2021.5.12. jujuk@yna.co.kr 연합뉴스

     


    ◇ 김종대> 우리 변재원 국장님,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 변재원> 저는 93년생 올해 29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두 청년 노동자와 연년생인 것이죠.

    ◇ 김종대> 같은 또래군요. 20대, 30대 또래 노동자들 이렇게 죽거나 다치는 이야기 접할 때 어떤 느낌 드십니까?

    ◆ 변재원> 사실 이선호 님의 경우에도 고등학교 동창 친구분들께서 너무나도 원통하다며 청와대에 국민청원을 올리시면서 이런 얘기를 붙였는데 너무 공감이 됐어요. "하루 평균 7명이 그러니까 해마다 2400명 이상이 산재로 사망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제 친구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요. 저는 사실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가 왜 죽어야 되지?" 라는 생각을 사실 하게 돼요. 왜냐하면 제도적 미비, 기업의 안전 책임 소홀로 인해서 왜 우리 또래는 계속해서 죽어야 하는 것인가 이러한 제도 속에서의 차별을 경험하면서 뭔가 학습되는 무력감들도 있고.

    사실 좀 더 나아가자면 저는 아직 20대여서 대학 문화와 가까워서 그런지 어떤 학력에 따라서 죽어도 되는 삶과 아닌 삶을 마치 나눠놓은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무직과 현장기술직 이런 것들을 가르는 어떤 그 학력의 기준이 너무도 서로 다른 삶을 만드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 김종대> 이선호 씨 이야기하셨는데요. 그분은 군 제대 후에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평택항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변을 당하셨는데 지금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20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 이런 비극이 어떤 한 계층에 모여 있다는 인상이 들어요.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 변재원> 맞아요. 사실 청취자분들께 간단히 말씀드리면 이선호 님 역시 제대 후에, 요새 아시잖아요. 코로나 때문에 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비대면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노트북 컴퓨터와 전공책을 들고 사실 평택항 하청업체로 출근하셨다가 변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앞서 소개했던 고 김용균 님 같은 경우에도 군 제대 후에 7개월 만에 구한 첫 직장에서 이러한 변을 당했고 유품으로 컵라면이 발견되었었고요. 고 김재순 님,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지적장애인 청년 노동자분께서도 지적장애가 있으신데 하청업체에서 일을 해야만 했던 이유는 사실 일을 그만뒀던 적이 있어요. 너무 열악하고 힘들어서요. 그런데 지적장애인 청년노동자가 다른 곳에 취업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 자꾸 번번이 퇴짜를 맞다가 이렇게 안전조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이런 모습들을 저는 사실 현장에서 계속 보면서 가장 낮은 자들이 가장 먼저 쓰러지는 이 현실, 이것들이 오늘날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가 겪는 현실이 아닌가 이런 많은 무거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 김종대> 산재로 숨진 청년들 또 그 부모님들. 굉장히 많이 만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 딸과 비슷한 20대 또래 청년이 와서 이렇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분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주로 부모님들부터 들은 이야기. 어떤 얘기입니까?

    이선호씨 대책마련 간담회 참석한 이재훈씨 (평택=연합뉴스) 고(故) 이선호 씨 부친인 이재훈 씨가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만공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열린 이선호 씨 대책 마련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 2021.5.12 [더불어민주당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xanadu@yna.co.kr(끝) 연합뉴스

     


    ◆ 변재원> 사실 저는 늘 저희 부모님이라고 생각을 많이 하면서 이렇게 이런 사례들을 접하는데요. 선호 님 같은 경우도 선호 님의 아버지께서 뉴스를 보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휴대폰을 직접 비춰주시면서 이런 얘기를 해요. 이것 봐라. 내 아들이 내 전화번호부에 이렇게 저장이 돼 있다. 삶의 희망이다. 이렇게 저장이 돼 있는데 나의 삶의 희망이 이제 사라져버렸다. 이제 나를 평생 원망해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제가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막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마음들을 저는 현장에서 늘 보게 되는데 고 김용균 어머니이신 김미숙 이사장님께서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계속 제 또래의 학생들만 봐도 자꾸 눈물을 흘리시면서 껴안던 장면들이 계속 기억이 나는 거죠. 그런데 이선호 님 같은 경우로 조금 더 돌아가보자면 유가족분들이 지금도 편치 않으실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오늘 오후 2시에 그 해당 기업이, 원청이 사과문을 발표하기는 했지만 직접적인 사과가 대국민 사과였지 유족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유족분들께 저는 직접 사과하고 유족분들께서 진짜 원하시던 진상규명, 재발방지대책 등을 마련해 주는 것이 사실 도의적으로도 맞고 그게 우리 세상에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좀 듭니다.

    ◇ 김종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나라입니다. 아직까지 시행은 안 되고 있습니다마는. 이렇게 법까지 통과시켰는데도 변화되는 현실은 거의 없는 것 같네요.

    ◆ 변재원> 맞습니다. 사실 그런 이유들이 있긴 한데요. 아까 말씀해 주신 것과 같이 지금이 사실 유예기간이기 때문에 이게 법이라는 것은 제정됐다고 바로 시행되지 않거든요. 그 사각지대가 있기도 하고 중대재해기업법의 지금 해석이 굉장히 협소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김종대> 법 자체도 문제가 많은데 그 문제 많은 법이 시행도 안 되고 있어요. 그 그사이에 청년들이 또 죽어나갔다 이 얘기입니다. 아무래도 오늘 변재원 국장님의 말씀을 조금 더 깊이 우리가 들어가보려면 한겨레신문의 사설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변재원> 네, 고맙습니다.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